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의 실사판 심바:
말리의 사자 순디아타 이야기

by Alfius Historographus

라이온 킹의 실사판 심바: 말리의 사자 순디아타 이야기


오늘은 앞서 '아산테 주전자' 글에서 살짝 언급하고 지나갔던 순디아타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 보겠습니다.


공식적으로 디즈니사는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줄거리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지요. 그러나 수세기에 걸쳐 그리오(griot)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말리의 사자 순디아타 케이타의 이야기를 알고 있던 많은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심바에게서 바로 순디아타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햄릿 이야기는 대부분 아실 테니 오늘은 순디아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햄릿과 순디아타 중 누가 더 심바와 닮았는지 한번 볼까요?




옛날 옛적에(약 800여 년 전쯤), 지금의 서아프리카 말리 지역의 만딩카 부족의 왕은 <라이온 킹>의 무파사처럼 훌륭하고 백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나레 마간 코나테였습니다. 그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충실한 시종의 후손이었고, 그의 선조인 흑인 왕자 라힐라툴은 메카로 순례를 떠났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신비로운 정령의 도움으로 7년 만에 기적처럼 고향에 돌아온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했죠.


어느 날, 왕이 언제나처럼 자신의 궁전에 있는 거대한 나무 아래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사냥꾼 차림의 한 남자가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능숙한 사냥꾼이자 신비한 능력을 지닌 예언자였죠. 그는 주머니에서 열두 개의 조개껍질을 꺼내 바닥에 흩뿌리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왕이시여! 세상은 미스터리로 가득합니다. 저 거대한 나무도 아주 작은 씨앗에서 자라나듯, 왕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를 보고 장차 위대한 왕이 될 사람을 누가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예언자는 왕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놀라운 말을 이어갔습니다.


"왕이시여, 당신의 후계자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곧 두 명의 사냥꾼이 등에 거대한 혹이 달린 흉측한 외모의 여인을 데리고 올 것입니다. 그러나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 그 여인이 바로 당신이 맞이해야 할 운명의 짝입니다. 그녀가 낳을 아이는 일곱 번째 별과 세상의 일곱 번째 정복자가 되어 알렉산더 대왕보다 훨씬 강력한 왕이 될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두 명의 사냥꾼 형제가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이웃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무서운 물소를 물리친 영웅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물소는 이웃 나라 왕에게 앙심을 품은 늙은 여인의 영혼이 환생한 괴물이었는데, 죽어가던 여인은 사냥꾼 형제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물소를 죽인 공로로 왕에게 보상을 받으려거든 절대 아름다운 여인을 고르지 말고 가장 흉측한 혹투성이 여인 '소골론 케쥬'를 선택하여 왕에게 데려가라."


사냥꾼들이 데려온 소골론은 정말 사람들의 놀림을 받을 만큼 흉측한 외모였으나, 코나테 왕은 예언을 굳게 믿고 그녀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왕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첫째 부인 사수마 베레테는 격분하여 소골론을 모욕하고 온갖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첫날밤,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왕이 소골론에게 다가가려 하자 그녀의 몸이 갑자기 짐승처럼 긴 털로 뒤덮이더니, 강력한 혼이 뿜어져 나와 왕의 접근을 막아선 것입니다.


당황한 왕은 모래 위에 신비로운 문양을 그리며 정령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정령의 조언에 따라 왕이 칼을 빼어 들고 그녀를 베려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수호령은 그녀의 몸을 떠났고 비로소 두 사람은 맺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운명의 아이 순디아타가 잉태되었죠.


하늘에서 천둥 번개가 치고 강풍이 몰아치는 징조와 함께 태어난 순디아타!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보다 위대한 정복자'가 되리라는 예언이 무색하게, 그는 느리고 굼뜬 아이였습니다.


순디아타는 세 살이 되도록 두 발로 걷지 못하고 흙바닥을 기어 다녔으며, 유난히 큰 머리 때문에 우스꽝스럽게 보였습니다. 항상 무표정한 얼굴에 음식만 보면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탐욕스러운 성격을 지녔고, 팔 힘만 무지하게 세서 동네 아이들을 모조리 때려눕히는 바람에 아무도 그 곁에 가려하지 않았습니다.


첫째 부인 사수마는 이 모습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녀의 11살 난 아들 단카란 투만은 마을을 늠름하게 뛰어다니며 활쏘기를 하는 완벽한 왕자의 상을 갖췄으니까요.


사수마는 소골론이 지나갈 때마다 들으라는 듯 소리쳤습니다.


