한국이 최고인 것도 프랑스가 최고인 것도 아니다. 소도시가 좋은 것도 대도시가 좋은 것도 아니다. 왜 다시, 프랑스 이 도시에 살기로 했는지 쓰려고 하다가 몇 번을 멈추었다. ‘선택’이긴 한데,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년 동안 한국과 프랑스를 몇 달씩 오가며 살았다. 한번 태어난 인생,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디에서 무엇으로 살아갈지.
그러다 2025년 12월부터 마음이 달라졌다. 마음이 아니라 몸을 보기로 했다. 어떤 곳에서 더 웃게 되는지. 몸이 편안한지.
2025년에 한국에 가서 서울의 작은 방들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이삿짐 센터냐고 할 정도로 여러 번 방을 옮겼다. 어떤 곳에서도 인사를 나누는 사람은 없었다. 나에게 인사와 담소가 참 중요하구나 느꼈다.
요리, 청소 등의 알바도 했다. 재미와 모욕이 공존했다. 흥미롭기도 했고 징그럽기도 했다.
본업인 가르치는 일을 열심히 했다. 외부 강연도 나갔다. 서울에 갈 때 가장 바랐던 일이었다. 큰 그룹 앞에서 스피치하는 일을 원한다 생각했는데, 아니란 걸 알고 당황스러워졌다. 원래 그랬는지 내가 변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일대일의 깊고 진한 교감이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느껴야 할지 몰랐다. 허탈하고 진이 빠졌다. 하나의 실수도 없이 하려던 마음. 지하철을 갈아타고 대형 강연장까지 가는 과정에서 이미 에너지를 다 잃어버렸다. 아마 그 장소의 사람들은 눈치를 못 챈 거 같았다. 뒤풀이까지 하고 와서 한잠도 자지 못했다.
외국어 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는 나에게 편안한 나로 돌아왔다. 결혼을 해서 프랑스에 살았다, 아니 살고 있다고 말하면 그 자리의 사람들이 꺄악! 거짓말! 진짜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하고 반응하기도 했다. 재미있었다. 결혼한 사람으로 안 보여서 신기하다고 했다. 젊은이들에게는 결혼한 사람에 대한 어떤 이미지 타입이 있는가 보았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혹은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매순간 내 자신이 실패자로 느껴졌다. 어머니가 격려해 주었다. “이제 바닥부터 시작하면 돼.” 혹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을 실패자라고 느꼈다. 몇년 간의 일이 모두 제로로 돌아갔구나, 하고.
한달치의 짐만 싸서 돌아왔다. 옷도 몇 벌만. 더 가져가라는 것도 다 두고 왔다.
“짐되게 뭘. 곧 올 건데.”
프랑스의 겨울 집을 상상만 해도 몸이 시렸다. 본가의 뜨끈한 바닥에 누워 진저리쳤다.
“유럽 집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돼.”
툴루즈에 도착해 호텔에서 하루 잤다.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갔다. 이 돈을 주고 이 정도 서비스라니, 돈이 아까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한국이라면, 한국이라면, 한국이라면…작은 게하도 최고급 서비스야.
한 점 멍이 든, 한쪽이 콕 들어간, 한군데 덜 익은 오렌지 더미를 봤다. 오렌지를 골라 압착기계에 넣으면 주스가 되는 것이었다. 기계는 사람이 손으로 누른다. 내 손으로 누른다. 19세기 물건인가? 웃음이 났다.
“야, 아침에 힘 없으면 주스도 못 마시겠네. 노인은 어떻게 해?”
“노인이 왜 힘이 없어.”
파트너의 대꾸가 웃겼다. 대화가 영 안 되네, 티키타카가 안되네, 아유 재미없어.
재밌어서 웃음이 실실 났다.
숨도 안 쉬고 수다를 떨었다. 나 혼자 말했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못생긴 오렌지들.
못생긴 오렌지들.
못생긴 오렌지들.
그 오렌지들이 너무 좋았다.
집에 돌아와보니, 내가 좋아하고 미워했던 것이 고스란히 있었다. 책, 옷, 그릇, 담요, 내가 없는 사이 하늘로 간 우리 고양이의 밥그릇조차도. 이상하게도 눈물이 안 났다. 한 시절이 지난 느낌이었다.
“세상에. 이 게으름뱅이!”
구제품 가게에 가져다 주라고 둔 오버 코트가 그대로 있었다. 날이 싸늘해 다시 꺼내 입었다. 십오년 된 코트라 좀 낡았다. 묵직했다. 요즘 옷 같지 않은 탄탄한 섬유가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 이런 코트를 입고 다니면 시간 여행 온 줄 알 것이다.
한국에서의 여러 일과 활동을 프랑스에서 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상상하기 어렵다. 여기에서는 그 일들을 한국과 같은 컨디션으로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1:1 비교가 어렵다. 그것과 이것은 아주 다른 것이다. 분명한 건 그 일들이 대개 ‘건조’했다. 삶의 풍부함으로 전환되지 않았다.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순간순간 아주 즐겁고 보람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아직 말끔히 정리가 되지 않는다)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자는 순간에도. 아침에 일어난 순간에도.
저 삶 속에서 파트너가 서울에서 함께였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마음을 놓았을까.
아마 우리는 많이 다투고 미워했을 것 같다. 혹은 그와 함께있는 집은 아주 따뜻하고 행복했을 것 같다. 사실은 전혀 모르겠다. 상상을 할 수가 없네.
말하자면, 현재의 나는 현재의 한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투자는 너무 위험하고. 사람들은 돈을 너무 많이 쓴다. 사람들은 너무 남을 통제하려 한다. 너무 눈치를 보고 너무 미워한다.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건 안다.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싶다.
몇 년의 프랑스 생활로 나의 몸과 마음이 변화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원래 ‘삐거덕거린다’고 느꼈던 나의 정체성이 한국과 더 안 맞게 된 건지 모르겠다. (프랑스가 잘 맞는다는 소리는 아니다) 너무 빠르고 너무 효율적이고 너무 전전긍긍하고 다들 너무 불안하다. 나는 그 속도에 따라갈…..수는 있다. 전에도 그렇게 살아왔고. 드문드문 실수하기는 해도 나를 갈아넣어 맞추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된다. 늘 부족하다고 여기게 된다. 계속 나를 다그치게 된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 내 참 그게 자연스럽게 되면 누가 그러겠어!
아무튼, 그러다가 남을 미워하게 된다. 굼뜨거나 눈치없는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 북미에 사는 친구가 한번은 그랬다. “한국에서 나는 사람들을 싫어하게 돼. 여기서의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돼.”
요즘 섹슈얼리티에 대한 책을 두 명의 멤버와 구상 중이다. 나는 그 프로젝트의 메인 멤버가 아니라 기획, 편집을 돕는 정도의 역할이지만. 나도 그 주제에 대해 깊게 대화한다. 프랑스에 오면 섹슈얼리티를 삶 속에서 느낀다. 성적 활동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관능과 창의성으로 발현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것이다.
나는 자주 아프다. 감각과 감정에 비해 몸이 약한 탓일지. 신장이 하나인 탓일지. 많이 받아들이고 쉽게 아프다. 여기에서 아프면 쉰다. 하루고 이틀이고 침대에서 안 나간다. 그러면 몸이 나아져 있다. 그러면 큰 병으로 가지 않는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