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심은 데 우울 나니까 무의식 퍼즐 맞추기
나는 건반악기보다는 현악기를 좋아했고, 그중에서도 바이올린을 좋아했다. 현을 짚는 손가락의 위치에 따라 음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는 그 초예민함과 불안정함 속에서 오히려 자유분방함을 느꼈다. 아주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꽤 오래 배웠는데, 바이올린은 내가 원해서 배우는 거라 재밌었지만 이상하게 피아노는 몹시 치기 싫었다. 집에 피아노 선생님 오시는 날이면 항상 아픈 척을 했고, 하농 악보를 연습하는 건 너무 지겨워서 연습장에 가짜 동그라미표를 채웠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도레미는 어떻게 쳐도 도레미라서 답답하고 뻔하다는 발칙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왜곡된 취향은 커서도 쭉 이어져 스스로 피아노 연주를 먼저 찾아들을 일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예외였던 것이 바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이었다. 당시 손열음의 명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피아노에 관심이 없던 나만 뒤늦게 듣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연주로 '피아노는 노잼'이라는 편향된 사고가 깨진 순간, 눈앞에 펼쳐진 건 들을 게 무지하게 많은 광활한 피아노의 세계. 쇼팽부터 베토벤, 모차르트는 물론이고 슈만이나 리스트, 라벨 등 수많은 위대한 작곡가들의 피아노 곡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중에서도 주로 서정적이고 따뜻한 곡들이 심금을 울렸다. 매일같이 듣던 곡들은 키신의 드뷔시 달빛, 호로비츠의 슈만 트로이메라이, 누가 연주한 버전이든 리스트 사랑의 꿈같은 몽환적이고 목가적 멜로디들이었다. 특히 드뷔시 달빛은 달이 크고 낮게 뜬 어느 밤 산책길에 들으면, 마치 요가의 마지막에 달콤한 사바사나를 맞이하는 것처럼 다른 차원을 걷는 것 같았다. 슈만 트로이메라이는 잠들기 전 일종의 의식처럼 꼭 들어야만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는 내가 이렇게 클래식을 듣는 걸 아무도 몰랐으니 소위 인터넷말로 '샤이클덕'이었다.
하지만 서정적이고 따뜻한 피아노 소품집을 찾아 듣던 시절도 다 옛날이야기다. 이혼이라는 외롭고 힘든 시간을 관통하면서 스스로 계속 좀먹어갔고, 다친 마음은 치료가 되다 말았는지 흉이 덧나서 폐허가 돼버렸다. 한 번 트리거가 건드려지면 감정 조절이 전혀 되지 않았다.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서 그랬다. 이혼 소송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또 다른 복병처럼 내 원가족에게로 화가 번지고 있었다. 일상생활에는 잘 지내는 것 같이 보였으나, 사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온통 에너지를 쓰면서 맨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을 제외하곤 30 몇 년 쌓아온 모든 인간관계를 내손으로 버렸고,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낯선 도시에 와서 본의 아니게 독신주의자 흉내를 내고, 어디에도 닻을 내리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주말마다 서울에 갔다.
허기진 마음에 사치를 하지도 않았는데, 월세를 내고 주말마다 ktx 타는 값을 빼면 월급이 다 날아갔다. 결혼 전에 모아둔 돈을 빼먹으면서 지냈다. 그 와중에 홍길동은 이혼 소장에 자기 해외 이사 비용까지 청구했다. 본인 가족 사업과 일 때문에 해외 이사를 했고, 이혼부터 귀국까지 다 자기가 원해서 한 주제에 모든 것을 내 탓하느라 바빴다. 너 때문에 나는 당시 회사까지 그만둬야 했는데 그런 전후상황 같은 건 당연히 안중에도 없었다. 그가 꽁꽁 감춰뒀던 열등감 때문에 결국은 정신이 아픈 거라고 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악랄했다. 이제 아프다는 것도 솔직히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분히 악의적이고 지능적이며 교묘한 걸 그저 환자라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몰랐던 내 트리거는 엄마였다. 나는 기회만 되면 엄마 앞에서 미친년처럼 길길이 날뛰며 울부짖었다. 내가 그동안 까먹었던 유년기의 기억이 깊은 무의식의 바다에서 떠오르기도 했다. 평상시 내가 아는 어린 시절은 주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는데, 그보다 더 어린 2, 3살 때의 기억이 불현듯 생각났다. 아마도 살이 찢어지고 안에서 새살이 올라오는 과정에 생긴 부작용 같은 게 아닐까 혼자 추측할 뿐이었다. 홍길동과 그의 부모에게 난도질당한 마음이 스스로 재생하려고 애쓰다가 그만 무의식 저편에 묻힌 2, 3살 때의 기억까지 깨워버린 것처럼 말이다. 크게 다친 뒤에 이미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한바탕 뒤집어지고 나니, 더 예민하고 취약한 상태가 돼버렸다. 