"활기차게 뛰어놀아라, 내 아들아! 저렇게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자보다는 당당하게 두 발로 걷는 아들이 백배 천배 낫단다!"


소골론은 아들의 장애를 향한 모욕과 조롱 속에 피눈물을 흘렸고, 온갖 주술을 동원하여 아들을 고쳐보려 했지만 그 무엇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예언을 굳게 믿었던 왕마저 희망을 잃어갈 때, 오직 왕의 충실한 그리오 두아만이 큰 나무는 작은 씨앗에서 자라난다며 부모를 위로했습니다.


이러한 두아의 격려에 힘을 얻은 코나테 왕은 바닥을 기는 어린 순디아타에게 최고의 그리오 발라 파세케를 개인 스승으로 하사하며 선조의 역사와 여러 지식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순디아타가 일곱 살이 되던 어느 날, 마침내 운명의 시곗바늘이 움직였습니다. 요리에 쓸 양념이 부족했던 어머니 소골론이 첫째 부인 사수마에게 바오밥 잎을 조금 빌리러 가자, 사수마는 소골론을 벌레 보듯 쳐다보며 조롱했습니다.


"이 딱한 여자야, 내 아들은 일곱 살에 뛰어다니며 이 잎을 따왔어. 네 아들은 그럴 능력이 없으니 적선하는 셈 치고 주도록 하지. 옛다, 가져가라."


모욕을 당한 소골론은 오두막으로 돌아와 통곡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을 본 순디아타의 눈빛이 변했습니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오늘 제가 걷겠습니다. 대장장이에게 가장 무거운 쇠막대를 만들어 달라 하십시오. 바오밥 잎만 가져오면 됩니까, 아니면 나무 전체를 가져다 드릴까요?"


"내 모욕을 씻어주려거든, 나무를 뿌리째 뽑아 내 오두막 앞에 가져다 다오!"


왕자의 요청에 발라 파세케가 달려가 거대한 쇠막대를 구해왔습니다. 대장장이는 일곱 살 꼬마의 요구에 놀라면서도 "드디어 위대한 날이 왔군!"이라며 환호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든 가운데 순디아타는 기어서 쇠막대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쇠막대를 붙잡고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킨 순간, 쇠막대는 활처럼 휘어졌고 순디아타는 우뚝 섰습니다. 파세케는 감격에 겨워 "활을 가져가라, 심본(Simbon, 위대한 사냥꾼)이여!"라며 찬가를 불렀습니다.


거인의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한 순디아타는 그 길로 달려가 아름드리 바오밥 나무를 힘껏 뿌리째 뽑아 어깨에 짊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오두막 앞에 쿵! 하고 던지며 외쳤습니다.


"어머니, 여기 바오밥 잎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동네 여인들은 모두 어머니의 오두막을 찾아와 잎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날 이후 순디아타는 수많은 친구들을 거느린 또래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불안해진 사수마가 아홉 명의 무시무시한 마녀들을 고용해 그를 암살하려 했지만, 순디아타는 마녀들의 계략을 눈치채고도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그의 관대함에 감동한 마녀들은 암살을 포기하고 순디아타의 수호자가 되기를 맹세했죠.


하지만 코나테 왕이 세상을 떠나자 다시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부패한 장로회가 왕의 유언을 묵살하고 사수마의 계략에 넘어가 그녀의 아들 단카란을 왕으로 세운 것입니다. 권력을 쥔 사수마는 소골론 가족을 지독하게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어머니 소골론은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망명길에 오르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운명은 이곳에 있지 않다. 때가 왔다."


그러나 출발 직전에 새로운 왕 단카란이 순디아타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던 충실한 그리오 발라를 이웃 소소 왕국에 사절로 보내버렸으므로, 순디아타는 혼자 어머니와 동생들을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분노한 순디아타는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외치며 피눈물 나는 유랑을 시작했지요.


망명길은 험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제데바의 왕은 황금으로 순디아타를 유혹해 암살하려 했으나, 순디아타는 기지를 발휘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여러 왕국을 거치며 타본과 가나의 왕에게 환대를 받기도 했지만, 어머니 소골론이 깊은 병에 걸리는 바람에 그의 가족은 결국 메마 왕국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메마의 왕 무사 툰카라는 순디아타의 비범함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를 훈련시켰습니다. 카라반 행상인들로부터 세상의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순디아타는 15살부터 전장에 나가 용맹을 떨쳤고, 18살이 되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풍당당한 전사로 성장했습니다.


