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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공 Oct 28. 2020

아내가 흔들린다

천 번쯤 흔들리면 이 고민이 사라질 수 있을까

얼마 전부터 거리에서 간혹 마주치는 아기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아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도 아이 하나 가져야 할까?"

요즘 부쩍 어린 시절의 자신을 닮았을 법한 귀여운 여자 아기가 머리를 고무줄로 두 갈래로 묶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종아리로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아내가 하염없이 바라보는 일이 잦아지던 터라 예감은 하고 있었다. 아내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아내가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 지난번 승진에서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다른 동기들에게 밀린 이후로 당분간은 아기를 갖고 싶지 않다던 아내의 마음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사실, 아내는 결혼 전에는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지 않을 거면 그냥 연애나 동거를 하면 되지 굳이 결혼까지 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내게 묻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무엇보다 여성의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선택의 최종 결정권자는 아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아내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다.  분명 아내는 결혼 전에는 아이를 하나 정도는 낳아 기르고 싶어 했다. 물론, 이미 먼저 결혼해서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현재 육아를 진행 중인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는 임신과 출산과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전쟁 같은 일'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임신 후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달라지는 몸의 동물적인 변화, 그 리얼하고 잔혹한 모성 본능의 세계와 아비규환과 무간지옥을 넘나드는 육아의 고달픔과 버거움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내는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통상적 경로를 삶의 필연적 과정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내의 시선을 자꾸만 강탈하는




아내가 마음에서 아이를 지운 이유는

그랬던 아내는 승진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다른 남자 동기들에게 밀리고 출산과 육아로 인해 감당해야 할 불이익과 경력단절을 피할 수 없게 되면서 아내의 마음속에서 아이 생각은 잠시 지우게 됐다. 맹세컨대, 내가 남편의 관점에서 주관적, 호의적 평가를 내려서가 아니라, 제3자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아내는 실적과 성과 면에서 분명 우수한 직원임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입사 이후 다른 남자 직원과 비교할 때 상당히 많은 불합리한 대우와 불공정한 평가를 받았다. 그것은 소위 '관운'이라는 우연성 때문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노골적이고, 남성우월적이고 가부장적인 부서장과 인사평정자의 선입견이 개입한 결과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아내는 특정 보직을 다른 남자 동기에 계속해서 양보하도록 강요받아야 했고 이는 인사상의 불이익으로 이어졌다. 승진 순위에서도 특별한 이유 없이 가정이 있는 남자 동기나 남자 직원에게 업무실적이나 업무성과와 무관하게 승진순서에서 밀려야 했다. 그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인사의 충격은 아내에게 잠정적인 출산과 육아의 포기를 결심하게 했다. 그냥 열심히 일해도 공정한 평가를 받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임신과 출산, 육아와 양육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생길 경우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은 너무 분명해 보였다. 아내는 그래서 오히려 결혼 이후에는 마음속에서 아이를 지워버렸다. 임신과 출산,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도 직장 내 경력 경쟁이나 승진에서도 우위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출산과 육아를 포기하게 만든 다른 요인들도 물론 있지만 내가 아내와 이야기를 해본 결과 위에 말한 이유가 가장 컸다. 물론 육아휴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수입 감소, 아내와 내가 모두 오랜 시간 집을 비워야 하는 선거기간에는 현실적으로 육아를 담당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우리 부부에게는 출산과 육아를 기피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다.  




부모는 되지 않기로 했지만

그렇게 해서, 아내와 나는 결혼 후에도 '부모'는 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아내의 결정이 내심 고마웠다. 내가 '아빠'는 되지 않기로 한 이유는 아무리 정리해 보려 해도 정리가 잘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내가, 혹은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은, 매우 복합적인 고민의 과정이자 결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이 이거다라고 정해준 순리와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 사를  남들이 말하는 '순리' 대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과감하게 결정하지 못하는 내 성격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아이 없는 결혼 생활을 설명하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아이와 일 둘 다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유도 있고, 아이를 낳아도 맡아줄 부모님이 없다는 이유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낳지 않는 명쾌한 이유 못지않게 아이를 낳아야 하는 명쾌한 이유도 아직 찾지 못한 것도 우리가 아이를 갖지 않는 중요한 이유다.   

