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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로츠뎀 Jul 31. 2024

픽션과 논픽션

괴물은 누구일까 _17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어서 거짓말을 해요.

그들이 알게 되면 내가 행복해질 수 없을까봐요."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중에서




문학이론에서 픽션 fiction이란 1. 사실이 아닌 상상에 의해 씌어진 이야기나 소설, 혹은 2. 실제에 근거를 두지 않고 만들거나 거짓으로 꾸며낸 것을 말하죠. 반면에 논픽션 nonfiction이란 꾸며낸 허구가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씌어진 산문 등을 말합니다. 단순화하면 픽션은 허구, 논픽션은 실제라고 말할 수도 있죠. 지난 해 12월 p에 대한 우리 중앙 감사과의 졸속 감사와 인사과의 부당한 전보조치를 접하며 이런 기막힌 일이 현실에서 두번씩이나 벌어진다는 게 믿기 어려웠죠. 공직 생활을 하다 보면 1번 받기도 어려운 감사를 1년에 두 번씩이나 받게 되다니! 그것도 상반기에는 일부 동료 직원들의 음해에 의해서, 그리고 하반기에는 친했던 사무보조원(기간제 근로자)의 앙심에 의해서!


상반기에 '갑질 괴롭힘 가해자들이 피해자인 P와 함께 일하기 불편해 한다'며 P의 '방출'을 시도했던 감사과는 하반기에는 사무보조원이 자발적으로 태워준 차량 동승이 부당행위라며 감사를 실시, 결국 P를 '퇴출'시키는 데에 성공했죠. 저는 이런 집요한 감사와 사무보조원의 고발, 인사과의 퇴출 시도가 기막힌 우연이라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엔 가설을 세웠습니다. 




P에 대한 집요한 두 번의 감사와 퇴출 시도에는 '무언가' 내막이 있다. P를 중앙에서 쫓아 내고 싶은 누군가의 의도와 계획이 그 시도 뒤에 숨어 있다고 가정했죠. 사실 처음에는 저도 이 사건의 내막과 진상에 대해 정확한 내용과 사실을 알 수 없었어요. 또 이 문제는 우리 조직 내 가장 강력한 부서인 감사과와 인사과가 개입된 문제이기에 애초부터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했어요. 즉, 사건의 내막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감사과와 인사과가 보유하고 있지만, 그 정보에 대한 접근은 감사규정, 인사규정 상의 비밀 엄수 조항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었죠. 결국, p에 대한 '감사 갑질'이 터졌을 때 이 사건을 우리 회사내부 게시판에 정리해서 공개한 제 이야기 '괴물은 누구일까'는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에 가까웠습니다. 


한 사람이 같은 해에 두 번씩 감사를 받고, 결국 중앙 부서에서 '추방'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지 못한 특이한 일이었기에 이 이야기에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에는 순전히 논리적 추론과 유추, 정황과 의혹을 모아 사건을 재구성했습니다. 그렇게 쌓아 올린 이 '감사 갑질'의 내막은 다음과 같았죠. 






2023년 1월 초 P가 근무하던 중앙 J과의  초기 멤버들은 구태의연한 '간식 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간식과 관련해 P를 괴롭혔다. P가 지나친 간식 비교나  갑질을 삼가 달라는 메일을 보내자, K 계장과 J주무관은 이를 괘씸히 여겨 감사과장에게 고발한다. 물론 자신들이 P에게 간식 갑질을 했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고, P가 이미 구비해 놓은 간식 이외에 자신들이 요구하는 각양각색의 간식을 웃으며 사주지 않아 함께 지내기 '불편한 직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겠지. 그래서 P에게 '자기 업무를 제대로 안 한다'는 '업무 기피자' 프레임을 씌워 '함께 일하기 불편하니 중앙에서 내 보냈으면 좋겠다'고 감사과장에게 '풍문'을 전한다. 


