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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공 Nov 12. 2019

페미니스트는 커피를 타지 않는다?

공무원 사회의 여성 근무환경을 생각하다

몇 년 전 일이다.  그때는 이른바 '미투 운동'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나는 사랑하게 된 사람이 있는 곳으로 전보 신청을 해서 옮겨왔다. 바로 그곳에서 근무하던 중 있었던 일이다. 최근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나자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났다. 우리 기관은 여타 공무원 조직에 비해 상당히 작은 규모의 조직이다. 그래서 선거가 있는 때면 계약직 직원을 별도 채용해서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 함께 일을 하게 된다. 그 당시 바로 그런 기간제 계약직 직원을 뽑는 일을 내가 담담했다. 물론 여러 지원자들 중에서 공개경쟁을 통해 서류심사과 면접심사를 거쳤고 최종적으로 국, 과장님의 결재를 득했다. 


최종 선발한 계약직 지원 중에 스무 살 중반의 한 여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직원이 처음 출근해서 직원들과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있자 직원 중 한분이 내 옆자리에 있는 그 계약직 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00 씨는 혹시 페미니스트 아니지? 커피 타는 거 싫어하나? 

여기서 일하면서 손님들 오면 커피도 내오고 해야 하는데. 괜찮아?"   


그분은 그냥 웃으면서 "네,, 전 페미니스트 아니에요. 커피 타는 거 상관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되면서 나는 좀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관리자의 지위에 오른 분이 페미니스트를 '커피 타지 않는 여자' 정도로 이해한다는 게 도무지 의아하고 불편했다.





82년생 공무원 김지영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82년생 김지영>들은 우리  공무원 조직에도 다수 존재한다. 사실 '미투 운동' 이전에 그들의 근무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공식적으로는 공무원 조직에서 남녀차별이 있을 수 없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차별은 만연했고,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기에 언어적, 신체적 성희롱도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성폭력으로 물의 사례를 일으켜 징계나 처벌을 받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커피를 꼭 여성 직원이 타야 맛이 좋은 것도 아닌데, 똑 같은 커피를 꼭 여성직원이 타줘야 기분이 좋아지는 간부들도 많았고, 공익이나 남성 직원이 타주는 커피는 이상하게 거부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위원회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 때 커피나 음료는 자기 것은 자기가 챙기기도 하고, 공익요원에게 준비시키기도 한다. 방문객이나 민원인을 응대할 때  제공하는 음료는 낱개로 포장된 비타민 음료 등을 면담자가 직접 챙겨가서 내놓는다.  


공무원 사회에서 <82년생 공무원 김지영>들은 급여와 승진 등 인사부문에서 공식적인 차별은 받지 않는다. 공무원 봉급과 수당이야 법적으로 정해진 금액을, 법적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지급해야 하기에. 하지만 비공식적인 차별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예를 들어 승진에서도 같은 조건이라면 인사권자들은 여자보다는 남자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유리한 승진 가점을 확보할 수 있는 상급기관 근무에서도 남성이나 비혼 여성을 더 선호했다. 그리고 그것이 차별인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공무원 조직에서 육아휴직은 자유롭지만

육아휴직과 출산휴가(이 '휴가"라는 용어부터 적절하지 않다. 출산을 위해 무슨 휴가를 가는 것도 아닌데 '휴가'라니!)도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제도지만 일부 남성 직원들과 일부 간부님들 중에는 어려운 업무를 회피하기 위해  여성 직원들이 육아 휴직과 출산 휴가, 유연근무제 등을 사용한다는 부정적 인식도 갖고 있었다. 또 신체 구조상 출산을 여성이 담당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남성 직원도 육아를 위해 육아휴직을 합법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였지만 실제에서는 육아휴직은 주로 여성들만의 몫이었다.  육아는 여성들의 본래 여성의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육아휴직의 기회비용이 여성보다는 남성의 경우가 더 크다는 이유에서. 이는 남성의 육아휴직은 직장 내 성공을 위한 경력관리의 포기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워킹맘에게도 육아는 여성의 몫이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고, 여성을 쉽게 성적 대상화하는 여성 혐오적 문화가 만연했던 과거에는, 언어적 성희롱에서부터 심각한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82년생 공무원 김지영>들은 성차별적 업무환경에 쉽게 노출됐었다. 간담회 이후 이어지는 회식자리에서 여성 직원들은 성희롱에 쉽게 무방비 상태로 놓였고, 흔히 자신의 상사이거나 간부에 의해 자행된 성범죄의 경우에는 문제제기도 쉽지 않았다. 그들이 피해 여성의 인사권자이거나, 관리자이거나 그들과 친분이 있는 간부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2019년의 공직사회는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자각이 생겨났고, 그 한가운데 '미투 운동'이 있었다. 미투 이전이라면 '이런 게 성희롱인지 몰랐다.'는 구차한 변명이 통했겠지만 지금은 통할 수 없다.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2019년의 대한민국 공직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인식과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존중이 미흡하다. 그러하기에 <82년생 공무원 김지영>은 여전히 내 주변에 존재한다. 그럴 리가 없다고? <62년생 김영자>라면 몰라도 지금은 오히려 남성들이 피해자라고?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사무실에서 커피를 타지 않고, 남자들이 그 힘든 생수통을 들어 올리고 있다고? 그런가? 하지만 나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82년생 공무원 김지영>은 여전히 공직 사회의 여성에 대한 비공식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2019년 대한민국의 공직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란 커피 타기 싫어하는 여자'라는 조악한 관념이 여전히 통용된다면 변화는 요원할 것이다. 페미니스트(feminist)의  기본 의미는 '여성의 자유와 권리의 확대,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변화는 있었지만 여전히 변화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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