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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공 Nov 08. 2019

나는 9급 공무원이 될 운명이었나?

어느 '늦깎이' 공무원의 선거관리위원회 입성기

https://brunch.co.kr/@eurozine/298





“운명愛(amor fati), 이것이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의 본성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저는 2013년도에 시행된 국가직 선거행정 9급 공채에 합격해 현재 선거관리위원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관 홈페이지에 게재할 합격수기를 써달라는 연락을 받고 처음에는 다소 주저했습니다. 저의 시험성적이 다른 공무원 수험생들에게 귀감이 될 만큼 탁월하지도 않았고, 제가 특별히 도움이 될 만한 수험방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원고 청탁을 사양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저의 특이한 개인적 이력과 경험이, 정말 '늦은'(?)시점에 과감히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려는 소수의 특별한(?) 수험생들에게는 작지만, 큰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위로하며 부족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거다.”

 

제가 요즘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개그맨 박명수의 말입니다. 경쾌한 해학과 미묘한 진실이 묻어나는 그의 표현처럼 저는 정말 '늦게' 공무원 수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가 제 나이 이미 40대, 나이를 꼭 만(滿)으로 계산하는 방식에 이미 익숙해진 뒤였습니다. 같은 해 선관위 공채에 합격한 제 동기들 중에 저는 "넘버 투"였습니다. 공무원 시험 연령제한이 폐지된 뒤 저처럼 일반 사기업에 근무하다가 뒤늦게 공직에 도전하는 ‘늦깎이 수험생’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고, 선관위에도 그런 분들이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공무원 수험생활이나 구체적인 과목별 공부방법론 등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합격수기에 잘 소개되어 있으니 저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뒤늦게 공직에 도전하는 ‘늦깎이 수험생’들에게 그 도전의 과정이 최대한 단축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가 수험생활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합격 이후 공직생활의 실상(?)을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주어진 운명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한 결단으로 기꺼이 운명에 맞서려는 이런 ‘늦깎이 수험생’들을 저는 제가 좋아하는 독일 철학자 니체(Nietzsche)의 표현을 빌려 ‘운명을 사랑하는’ 수험생이라 표현하겠습니다.


  


왜 선거관리위원회인가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결정한 데에는 여러 가지 직·간접적인 요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재미있게 생활하는 가운데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어떤 갈증 같은 물음들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진정 이것인가?’, ‘내가 해외에서 공부했던 것들을 활용할 수는 없을까?’라는 물음들. 이런 고민 중 과로와 스트레스, 지나친 음주, 흡연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일주일 정도 입원하게 되었을 때 저는 퇴원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잠정 결단을 내렸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것이다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한 이상 어떤 직렬을 택할 것인가는 사실, 저에게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고 당연 선거행정직이었습니다. 대학시절 전공이 정치학이었던 이유도 있고,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독일에서 공부한 것도 정치학과, 철학, 국제법 등이었던 터라 저는 선거와 정치, 민주주의 이론과 공공철학 등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는 선관위에서 일하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사물과의 대화법을 터득한 수험생활


꽤 괜찮은(?)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하자,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은 우선 많은 걱정과 우려를 전했습니다. ‘그 나이에 그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공부를 할 수 있겠냐?’부터, ‘왜 늦은 나이에 보수도 열악한 공무원이 되려 하느냐?’ 등등. 한마디로 ‘무(모)한 도전’이라는 게 주위의 중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늦은 나이에 시작했으니 최단시간에 합격하리란 독한 각오로 7급 시험과 함께 9급 시험을 같이 준비했고, 1년 여의 수험기간 동안 국가직(9,7급), 지방직(9,7급), 서울시(9급) 총 5번 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5개 시험 중 하나는 합격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준비했더니 국가직, 지방직, 서울시 9급에는 모두 합격했습니다. 제가 시험 보던 해에 9급 공무원 시험과목에 사회, 과학, 수학 등 일반 고등학교 교과 과목이 처음 도입되어 과목 변동이 없는 7급 시험이 4월에 먼저 시행되고, 9급은 7월에 시행된 여파로 아쉽게도 7급은 준비가 부족했던 터라 불합격이었습니다. 면접은 지방직 경기도 면접이 제일 먼저 시작되었고, 그다음이 서울시, 마지막으로 국가직 선관위 면접이 12월에 있었습니다. 면접도 모두 통과되어 경기도와 서울시에 신규 발령까지 났지만 모두 철회하고 결국 원래 원했던 대로 저는 선관위를 선택했습니다.




공부방법에 대해 조금 말씀드린다면, 행정법, 행정학, 헌법 등은 대학시절 한번씩은 공부했던 과목들이라 기본개념들은 파악하고 있어서 기출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했습니다. 독일 유학 이후 국내에 돌아와 5년 정도 영어강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 영어는 따로 시험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실전에서는 그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은 무엇보다 시간 배분이 중요하단 사실을 혼자 공부하던 저로서는 미처 알지 못했고, 결국 난생처음 치른 국가직 7급 시험에서 영어 과목을 제일 나중에 풀다가 시간 부족으로 반 넘게 풀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시간을 재면서 최단시간에 문제풀이를 하는 식으로 공부했고 그것이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저 같은 ‘운명을 사랑하는’ 수험생들이 수험과정에서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이 바로 이런 시간 배분의 어려움과 순발력 부족, 그리고 급격한 체력 저하와 휘발성 암기력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저는 최대한 생활을 단순화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서울 집을 잠시 떠나 경기도에 원룸을 하나 얻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주변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과 부담스러운 걱정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공부에 집중도 잘 됐고, 한강변의 자전거 도로로 접근하기가 용이해서 주말에는 자전거 라이딩을 하면서 머리를 식힐 수 있었습니다. 원룸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서 매일 새벽 그곳으로 출근해서 공부했습니다. 그 도서관의 고양이가 저의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특별한, 마법같은 공부법은 없다