엄마는 평소 같은데 내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든든한 큰딸, 자랑스러운 큰딸' -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이 말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내 기분을 살피며 가족 카톡방에서 애써 나를 칭찬하는 걸 보면 그냥 그 자리에서 악을 쓴 뒤에 혀 깨물어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나를 구성하는 단어가 하나같이 다 무겁게 느껴져서 차라리 나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누구도 내게 열심히 살라고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애쓰고 노력하면서 매사에 열심히 하는 내가 싫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도 어떻게 나태하게 살고 무책임하게 사는 건지를 몰랐다. 우울에 풍덩 온몸을 내던지고 한 3년쯤 방황해도 될 것 같은데, 문제는 방황하는 법도 모른다. 자라면서 사춘기도 없었고 일탈을 해본 적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일탈이라고 해봤자 몸에 타투를 새기는 일, 머리를 샛노랗게 탈색을 하거나 히피펌을 하는 수준이었다. 성적은 그저 그랬어도 충분히 고리타분하게 자란 범생이 큰딸이었다. 아빠는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당분간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아직까지도 한 번도 없다. 다만 '왜 사는지'에 대한 생각을 부쩍 자주 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그런 철학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사색을 하기엔 나는 몹시 활동적이었고 맨날 밖에서 캠핑을 하고 등산을 하기 바빴다. 평소에 집순이도 아니었으며, 상상이나 공상을 하지도 않았다. 주로 하는 생각은 '이번 연휴에는 어디 가지' 또는 '올해 크리스마스는 어떤 콘셉트로 꾸밀까' 정도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혼은 내 계획에 없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누구나 머리론 알아도, 막상 내 일이 되면 갑자기 삶을 회고하게 되고 나를 성찰하게 만든다. 사람이 사색적으로 변하고 간간히 철학적인 질문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왜 살지?" 왜 살지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려고 이것저것 떠올려봐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뚜렷한 정답이 없어 보였다. 그럼 살 필요가 없겠네 하고 조금씩 냉소와 허무가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클래식으로 뒤덮인 지 오래였다. 내면의 공허함을 알아차리 듯 알고리즘신은 어느 날 추천 플레이리스트에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계시했다. 라피협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곡 중 하나라서 손열음부터 랑랑, 조성진 많은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어봤으나 그다지 선호하는 곡은 아니었다. 과거의 나는 우울이나 허무를 몰랐던 '디즈니 재질'이라서 라흐마니노프보다는 모차르트, 아니 디즈니 OST가 제일 잘 맞았다.
추천 플레이리스트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넘어가서 1악장이 시작되었다.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는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나를 달래주듯 건반 위에서 대신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두 마디쯤 지나자 영혼의 슬픔이 씻겨나가듯 소리 내서 펑펑 울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반사적인 행동이라 그 울음의 의미를 지금도 해석할 수 없다. 그렇게 이 곡을 시도 때도 없이 들은 지 1년이 지났다. 아직도 들을 때마다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상처의 깊이를 짐작하게 된다.
이혼은 아무것도 아니고 살면서 세상에 더한 일이 훨씬 많다는 것도 안다. 이혼이라는 행위나 절차, 사회적 인식이 두려운 게 아니다. 내가 무서운 건 사람이다. 팔이 아무리 안으로 굽는다 해도 그의 부모를 정말 좋은 어른이자 부모라고 생각했다. 내가 본 부모는 우리 엄마, 아빠밖에 없어서 당연히 그들도 좋은 부모라고 생각했다. 자식뻘 어린애 하나 속이기는 쉬워도 내 부모한테 보인 태도는 내 상처가 더 깊어지는데 직격탄이었다. 병원을 가고 불교공부를 하고 심리학 책을 읽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상담심리가 아니라 임상심리 쪽으로 도움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말에 첫 상담이 시작된다.
"요즘 기분 어때요, 최근에 소리 내서 운 적이 있어요?"
만약 선생님이 이런 걸 묻는다면 라흐마니노프 이야기를 해야지.
더 이상 라흐마니노프 2번, 3번을 들어도 울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잃어버린 나를 찾고 다시 일어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