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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공 Aug 21. 2019

나는 9급 공무원을 꿈꾸지 않았다

늦은 나이에 내가 공무원이 되기로했던 솔직한 이유

https://brunch.co.kr/@eurozine/298




나는 학창 시절에 단 한번도 9급 공무원을 꿈꾸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내 주변에도 고시 공부를 하는 친구들은 많이 있었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들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다. 취업 시즌이 되면 학과 사무실로 대기업의 인사 담당 선배들이 찾아와 자신들이 재직 중인 기업의 입사지원서를 나눠주면서 입사를 권유하던 시절이었다. 꼭 내가 바라는 기업이 아니어도 원한다면 누구나 쉽게 취업이 되었다. 또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준비를 한다면 신문사나 방송사 스터디 모임에 들어가 그쪽 시험을 준비해서 기자나 PD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보다 더 개인적 역량에 따른 신분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었고, 직업 선택의 자유는 자신이 속한 가계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제한되어 있지 않았다. 즉, ‘교육’이 기회균등의 역할을 지금보다 실질적으로 제공하던 시대였다.


우리 삶은 결코 우리가 계획한 궤도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대학을 막 졸업한 무렵의 나는 지금과는 다른 꿈을 꿨었다. 구체적으로 딱히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더 넓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그래서 떠난 곳이 독일이었다. 처음에는 <서푼짜리 오페라>로 유명한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가 태어난 바이에른(Bayern)주의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에서 어학코스를 시작했다. 6개월 만에 대학 입학 자격을 주는 독일어시험(DSH)에 합격해서 라인 강변의 작은 도시에서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전공했던 과목도 재미있었으나 독일에서 처음 공부해보는 철학과 미술사 같은 과목도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입학 성적이나 서열과 우열을 따지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토론식 수업과 권위적이지 않은 교수법이 좋았다.  그래서 그때는 내가 공무원이 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분주하게 계획이 많고 자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삶은 결코 우리가 계획한 궤도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현재 나는 국가직 7급 공무원이다. 그리고 지금 20대인 90년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9급 공무원이어서 그들을 ‘9급 공무원 세대’라 부른다고 한다.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인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선호하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고 거기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가 있다. 2019년 기준 10%대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률,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감소하는 노동시장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는 9급 공무원이 그나마 최적의 ‘합리적 선택’이다. 빨리 공무원이 되어야 조금이라도 더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고 그래야 생애 전체의 소득이 민간기업 수준에 부합할 수 있기에,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는 나이가 어릴수록 경제적으로 이득이 크다.  급기야 이제는 취업을 준비하는 소위 취준생의 40%가 공시생인 시대이다. 구조조정과 형식적 차별이 없고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며, 경기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적인 고용주인 국가가 버티고 있는 공공부문의 피고용인이 되는 것이 꿈인 때. 이 시대가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시대의 꿈, 공무원?


빨리 공무원이 되어야 오래 다닐 수 있고, 그래야 생애 전체의 소득이 민간기업 수준에 부합할 수 있기에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하다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는 나이가 어릴수록 경제적으로 이득이 크다.  급기야 이제는 취업을 준비하는 소위 취준생의 40%가 공시생인 시대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9급 공무원을 꿈꾸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외고에서 전교 1, 2등을 하는 학생이 "경쟁이 하기 싫어" 지방직 9급 공무원이 되고, 서울대 수시 전형에 합격한 학생도 대학 진학보다는 9급 공무원이 되기로 선택했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른바 '9급 공무원의 시대'가 말해주고 있는 바는 무엇일까?  꿈이 없는 시대가 아니라 그야말로 9급 공무원이 꿈인 시대인 것이다. 구조조정과 형식적 차별이 없고 정년과 연금이 보장되며, 경기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절대적인 고용주인 국가가 버티고 있는 공공부문의 피고용인이 되는 것이 '밀레니얼 세대'의 꿈인 시대이다.



전직 대통령의 도움(?)으로 공무원 시험을 보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독일에서 돌아온 나는 영어학원 강사, 잡지사 기자, 광고회사 크리에이터 등 몇 가지 직업을 거쳤다. 그러던 중 뒤늦게 공무원 시험공부에 뛰어들었다. 여러 직업을 경험하면서 나름의 보람과 성과도 있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미련은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한 꿈, 즉 공부였다. 무엇보다 독일 유학 시절 끝내지 못한 공부를 마치고 싶었고, 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생각하다가 선택한 길이 바로 9급 공무원 시험이었다. 국가직 중에서도 선관위 공무원이라면 내 꿈을 완성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선관위 내에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 연수나 직무훈련이라는 이름의 해외 유학 과정이 있었다. 비록 이제 그 기회는 신기루에 다름없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때의 미래 설계가 늦은 나이에도 공무원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너무도 경쟁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경쟁하지 않는 분야에서 정해진 틀과 규칙에 따르며 주어진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활용하고 싶었다. 모든 것을 내가 전부 기획하고 책임져야 하는 큰 프로젝트보다는 세분화된 과업 속에서 일부분의 역할만 충실하게 수행해 내고 책임도 그 부분에 대해서만 지게 되는 스몰 프로젝트를 주로 담당하는 일 말이다.



그런 스몰 프로젝트 성격에 딱 맞는 일이 바로 하급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지나치게 경쟁하기도 싫고 오래 일하는 것도 싫어서’ 공무원이 되기로 했다. 당시 혼자 생각으로는 말단 공무원이란 직업은 정해진 틀 속에서 하루 정규 근무시간 8시간만 열심히 일하면 퇴근 후에는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본인만 노력한다면 근무시간 외의 시간은 자기 계발과 자아실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였다. 특별한 창의력과 기획력이 요구되지 않으며 불법과 탈법만 자행하지 않으면 크게 책임질 일 없는, 당시의 내게 딱 필요한 직업이었던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쓸 필요 없이 외골수처럼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분야, 그것이 9급 공무원이었다. 경쟁을 피하는 대신 내가 선택한 것은 유예 시킨 꿈의 실현이었다.



경쟁을 피하는 대신 내가 선택한 것은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오스미 요시노리 일본 도쿄 공업대학 명예교수는 노벨상 수상 후 “경쟁하는 것보다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분야에서 개척하는 것이 즐겁다”라고 말했다. 이후 국내외 언론에서 그의 성공 비결을 이른바 ‘헤소마가리 へそまがり [臍曲(が) り] 정신’으로 명명했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인기 분야보다는 잘 진입하지 않는 일종의 블루오션에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꾸준히 한 우물을 파는 것, 남의 시선이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방법으로 외길을 가는 ‘외골수 정신’을 뜻한다. 일본어 학자들에 따르면 ‘헤소(綜麻)’는 삼베 실을 실패에 둘둘 감아놓은 것을 뜻하며 ‘마가리’는 구부러졌다는 뜻인데 고집쟁이가 제멋대로 감아 구부러지면서 독특한 모양이 되는 것을 보고 ‘헤소마가리’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하던 때의 마음이 요시노리 교수의 수상소감과 비슷했다. ‘헤소마가리’ 정신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뒤늦게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길이었음은 틀림없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치열하게 경쟁하기 싫어한 것은 요시노리 교수나 무한대의 과다 경쟁과 소모적 자기 혹사에 지쳐 말단 공무원이 되어 유예된 꿈을 이루고 싶어 했던 내 마음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의 ‘경쟁하기 싫음’과 요시노리 교수의 ‘경쟁하기 싫음’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하고, 다른 결을 지니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삶은 꿈꾸는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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