수험공부를 시작하면서 담배와 술 그리고 사람(여자 사람 친구 포함)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끊었습니다. 나름 학창 시절엔 공부 좀 했던(?) 축에 속했는데 막상 수험공부를 하려니 그동안 술, 담배, 사람에 찌든 머리는 잘 돌아가지도 않고, 기존의 사회생활과 인위적으로 단절한 채 홀로 공부를 하려니 광활한 우주에 혼자 떨어져 나온 듯 느껴지는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사물들과 대화하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저녁에는 오전에 공부하면서 작성한 암기노트, 오답노트를 가지고 외우는 데 주력했고, 공부가 안될 때는 도서관 열람실에서 다른 책들도 빌려 읽으며 여유를 찾으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로 부족했던 제가 1년 만에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보다 간절하게 선관위에 들어오고 싶은 절실함과 ‘무엇이든 진실로 원한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념 혹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던 것 같습니다. 슬럼프에 빠져 불안감에 휩싸이고 흔들릴 때는 합격 이후 선관위 생활을 그려보며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운명을 사랑하는 자’의 선관위 생활


제가 늦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것은 다니던 그 회사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제가 살아온 저만의 독특한 경험과 이력이 선관위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나름 선관위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합격 이후 실제 선관위 생활은 밖에서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점도 많았습니다. 직원들도 생각보다 적었고 비 선거철에도 미래유권자 교육과 각종 홍보활동, 위탁선거, 공동주택 선거관리 등으로 생각보다 일이 많았습니다.

  

생각보다 다양한 업무를 하는 선관위 공무원




선관위에서의 첫 근무지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만 자원한 강원도의 작은 군이었습니다. 부족한 저를 잘 이해해 주시던 너그럽고 배려심 깊은 국·과장님과 ‘막내 같지도 않은 막내’를 잘 이끌어준 여러 선배 직원들 덕분에 저는 첫 공직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선관위 업무는 그 핵심이 공직선거법 등에 기초해 공정하고 정확하게 절차사무를 관리하고 선거법 위반행위 예방 단속 활동을 하는 것이어서 끊임없이 관련 법규를 공부해야 했는데 일하면서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이 저는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지방에서 1년 반 정도 지도 홍보주임, 관리주임, 회계 주임으로 근무했고, 그곳에 있는 동안 알게 된, 운명처럼 다가 온 사랑을 만나 다시 서울로 오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강원도의 그 첫 발령지는 저녁 8시만 넘으면 인적이 끊기고 어둠이 찾아오는 적막한 산간오지, 변변한 극장 하나 대형 마트, 쇼핑몰, 버거킹 매장 하나 없는 문화적 불모지로서 기피대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에게 그곳은 아침이면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신비한 운무를 눈앞에서 볼 수 있고, 5월에도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설경을 볼 수 있는 경이로운 곳, 소비의 미덕보다 절제의 미덕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2015년, 2017년, 2018년에는 선관위에 근무하면서 독일 유학 시 익혔던 독일어 덕분에 선관위에서 주관하는 국외연수에 참가하여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와 통역을 하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는 독일의 정당 및 선거제도와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 민주시민교육의 사례와 경험을 탐구하고 소개하는 일도 해보고 싶습니다. 또 광고회사에서 근무했던 제 경험을 살려 다양한 뉴미디어 매체를 활용해 선거의 역사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미래세대에게 흥미롭고 유익하게 전달하는 일도 해보고 싶습니다.


  

경계와 한계를 넘어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정말 늦은 것이고, 나이는 절대 숫자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지 못할 나이가 없듯이 늦었다고 해서 어떤 반전을 위한 도전을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처럼 늦게 공직에 도전하려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신 분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 정확하게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융복합(融複合)의 시대, 경계와 한계가 허물어지는 디지털 노마드(Nomad)의 시대에도 여전히 공직 사회와 일반 회사는 근무환경이나 조직문화가 매우 상이합니다. 공직사회는 근본적으로 계급과 호봉 중심의 위계질서에 기반하고 있으며 그런 상이한 조직문화, 근무환경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경계와 한계를 넘어 새로운 자신을 만나다



저 역시 어렵게 내디딘 공직사회에서의 첫발이었지만 내적 갈등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주어진 운명에 안주하지 않고 삶에 대한 긍정과 도전정신으로 진정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니체의 운명愛(amor fati)’의 정신’이었습니다. 수많은 번민과 숙고 끝에 힘든 결정을 내리고 지금은 홀로 지독한 불안과 고립감을 견디고 있을, ‘운명을 사랑하는’ 수험생들이자 미래의 선관위 직원인 여러분 모두, 때때로 흔들리더라도 결국 자신을 넘어 새로운 '자신'을 만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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