마침, 사발면 K 계장과 감사과장은 동향 출신으로 함께 근무도 하고, 함께 중앙에 온 막역한 사이였기에 P를 중앙에서 '추방'하려는 이유에 대해 주관적인 편견과 평가를 섞어 소상히 피력했을 겁니다. 그들의 의도대로 P를 간식 갑질 괴롭힘 피해자가 아니라 '업무기피자' 몰아가기 위해 감사과장은 은밀하게 P의 직속계장, 해당과 과장, P에 우호적인 직원은 배제하고, 오로지 '간식 갑질' 문제로 P와 불편한 관계였던 직원 5명만 비밀리에 면담한 후 '감찰 보고서'를 작성했죠. 당사자인 P를 배제한 것은 물론이죠. 이렇게 해서 P에게 불리한 내용으로만 채워진 편향적인 '감찰 보고서'를 상반기 인사 발령 시기에 맞춰 인사과에 통보한다. 이후 인사과는 이런 편파적인 '감찰 보고서'를 전보 심사위원회에 회부했고, P와 근무해 보지도 않았고 P를 잘 알지도 못하는 전보심사위원들은 문제의 '감찰 보고서'만 보고 P를 중앙에서 내보내는 데 찬성한다. 마침 또 이때 P를 대신해 중앙에 전입시험도 없이 연줄을 이용해 오기로 '내정'된 직원도 있었기에 반드시 P를 중앙 내 전보가 아니라 중앙에서 '퇴출'시켜야 했다.  여기까지가 상반기 감사와 1차 '퇴출' 시도에 대한 저의 논리적 재구성입니다. 




하반기 2차 감사와 2차 '축출' 시도에 대한 내막과 진상에 대한 저의 재구성은 다음과 같죠.

P와 저의 강력한 반발, 당사자에 소명 기회조차 주지 않고, 일부 갑질 가해자들만 면담한 편향적인 감사의 부당성, 이런 부당한 감사를 기초로 작성된 '감찰 보고서'로 인한 무리한 전보 조치에 대한 반발 때문에 상반기 감사과와 인사과의 1차 '축출' 시도는 실패하고 전보조치는 번복되었다. 이 과정에서 감사를 주도한, 감사과장은 입장이 난처해지고, P를 몰아내려 감사를 촉발한 '용수철 주무관 J'도 심리적으로 불안해진다. 기회를 노리던 이들이 다시 P에 대해 '종국적 해결'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무보조원 Y의 도움 덕분이었다. 상반기 P와 절친했던 Y는 9월경 P로부터 업무 관련 주의를 듣자 자존심이 상해 앙심을 품는다. 용수철 주무관 J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접근해 Y 부추겨 P를 감사과에 고발하도록 사주한다. '용수철 J'는 감사과 직원 및 감사과장과도 사전에 조율을 한다. 하지만 친했던 사무보조원 차량을 이용한 것만으로는 큰 징계 사유가 될 수 없으니, 다른 사무보조원에 대한 야근 지시나 관서운영경비 회계카드 관리 소홀 등을 문제 삼아 함께 고발한다. 상반기 1차 축출 시도에 실패했던 감사과는 하반기에는 더욱 신속하게 감사를 진행, 단 한차례만 P를 조사한 후 사무보조원의 일방적인 주장만 채택해 감사를 종결하고 인사과에 '분리조치'를 권고한다.