한편 순디아타가 망명지에서 칼을 가는 동안, 고향 말리는 끔찍한 재앙을 맞았습니다. 소소의 왕이자 강력한 마법사인 수마오로 칸테가 쳐들어온 것입니다.


수마오로는 단순한 폭군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마법사 왕'이었습니다. 삼중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의 요새 한가운데에는 7층짜리 탑이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끔찍한 비밀의 방이 있었습니다.


방의 벽은 사람의 가죽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그가 앉는 의자 주변에는 그가 목을 벤 아홉 명의 왕들의 해골들이 흙 항아리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오직 수마오로의 마법으로만 연주되는 신비한 악기인 발라폰의 음악이 늘 음산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죠.


수마오로의 만행은 끝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조카이자 최고 장군인 파콜리의 아내까지 납치해 궁전에 가둬버렸습니다. 분노한 장군이 반란을 일으켰고, 여기에 순디아타의 이복형인 단카란 왕도 가담했으나, 마법사 왕의 무시무시한 힘 앞에 군대는 무참히 짓밟히고 단카란은 도망쳐 버렸습니다. 분노한 수마오로는 아름답던 말리의 수도 니아니를 처참하게 불태워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마법사 왕의 폭정에 신음하던 백성들은 점쟁이의 예언에 유일한 희망을 걸었습니다.


"두 개의 이름을 가진 남자, 마간 순디아타만이 말리를 구원할 것이다!"


곧 순디아타를 다시 말리로 데리고 오기 위한 비밀 사절단이 조직되었고, 그들이 메마의 시장에서 말리 고유의 채소를 팔고 있던 순디아타의 여동생 콜롱칸을 우연히 발견하며 극적인 재회가 이루어졌습니다.


"제발 조국을 구하러 와 주십시오. 당신은 저 괴물 수마오로를 짓밟을 거인입니다!"


순디아타는 즉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출발 직전, 평생 아들을 위해 희생했던 어머니 소골론이 끝내 숨을 거두고 맙니다. 순디아타는 메마의 왕에게 어머니를 묻을 땅을 달라고 부탁했지만, 왕은 뛰어난 장수인 순디아타가 떠나는 것이 아쉬워 시체를 가지고 떠나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러자 순디아타는 흙 한 줌의 대가라며 깨진 도자기 조각, 꿩 깃털, 어린 자고새 깃털, 짚 조각을 모아 왕에게 보냈습니다. 왕이 어리둥절해하자, 옆에 있던 늙은 아랍인 조언자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그 의미를 해석했습니다.


"왕이시여, 이것은 무서운 경고입니다! 당장 무덤 자리를 주지 않으면 당신의 왕국을 박살 내어 저 깨진 도자기처럼 파편만 남길 것이며, 폐허가 된 왕국에는 꿩과 새들만 날아와 흙먼지 목욕을 하게 될 것이란 뜻입니다!"


기겁한 왕은 즉시 땅을 내어주었고, 소골론은 마침내 왕실의 예법에 따라 평안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순디아타는 메마의 왕이 내어준 군대 절반과 와가두의 군대, 그리고 순디아타의 소문을 듣고 자발적으로 모여든 용감한 전사들을 규합하여 거대한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흑마법으로 무장한 수마오로를 일반 무기로 이길 수는 없는 법. 다행히 순디아타의 누이동생 나나가 적진에 잠입해 수마오로의 치명적인 약점에 대한 정보를 빼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어이없게도 무적의 마법사 왕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흰 수탉의 발톱이었습니다!


역사적인 크리나 전투의 날. 양측의 그리오들이 두 왕의 선조를 찬양하며 팽팽한 기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순디아타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습니다. 화살촉에는 흰 수탉의 발톱이 단단히 묶여 있었죠.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수마오로의 어깨에 정확히 꽂혔습니다. 그 순간, 수마오로의 몸에서 마법의 기운이 연기처럼 흩어져 빠져나갔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마법사 왕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그의 거대한 요새 소소는 순디아타의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어 정말로 '꿩과 새들이 먼지 목욕을 하러 오는' 잿더미 폐허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막의 왕국을 정복하고 적들을 물리친 순디아타는, 빼앗겼던 동맹 왕들의 영토를 모두 돌려주는 관대함을 베풀었습니다. 감격한 열두 명의 왕들은 그에게 '만사(Mansa, 왕 중의 왕/황제)'라는 칭호를 바쳤습니다.


그는 잿더미가 된 고향 니아니를 더욱 웅장하고 아름답게 재건했고, 농업과 무역을 발전시키며 면화와 직조 기술을 도입해 말리를 아프리카 역사상 가장 크고 부유한 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말리의 사자가 영화 속 심바와 닮았나요?


