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늘에서야 별다방에서 출시한 비건 푸드 4종을 다 먹어봤다. 4종의 비건 푸드란 플랜트 베이스드 푸드 즉 식물성 재료로만 만든 비건 푸드를 말한다. 진한 초콜릿 퍼지 케이크와 리얼 감자 베이글, 스위트 칠리 올리브 치아바타에 이어 방금 멕시칸 라이스 브리또까지 먹어치웠다.(이 글을 쓸 때만 해도 두유 밤콩 식빵이 나오기 전이었고 현재는 몇 가지 더 나와있다!). 흔하디 흔한 별다방에 와서 브리또에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뭐 그래 대수길래 호들갑을 떠냐고 할 수도 있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 게 이 나라 비건 라이프의 현실이기도 하다. 글 한 줄이라도 더 쓰려면 집을 벗어나야 하는 나 같은 '카페 글쓰기족'은 일단 카페에 자주 출석해야 글 창고가 채워지는 편이다. 그러니 카페에 쓰는 돈은 일종의 수업료 거나 원고료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게 나와 있다 보면 배가 고파질 때가 종종 생겨 먹을거리를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요리보고 저리 봐도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빵 쪼가리는 없다.
비건 메뉴를 사수하라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건들은 모처럼 나온 비건 푸드들을 사수(?)하는데 열성인 편이다. 수요와 공급의 하모니를 최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칠 때에 신 메뉴를 거둬들이는 일은 쉽게 봐온 일이기 때문이다. 커피 맛이 별로라거나 다국적 기업이라는 이유로 별다방을 꺼리는 사람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커피 한 잔에 비건 디저트, 즉 최소한의 앙상블을 원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별다방에서 출시해주는 비건 메뉴들은 고마운 게 사실이다. 단골 카페를 만들고 싶어 보통의 카페에서 우유 대신 두유를 넣어 비건 라테 해줄 수 있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주문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럴 경우 대개는 까다롭거나 알레르기 보유 손님으로 비추어진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사정이 이런데 우유와 달걀과 동물성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비건 디저트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해요?
논 비건에 비해 숫자적으로 열세한 비건을 대하는 사람 중에 가끔 유연하고 여유로운 인격의 소유자를 마주할 때가 있다. 드문 일이다 보니 그런 날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더러는 그 사람에게 축복을 빌어주고 싶어지기도 하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네 번째 메뉴인 라이스 브리또를 주문하며 나도 모르게 비건인 게 "확실해요?"라고 묻고 말았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봐 경우에 따라 그 질문은 카페 주인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뱉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마 오래전 작은 카페에서의 기억이 떠올라서 스스로 놀랐던 것 같다. 그런데 웬걸 돌아오는 대답이 친절하고 경쾌하기까지 했다.
"네, 확실해요, 여기 비건이라고 쓰여있네요" 하며 멕시칸 라이스 브리또 포장지의 비건 표시를 보여주는 거였다.
우유는 송아지의 눈물
너무도 손쉽게 접하는 우유는 사실 송아지가 먹어야 할 송아지 엄마의 젖이다. 인간에게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엄마소들에게는 성장촉진제가 주입된다. 어린 송아지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소와 격리된다. 뿐만 아니라 어린 송아지들의 입은 단단한 가리개로 막아놓는다. 강제적 임신을 통해 송아지를 낳고 젖이 돌게 된 엄마소는 단지 인간에게 공급될 우유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삶을 이어간다. 끝없이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을 통해 젖소의 뼈는 부서질 정도로 약해진다. 마침내 더 이상 임신도 출산도 우유도 생산할 수 없는 젖소들은 옴짝달싹 못할 정도의 좁은 공간에 빽빽이 실린 채 도축장으로 이동된다. 가는 길의 공포와 절망과 슬픔을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 공포와 고통의 감정 속에서 죽임을 당한 소를 인간은 다양한 목적과 쓰임에 맞춰 도륙하게 된다. 소가죽 구두며 소가죽 가방이며 쟈켓이며 등등의 배후에는 오랫동안 묵인되어온 이런 관계망이 장치되어있었던 거다.
루미 님의 소이 라테
다시 우유로 돌아와 우유는 명백히 이렇게 탄생된다. 미모를 칭송하거나 깨끗한 피부를 상징하기도 하는 '우유빛깔'이라는 이미지 속에는 인간 편에서 착취된 '핏빛 고통' 이 들어있다. 저 푸른 초원 위를 평화롭게 거니는 행복해 보이는 소의 이미지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상품 홍보를 위한 수단이며 이미지 메이킹일 뿐이다. 세상에 윤리적인 유제품이라는 말은 논리적이지 않을뿐더러 위선에 가깝다. 여기서 '루미'는 별다방을 이용할 때 쓰는 내 아이디이며 '소이 라테'는 지난 수년간 라테를 좋아하는 내가 가장 애용했던 별다방 메뉴이다. 최근 들어 루미 님의 메뉴가 다양해졌는데 이 까닭을 세상이 좀 더 자비로워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보기로 한다. 아니어도 그렇게 믿고 싶고 우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