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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공 Sep 04. 2019

공무원이 되고
수입은 4분의 1토막이 났다

그럼에도 '미시적 동기'를 충족하는 삶은 행복하다


https://brunch.co.kr/@eurozine/298




큰 규모는 아니어도 꽤 괜찮은 광고회사에 다니던 나는 정말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참 무모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 그런 결정이 내겐 너무나 절실했다. 어찌어찌하여 9급 공무원이 되자, 내 수입은 예전에 비해 4분의 1로 줄었다. 2014년 임용 당시 9급 행정서기보의 봉급은 이런저런 수당을 다 합해도 200만 원이 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고 예상했던 대로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동료들은 의아해하고, 놀라워하고, 걱정하고 우려했다.     

“9급 공무원 월급이 여기랑 비교도 안 되게 적을 텐데….”     

“공무원 되기도 쉽지 않지만, 나이 먹어서 새로운 일한다는 게 힘들 텐데.”     

“공무원이 오래 다닐 수야 있지만….”     


내 이직 결정에 대해 직장 동료들, 주변 지인들의 의견은 결국 ‘왜 괜찮은 직장을 나와 힘들게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냐’, ‘공무원 월급으로는 지금의 생활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우려와 걱정은 적중했다. 적어도 경제적 관점에서는.




동료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그렇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내 삶은 공무원이 되고 나서 퇴보했다.  그런데 나는 봉급 월 200 만원도 안 되는 9급 행정서기보가 되고 나서 이전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이면서 또한 호모 루덴스이기 때문에.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우리 사회의 통상적인 기준과 대중적인 평가에 의하면 최고의, 최상의 만족을 주는 자리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전보다 나는 행복하고, 몸과 마음을 갉아먹던 이전의 우울한 피곤함은 이제 내겐 없다. 경제적으로는 더 궁핍해졌는데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해되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일뿐 아니라 호모 루덴스이기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우리 인간의 행동과 선택, 매 순간의 결정을 매듭짓는 사유의 근거를 오직 경제적 이유와 계량적 수치로만 설명하고 평가하려는 사람들에게 내 선택은 합리적이지 않고 따라서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의 많은 국면에는 단지 경제적 평가와 산술적 비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직급, 소득, 나이, 집의 평수, 소유한 차량의 배기량, 취득한 학위 수, 보유한 주식 평가액 등등의 숫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삶의 부분들이 있다.            




우리 삶은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내가 공무원이 되기 전에 다녔던 회사가 아무리 유망하고 타인의 평가와 기준에서 ‘꽤 괜찮은’ 직장이었어도 내게는 맞지 않았다. 분명히 밝혀 두지만 이건 내 기질과 성격, 내가 추구하는 가치의 문제이지 그 회사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삶의 전환을 생각하던 그 시기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삶의 가치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소소하지만 당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의 목록을 적어보았다. 


첫째, 실적과 승진을 위한 지나친 경쟁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둘째, 가족,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셋째, 회사 일은 줄이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었다.

넷째, 유학 시절 못다 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다섯째, 업무와 무관한 책들을 맘껏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었다.

여섯째, 선거 데이터를 이용해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

무모한 결정은 한 순간에!


거창하거나 특별한 혜택을 가져다주지 않는, 어떤 평가나 실적과는 무관하지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이렇게 선별하고 나니, 나는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꽉 짜인 일정과 지나친 실적 경쟁에서 벗어나 조금은 여유롭고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공무원이었던 것이다. 공무원이란 직업은 하루 주어진 8시간을 성실하게 근무하고 나면 퇴근 뒤에는 자유롭고 여유롭게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엄격한 규칙과 세분화된 직무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관료제를 택하다니! 아이러니하게도. 




깊게 생각하고 내린 결정은 아니었으 결과는 대 만족


그렇게 즉흥적일 정도로 갑자기 결정을 내리고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회사에서 추진하고 있던 업무가 인포그래픽 디자인 관련 업무였는데, 불현듯 선거 때마다 쏟아지는 우리나라의 선거 데이터를 활용한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관리위원회 시험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포그래픽 디자인 사이트


갑자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늦은 나이에 국가직 9급 행정서기보라는 하위직 공무원이 되었다. 부장급에서 하위직 공무원으로 직위는 낮아졌고, 수입은 4분의 1토막이 났지만, 그럼에도  삶의 만족도는 이전에 비해 매우 높아졌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내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졌다. 요즘은 근무하는 부처나 기관에 따라 야근도 많고 업부환경도 다를 것이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한 조직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만 책임감 있게 해낸다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휴가나 연가를 쓸 수 있고 퇴근 후에는 자기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공무원이란 조직은 당연히 촘촘히 짜인 규칙과 지침, 직급과 위계질서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퇴근 후에는 무엇보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여유의 시간, 내 삶의 향기와 촉감을 만끽할 수 있는 ‘여지’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이전보다 행복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려서’가 아니라 우리 삶과 우리 삶의 행복에는 수치로만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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