사실 이 역사는 디즈니가 만들어낸 가공의 이야기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며 감동적입니다. 순디아타의 서사시는 단순히 빼앗긴 왕좌를 되찾는 복수극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치명적인 신체적 한계와 신분에 의한 차별, 정치적 핍박을 극복하고 흩어진 동맹을 규합해 마침내 제국을 건설한 한 장애인의 위대한 인간 승리 서사입니다.


또한 자식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험난한 망명길에 올라 평생을 헌신한 위대한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땅을 기어 다니며 놀림받던 아이가 두려움과 존경을 동시에 받는 '말리의 진정한 아버지'로 거듭나는 과정은, 250년 후에 쓰인 셰익스피어의 <햄릿>보다 어느 면에서는 훨씬 더 현대적입니다.


부유함의 상징인 만사 무사의 이야기는 세상에 제법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작 말리 제국의 기반을 다진 순디아타의 건국 서사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이를 전해온 아프리카 그리오들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순디아타가 죽고 약 100년 후 아부 자이드나 이븐 바투타 같은 여행자와 역사가들이 말리를 방문해 이 '사자 왕'의 존재에 대해 기록을 남겼지만, 아프리카 밖에서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지요.


그러면 이렇게 훌륭한 서사가 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 앞선 기술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를 정복한 서양의 제국주의는 정치적 지배에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문화적 우위까지 점하게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필두로 한 서유럽의 문학은 끊임없는 번역과 공연, 그리고 교육 제도의 뒷받침 속에서 '인류 보편의 고전'이라는 확고한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반면 아프리카의 서사는 진지한 학문적·예술적 가치 탐구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저 변방의 흥미로운 '지역적 전통'으로 치부되었지요.


그 결과 우리는 무엇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영감을 주는 '고전'이며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를 무의식 중에 재단하고 구분 짓는 데 이미 익숙해지고 말았습니다.


영화 <라이온 킹>의 모티프가 <햄릿>인지 순디아타 이야기인지는 여러 아프리카계 비평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디즈니의 각본가가 과연 순디아타 이야기를 참고했을까?"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왜 순디아타 이야기가 애초에 그 참조 목록에서 배제되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라이온 킹>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삼은 수많은 현대 창작물은 정작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공간적 배경과 이국적인 이미지, 표면적 상징은 손쉽게 차용하면서도, 정작 그 땅이 수백 년간 축적해 온 정치 서사와 건국 신화, 영웅들의 삶은 철저히 외면합니다.


또한 무대는 아프리카로 설정해 두고서 서사의 뼈대는 여전히 유럽의 고전에 의존하는 안일한 방식은, 문화적 중심과 주변이라는 기울어진 위계를 우리도 모르는 사이 끊임없이 재생산해 냅니다.


혹 이러한 서사의 문제가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럼 더 실제적인 측면을 조명해 보겠습니다.


누구나 한 번 들으면 결코 잊히지 않을 <라이온 킹>의 유명한 OST 원곡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줄루족 출신의 음악가 솔로몬 은셀레 린다(Solomon Linda)입니다. 1939년에 녹음된 원곡의 제목은 '음부베(Mbube)'로, 줄루어로 ‘사자’라는 뜻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곡은 바다 건너 외국으로 전해졌고, 1961년 미국의 보컬 그룹 더 토큰스(The Tokens)가 영어 가사를 붙여 'The Lion Sleeps Tonight' 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습니다. 이 곡은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세계적인 히트를 쳤지요. 그러나 정작 원작자인 린다는 1962년, 자신이 만든 선율이 세계 팝 차트를 점령하는 광경을 보지 못한 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94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이 개봉했습니다. 사자의 울음소리를 묘사한 듯 반복되는 “위모웨(Wimoweh)”라는 후렴구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극 중 티몬과 품바가 정글을 누비는 유쾌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원작자의 이름은 여전히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합당한 대가도 지불되지 않았습니다. 린다의 유가족은 2004년부터 2006년 사이 디즈니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했고, 긴 법적 공방 끝에야 겨우 일정한 권리와 보상을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토록 씁쓸한 사실은 2019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리마스터드: 사자의 몫(ReMastered: The Lion's Share)>이 방영되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아직도 세상의 시선은 결코 공정하지 않습니다. 무의식 중에 소비하는 문화적 서사에서도, 그것을 만들어 내는 현실 세계의 산업 구조에서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케대헌의 성공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제는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진짜 사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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