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술과 음식의 궁합, 페어링의 규칙이 있을까?

푸드디렉터 안젤라가 바라보는 세상

by 푸드디렉터 김유경

음식을 가장 맛있게 먹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각 지역 산지에서 채집한 신선한 농산물, 좋은 비료와 올바른 사육 방식으로 자란 축산물, 자신만의 창의력을 발휘하여 훌륭한 요리로 발전시키는 셰프, 쾌적한 환경에서 친절한 설명과 함께 요리를 전달하는 홀 서비스, 그리고 요리의 맛을 배가하는 술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그날의 식사는 성공이다. 꼭 다이닝이나 서양식 코스 메뉴가 아니어도 사골을 오랫동안 고와서 만든 국밥 한 그릇이나 깨끗한 육수 안에 담겨있는 냉면 한 그릇도 음식과 어울리는 술과 사람만 있다면 훌륭한 미식을 향유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그 나라의 음식과 식문화를 함께 즐기며 발견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페어링 (Pairing)’ 이 었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서른다섯 번째 이야기는 바로 페어링이다.



식탁의 맛을 극대화하는 페어링 (Pairing)

페어링이 무엇일까? 새로운 휴대폰을 사서 자동차에 블루투스를 연결할 때 화면에 ‘페어링을 하시겠습니까?”라는 글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레슬링에서 상대편의 팔을 자신의 안쪽으로 끌어당긴 뒤 중심을 무너뜨리고, 옆으로 돌아 상대의 뒤를 공격하는 기술을 ‘페어링’이라고 하고, 영국 의회에서 페어링은 한 정당의 의원이 다른 정당의 의원과 짝을 이뤄 토론 투표에 불참을 합의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식탁에서의 페어링은 음식과 술의 궁합을 맞추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말로 마리아주 (Mariage)라고도 한다. 마리아주(Mariage)는 결혼을 뜻하는 영어 Marriage의 불어로 남녀 사이의 궁합과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하며 훌륭한 궁합을 보일 때 결혼에 골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음식과 술의 궁합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미식 문화가 발전하면서 ‘어떤 음식과 술을 함께 먹어야 맛있을까?’ ‘이 음식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선 어떤 술을 먹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기 시작하고 있다. 식탁의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해진 페어링 법칙이 있을까?



여섯 가지 맛 (6味)으로 맞추는 와인 페어링

먼저 정해진 페어링의 법칙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은 “NO”다. 일단 와인을 기준으로 이야기할 때 식재료에 적합한 와인을 선정해도 어떤 소스와 양념을 뿌렸느냐에 따라 와인이 달라져야 하고, 같은 맛이어도 육수의 유무에 따라 와인의 바디감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날의 날씨나 실내온도, 상황, 사람 등 식탁을 벗어난 외부 요인들이 다양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A=B라는 방정식은 성립될 수 없다. ‘고기엔 레드, 생선엔 화이트’ 아니냐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궁합일 뿐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해외 잡지와 책자를 살펴보고, 다양한 술의 세계에 입문해보니 여섯 가지의 요소가 페어링을 하는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여섯 가지 맛으로 페어링의 기술을 살펴보자.