이에 인사과는 중앙 내 전보가 아닌 시도 간 전보조치를 단행하여 마침내 P를 추방하는 데 성공한다. 상반기에 최종 결재 전에 전보 사실을 통보해 주어 번복되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인사과는 P에게 불리한 인사조치를 하면서도 아예 사전통보를 하지 않았다. 또 감사과는 당사자에게 소명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해 가기 위해 형식적인 당사자 조차를 마치고, P와 사무보조원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확인 절차 없이 사무보조원의 일방적 주장만 채택해 감사를 종결했다. 이렇게 해서 1년간 진행된 '갑질 괴롭힘 피해자' P에 대한 중앙 '축출 프로젝트'는 종국적으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저는 처음에는 제가 알고 있는 단편적인 사실들과 P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마치 소설처럼 픽션에 가까운 이야기를 주장했어요. 제 가설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면서요. 당시에는 P도 심한 충격으로 제 정신이 아니었고 저도 사건을 제대로 파악할 경황이 없었죠.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이거예요. 처음 이렇게 픽션에 가까운 사건의 재구성이 점차 관계자 면담과 자료 수집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헤칠수록 점점 더 사실에 가까운 서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픽션에서 논픽션으로 전환된 거죠. 상반기 P가 해당과 과장, 인사과장과 나눈 면담 자료, P와 사발면 K계장이 주고받은 이메일, P가 감사과와 인사과에 제보한 K 계장에 대한 갑질 괴롭힘 신고 메일 등 서면자료와 P와 사무보조원 Y와 나눈 SNS대화, P가 동료 직원이나 직속 계장에게 고충을 호소하는 카톡 메시지 등을 엄밀히 분석해 볼수록 제가 세운 가설과 가정은 점차 픽션이 아니라 사실임이 드러나더군요. 놀랍게도 자료가 부족한 가운데 세웠던 제 가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고요. 


에곤 쉴레 <자화상>

P가 정신과 치료를 하는 동안, 제가 대신해서 관계자들과 면담을 요청해 수차례 면담을 가졌습니다. 해당과 과장님과 3~4 차례, 직속 계장님 3차례, 감사과 담당 직원 2차례, 감사과장 1차례, 사무총장 1차례 등 총 720여 시간의 면담을 했죠. 또 자유게시판에 4만 자 넘는 분량의 고발 및 진상규명 요구 글 게시, 관련자의 해명과 면담을 요청하는 100여 통의 메일 송신 등을 통해 제가 알아낸 사실은 처음 제가 세운 가정과 유추가 사실과 다름이 없었음을 확인했을 뿐이라는 겁니다. 이제부터 그 면담 과정의 웃지 못할 진상을 전해드릴 것입니다. 저의 면담요청과 해명을 요청에 대해 인사과장 같은 경우에는 '당사자가 아니면 만나지 않겠다'는 입장만 고수하면서 회피로 일관하고 있어 아직 저는 면담을 하지 못했죠. 당사자가 정신적인 고통과 불안정한 심리상태, 2차 가해의 위험 때문에 직접 면담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렸음에도 이런 회피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인사과의 무책임과 무성의에 대해 온 가족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죠. 제 가족이 인사문제로 어려움이 있고, 심한 고통을 받았기에 제가 당사자로서 우리 조직의 인사업무 책임자인 인사과장을 면담하고 싶다는 것인데 이를 거부하는 것이 고충처리 규정에 부합하는 일인지도 따져볼 문제입니다. 





놀랍게도 관계자들과 면담을 진행할수록 처음 제가 부족한 정보와 자료, 정황과 의혹, 논리적 추론과 해석만으로 쌓아 올린 사건의 재구성이 하나 둘 사실로 확인되고 확정되는 경험을 합니다. 상반기 감사에서 감사과는 갑질 가해자들만 대상을 면담을 진행해 '감찰 보고서'를 작성해 인사과에 송부했고, 하반기 감사에서는 감질 가해자인 용수철 주무관을 증인으로 채택해 감사의 객관성, 공정성을 잃었습니다. 이 주무관은 사무보조원과 사전에 만나 감사과 고발을 모의했고, 또 사무보조원의 회계 카드 결제 문제를 직접 감사과에 고발하기도 했더군요. 그렇게 소설이 사실이 되고, 픽션이 논픽션이 되고, 직원들 간 사소한 갈등이 '고발 사주'가 되고 '감사 갑질'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갑질 괴롭힘 피해자 P는 연고와 인맥, 지연과 친분을 이용한 '용수철 주무관 J'와 '루카스 나인 라떼 K 계장'의 '사내 정치'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고요. 이제 그 '만남의 시간'들을 전해 드리려 합니다. 어떤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한 리얼리티 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부실한 해명과 바로 탄로 날 거짓 해명이 얼마나 큰 웃음을 자아내는지, 이 분들의 어설픈 메서드 연기가 얼마나 어설픈 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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