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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 May 15. 2024

강아지가 아픈데, 저도 우울증입니다

8. 난 이미 너에게 하루씩 네게 가고 있어, 그러니 우리 조금만 참자.


난 이미 너에게 하루씩 네게 가고 있어,
그러니 우리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자.

녀석을 보낸 지 대략 오 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함께 맞이한 열여섯 번째 겨울을 마저 다 보내지 못하고 우리는 이별했다. 녀석을 떠나보내는 연습을 머릿속으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했지만 결국 품에 안아 인사하며 보내지 못했다. 응급실 테이블 위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심장박동이 다시 살아나길 바라며 발을 동동 구르다 의사가 더 이상 어렵겠다고 뒤로 물러서자 그제야 녀석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늘 바라온 이별의 장면은 어느 정도 의식이 있을 때 내 심장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쪽 가슴에 녀석을 꼭 안고, 마지막 때까지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다시 만나자고-그리고 미안하다고-천천히 인사하며 보내는 것이었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것은 - 아니 나는 아직도 글을 쓸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녀석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녀석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써야 하는 글은 뭔가 어색하다.


요즈음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많이 떠올린다. 블랙홀에 들어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된 주인공 쿠퍼가 딸인 머피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책을 넘어뜨리고 중력을 이용한다.


나도 그렇게 녀석이 다른 차원의, 너무도 안전하고 평화로운 곳에 있어주길 바란다. 그곳은 아마 우리가 통상적으로 말하곤 하는 '무지개다리 너머'가 아닐까.


그곳에서는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으면 한다. 늘 한없이 날 기다린 녀석을 그곳에서도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다. 그저 그곳은 이곳과 시간의 흐름이 달라 녀석이 한숨 곤히 낮잠을 자거나 친구들과 놀다, '아차, 우리 엄마, 어디 있지?'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시선 끝에 그곳에 막 도착한 내가 서있길 바란다.


녀석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싶다. 그 예쁜 이름, 주인이 사라지니 부르고 싶어도 실컷 부르지 못한다. 죽을 맛이다. 크게, 아주 크게 부르고 싶다. 그러면 나를 찾던 그 커다란 눈동자가 확신에 차 이내 고정되고, 귀여운 뒤뚱거림으로 내게 달려와주겠지. 이 희망에 다다르는 나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면, 나는 늙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리. 오히려 기쁘게 바라게 될 테다.


나의 강아지야, 아주 빨리, 곧, 보자! 난 이미 너에게 하루씩 가고 있어, 그러니 우리 조금만 참자. 세상에서 제일, 아니 온 우주에서 제일 널 사랑해. 아니 늘 사랑하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매 순간 그래, 언제나.

나에게 달려와 줘 , 그날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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