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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Oct 19. 2021

앙리 루소와 비건 타이거

옷을 대하는 비건의 감정

잠자는 집시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떠오른다. 그동안 보아왔던 그림들과는 다른 강렬한 끌림이 있어 작가를 찾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잡아먹힐 수도 있을 것 같은 위험한 상황을 모른 채 검은 피부의 집시 여인이 곤히 잠들어있다. 도대체 얼마나 멀고도 거친 길을 걸어온 것일까. 잠든 집시 여인의 옆에 놓인 만돌린과 호리병마저도 잠에 든 듯 평온하다. 멀리 보이는 저 산을 넘어 사막을 건너온 것일까. 비로소 도착하자마자 밀려오는 안도감에 얼핏 경계의 상징처럼 보이는 지팡이를 손에 쥔 채로 스르르 잠에 빠져 든 것일까? 


검푸른 하늘 위로  높이 떠오른 희고 둥근달,  흩뿌린 듯 별 몇이 희미하게 그 곁에서 반짝인다. 짐작하기 쉽지 않은 표정으로 사자는 집시 여인을 내려다보고 있다. 적어도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먹이를 대하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우연히 마주쳤고 그저 살펴볼 뿐이고, 탐색 후에는 별 일 아니라는 듯 곤히 잠든 집시 여인을 지나쳐 갈 것만 같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감상이지만 말이다.



부제: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을 망설인다’


앙리 루소는 다른 화가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독학으로 전업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화가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북서부 도시 라발(Laval)이라는 곳에서 출생해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자였던 부친이 일찍 타계하며 집안의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은 그 배경을  짐작하게 해 준다. 소박하며 원시적인 기질과 직관주의 소유자로 알려진 그는‘자연’을 스승 삼아 그림을 그린 작가이다. 그가 남긴 그림은 약 200여 점이었으나 완성 후에도 수차례 수정해 명기된 시기가 정확하지 않은 작품이 제법 많은 편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우스꽝스러운 기인쯤으로 여겨 무시하곤 했으나, 루소 자신은 무조건 그림이 좋아 그리기 시작했던 자신을 믿고 화가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1897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잠자는 집시’에 작가는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을 망설인다’라는 흥미로운 부제를 붙였다고 한다. 


나는 이 부제를 붙인 작가의 의도에서 그가 살았던 시대에 저항하는 작가정신을 엿보게 됨과 더불어 과도하게 먹을거리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욕망이 겹쳐져 보인다. 이 사자와 달리 지금의 현대인들이라면 배가 불러도 결코 사냥을 멈추지 않았을 것만 같다. 과도한 육식으로 온갖 현대병들 속에 살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비건 타이거 Vegan Tiger


'비건 타이거'는 '양윤아 디자이너'가 지난 2015년 11월에 론칭한 비건 패션 브랜드다. 비건 패션은 가죽, 모피, 울 등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옷을 뜻한다. 동물성 식재료를 배제하는 채식주의자인 비건을 옷에 적용시킴으로써 비롯됐는데 국내 첫 비건 패션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다.  이 가을, 아니 겨울을 앞두고 비건 타이거는 2021년 가을, 겨울 시즌 신제품들 중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을 불러다 놓았다. 앙리 루소의 그림을 좋아하는 데다 비건인 나는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먹는 것 말고 입는 것, 신는 것 바르는 것 등 동물 착취가 일상화된 세상 속에서 그렇지 않은 것을 찾는 것은 어느새 비건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생활 속 일부가 되었다. 비건 타이거를 만든 양윤아 대표도 '동물보호 운동'을 하다가 전공인 패션디자인의 재능을 살려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또한 양 대표는 국내의 '비건 페스티벌 코리아'를 열기 시작한 주역이라고 한다. 