여기에 엄청난 행복의 비밀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임신과 출산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남자인 나로서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신체적인 변화가 여성의 몸에 가져올 위험성과 급격한 변화에 대한 우려는 일단 그 이유 중에서 배제된다. '세상 사람 거의 다 누리는 놀라운 경험'이라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을 마다하고 싶은 이유는 육아와 양육을 위한 부모로서의 무한한 희생과 책임을 감내할 각오가 아직은 내게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가져다 줄 기쁨과 행복, 확대된 가족이 주는 안정감과 충만감을 위해 아내와 내가 포기하고 감수해야 하는 희생의 크기와 폭이 너무 크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아이가 없어도 부부관계가 좋지만 나중에는 아이가 없으면 부부관계가 위기에 처한다"라고 하면서 아이 낳기를 권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부모로서의 희생과 책임의 무게가 서로에게 너무 버거운 상황에서 부부관계가 더욱 위기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없을 때는 정말 사이좋은 부부가 아이를 낳고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과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국에 이른 사례도 많지 않나? 그래서 나는 아이라는 존재가 내 삶의 영역에 가져올 그 엄청난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의 파장을 지금 감당하고 싶지 않다. 이는 그런 부모로서의 희생과 이타심의 발현이 한 인간으로서 보다 완전해지고 성숙해지는 과정이며, 놀랍고 신비로운 관계의 확장이며, 매우 특별하고 고유한 경험이라 해도 그것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와 희생이 현재의 척도로는 너무 크기 때문이다.




우린 계속 흔들리겠지만 

아내의 마음은 지나치며 만나는 귀여운 아기의 모습에 흔들리고, 가족 단톡방에 올라오는 사촌동생들의 아기 사진과 동영상에 흔들리고, 그 아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감탄하는 부모님의 환한 표정에 흔들린다. 그리고 "오빠도 오빠 닮은 아기 있으면 좋지 않아?"하고 내 눈을 바라보며 묻는 아내의 질문에 내 마음도 흔들린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우리 마음속엔 많은 생각들이 피어오른다.


'남의 애기도 저렇게 귀여워하시는데 자기 손자면 얼마나 더 이뻐하고 행복해하실까?'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게 엄청나게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 속에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행복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정말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을 때는 후회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이 없는 삶은 이기적이고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삶인 것일까?'

'평생 나 좋은 대로만 하고 살아도 되나?'

'아내와 나, 둘만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무언가 부족한 삶일까?'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간관계의 무한한 깊이와 사랑을 우린 느끼진 못하고 사는 건 아닐까?'

'아이가 가져다준다는 그 엄청난 행복을 위해 우리가 감내해야 할 희생과 책임이 너무 큰 것은 아닐까?'

  


부모가 된다는 것



형제자매가 있어 이미 부모님이 손자 손녀를 안아 볼 기회를 가져 보신 나와는 달리 아내는 자신이 부모님에게 손자나 손녀를 안겨주지 않으면 어머님, 아버님은 자신들의 손자를 품에 안아보고 눈을 맞추는 행복한 기회를 맛보지 못할 것이라는 부담감을 마음에 갖고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을 세상에 내놓고 그 존재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도와주는 과정의 어려움과 버거움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우리의 흔들림과 고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임신과 출신이 자신의 몸에 가져올 변화와 위협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만약 의술이 발달해서 남자인 내가 임신과 분만을 할 수 있다면 분명 아이를 낳자고 할 거라고 아내는 선언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아내에게 울며 매달려야 하나?  내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제발 존중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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