먼저 지방 (Fat)이다. 기름진 음식일수록 산도, 탄닌,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마시면 좋다. 해외 요리책을 보다 보면 ‘Acid cuts the fat’, 즉 산도는 지방을 줄여준다라는 말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주방에서 지방이 많은 식재료를 조리할 때 산도가 높은 음식을 활용하면 지방이 수용성으로 바꾸어 몸에 흡수를 줄여준다라는 원리와 일맥상통하다.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고 기름이 닦이지 않는 경우 식초, 김 빠진 콜라, 베이킹소다와 같이 산성 또는 약알칼리 성분의 개체로 닦으면 쉽게 닦아진다. 두 번째는 염분이다. 짭조름한 맛은 의외로 와인의 쓴맛과 신맛을 줄여줘서 와인의 복합적인 풍미를 더 살려준다. 예를 들어 김치나 젓갈과 같은 짭조름한 한식을 먹을 때 산미가 있고, 탄닌감이 강한 와인을 먹으면 와인 본연의 맛은 잃지 안돼, 입 안을 깔끔하게 씻어주는 역할을 해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세 번째는 산도. 음식과 와인의 산도는 비슷한 것이 좋다. 새콤한 소비뇽블랑과 피노그리지오, 리즐링을 새콤한 태국 음식이나 세비체와 같은 남미 음식과 먹어본다면 훌륭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네 번째는 당도. 달콤한 와인은 달콤한 디저트나 새콤한 애피타이저와 함께 먹으면 좋다. 당도가 높은 와인은 산도가 강한 음식의 산미를 중화시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는 쓴맛. 쓴맛은 호불호가 강한 요소다. 와인의 쓴맛인 탄닌이 강한 와인을 쌉싸름한 맛이 강한 음식과 먹거나 달콤한 음식과 함께 먹으면 와인의 쓴맛을 더 높일 수 있어 극단적인 양극의 페어링을 초래할 수 있어 이 조합은 피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요소는 질감으로 섬세한 음식에는 탄닌과 알코올이 약한 와인을,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에는 탄닌과 알코올이 강한 와인이 어울린다. 쉽게 말해 끼리끼리 맞추지 않으면 음식이나 와인이 밀릴 수 있기 때문에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이 좋다.


떼루아로 맞추는 페어링

떼루아(Terroir)는 토양을 뜻하는 프랑스어이자 와인을 만드는 포도를 재배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모든 요소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본래 와인 용어이긴 하지만 ‘그 나라 음식에는 그 나라 술’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자 한다. 꽤 많은 미식가와 주류 전문가, 여행전문가들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역시 음식은 그 지역 토착 술과 먹을 때 가장 맛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남대문 시장에서 갈치조림을 먹을 땐 한국 소주와 맥주가 가장 편하게 어울리고, 건대에 있는 중국 양꼬치집에 가면 당연하듯 중국 맥주와 고량주를 주문하게 된다. 일본 스시를 먹을 때는 사케나 소주를 찾고, 미국 수제버거를 먹을 땐 수제 IPA 맥주를 찾게 된다. 이는 음식을 섭취할 때 발생하는 인지적인 호르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두뇌로 음식을 먹는다 『미각의 지배 (The Omnivorous Mind)』 책을 지은 존 앨런의 연구에 따르면 맛을 보는 기관은 혀가 아니라 두뇌고, 두뇌는 대를 이어 전수된 가치 기준을 따르는 문화적 결정 기관이라고 한다. 맛은 단순히 물리적인 맛으로 결정되는 것이 그 나라의 역사나 전통,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식과 술이 같은 지역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신토불이 (身土不二)를 외친 것이 바로 이런 배경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사람 페어링

음식과 술은 완벽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식사 내내 투덜거리거나 자꾸 나에게 가르치려 든다면? 그 자리가 인당 30만원, 50만원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날은 최악의 식사 자리가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음식과 술은 결국 몸으로 흡수되는 유기물이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생존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와인 한잔을 기울이며 상대의 마음을 사고, 미안하고 고마웠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식탁 위의 맛은 내가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음식을 함께 먹는 기쁨으로 결정이 되기 때문에 페어링 중에 가장 중요한 페어링은 사람 페어링이다. 오늘도 함께 하면 즐거운 사람과 맛있는 식탁을 즐기시기를!



글 | 사진 푸드디렉터 김유경 (안젤라) (foodie.angela@gmail.com)
푸드디렉터 김유경 (필명 안젤라) 은 디지털 조선일보 음식기자 출신으로 MBC 찾아라 맛있는 TV, KBS 밥상의 전설, KBS 라디오 전국일주와 같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왔고, 테이스티코리아 유투브채널을 통해 한국의 맛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최근에는 안젤라의 푸드트립 채널을 통해 세계 음식과 술, 그리고 여행지를 국내에 알리고 있으며, 네이버 포스트와 네이버 TV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요리는 오감을 깨우는 여행이라는 철학으로 오늘도 맛있는 기행을 떠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