제비족(Zerowaste Vegan)의 어려움


비건 생활자로 살다 보니 그동안 내가 지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고만 살았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어오는 것 또한 신기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닌지 요즘 유행인 신조어 '제비족'이란 '제로 웨이스트 zero waste vegan 비건'의 줄임말이다. 말 그래로 최대한 쓰레기 배출을 줄이는 생활방식을 선택해 살아가는 비건 생활자들을 말한다. 타 생명의 고통을 수반하지 않은 먹을거리며 생활방식을 선택해 산다고는 하지만 소비패턴을 줄이는 일은 근원적 욕망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옷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제비족'이라는 호칭이 과연 어울리는 것일까 스스로 점검해 보기도 한다.  패셔너블하고도 개성 넘치는 패션, 즉 비건 패션산업이 나날이 진보하고 있기에 갖고 싶은 아이템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의식의 기반 아래 '착취 없는 패션', '고통 없는 패션', '리사이클링 패션'을 기반한 브랜드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구를 위해서, 아니 앞으로 살아갈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참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옷장에는 오리털, 거위털 파카가 없다. 가족들도 아예 구매하지 않은지 꽤 되었다. 그것 없이도 겨울을 날만한 따뜻하고 멋진 옷들은 충분하다. 관심이 있으면 그만큼 보이기 때문에 다양해진 비건 패션 아이템들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 티셔츠를 샀다는 얘기

 

'비건 타이거' 브랜드가 생겨난 이후 많지는 않지만 몇 벌의 옷을 사서 기분 좋게 소장하거나 철마다 꺼내 입고 있다. 고통의 에너지가 배어있지 않은 이 옷들을 입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사진도 찍고 그런다. 그중의 하나가 셀럽인 유재석 씨가 입어서 더 유명해진 비건 타이거 블루 셔츠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겸허한 자세와 특유의 편안한 이미지로 명 사회자로 널리 알려진 유재석 씨에게 비건 타이거 블루 셔츠는 잘 어울렸지만, 사실 유재석 씨보다 내가 먼저 입었었다. 


아무튼 그리고 얼마 전에 주문한 앙리 루소의 집시 여인 티셔츠가 오늘 도착했다. 모델들처럼 소화를 시키진 못하겠지만 셔츠 안에 이너로 혹은 요가 워크숍, 혹은 쟈켓 안에 입어 볼까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비건 타이거 옷을 입으면 좋은 일이 생기곤 했으니 이 가을, 아니 겨울 봄에도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어보기로 한다.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하는  비 건족이 특별한 디자인의 티셔츠 한 장 사 입었다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도 하며 이 글을 마친다.


  위 글의 이해를 돕고자 2017.02.04일 자 뉴스 앤 조이-최유리 기자의 인터뷰 기사인
<동물에 고통을 주지 않으면서 패션을 즐길 순 없을까> 기사를 발췌해서  첨부합니다.
 
  겨울철 소비되는 보온 의류는 대부분 동물을 학대하면서 만들어진다. 살아 있는 오리·거위의 가슴 털을 막무가내로 뽑는다. 신선한 제품을 위해 산 채로 라쿤의 가죽을 벗겨 낸다.  

 동물 보호 단체 '페타'(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는 2013년 앙고라 털 생산과정을 공개했다. 영상은 충격적이다. 앙고라 니트 주재료인 토끼털을 얻기 위해, 살아 있는 상태에서 모근까지 뽑는다. 토끼는 울부짖는다. 피범벅 된 맨살 위에 다시 털이 올라올 때까지 토끼는 좁은 철장에 갇혀 지낸다.
    
  동물에 피해 주지 않는 옷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비건 패션'에 관심을 갖는다. 채식주의자라는 뜻의 '비건'에서 파생한 말이다. 동물성 가죽과 털을 사용하지 않고 옷을 만든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비건 패션 전문 업체를 찾기는 어렵다. 수소문 끝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비건 패션을 전담하는 브랜드를 찾았다. 브랜드명은 '비건 타이거(Vegan Tiger)'. 어떤 생각으로 비건 타이거를 만들었을까. 장사는 잘 될까. 2월 1일, 비건 타이거 양윤아 대표를 불광동에서 만났다.  
 [출처: 뉴스 앤 조이] 모피는 그만! 동물 살리는 '비건 패션’       


왼쪽 : '놀면 뭐하니' 에 비건타이거 셔츠를 입고 나온 유재석씨, 오른 쪽 : 같은 셔츠 입은 필자
왼 쪽 : 앙리 루소의 그림 잠자는 짚시 여인, 오른 쪽: 비건 타이거 양윤아 대표  
겨울 옷 울제품을 위해 양털이 깎인 양의 모습, 가운데와 오른 편이 이번에 새로 나온 비건타이거 신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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