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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Jan 06. 2022

나는 당신이 궁금하지 않아요

브런치 수상은 누가 하는지  


질투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네 번 괴로워하는 셈이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괴로워하며, 통속적인 것에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해 또 괴로워한다. 나는 자신이 배타적인, 공격적인, 미치광이 같은, 상투적인 사람이라는 데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   


위 글은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질투'편에 나오는 글이다. 지난 12월 중순쯤 제9회 브런치 대상작이 발표되었으니 보러 오라는 메시지들을 보다 떠오른 글이다. 아니 '신춘문예'도 아니고 이미 출간한 책들도 있는 내가 지금 브런치 수상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질투라도 하는 건가? 그게 무슨 격 떨어지는 심보냐고 반론할 자신이 없는 그런  애매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 무렵 '브런치관리팀'에서 오는 알림 메시지들을 철저히 외면했다. 어떤 글이, 어떤 주제의 글이 수상의 행운을 누렸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이번 9회 브런치 대상의 주인공은 김윤선 작가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왔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철저히 메시지를 외면하며 브런치 플랫폼과 의도적 일정 거리를 두었을까? 아마도 단순한 나는 기쁨을 감추지 않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누군가를 찾아 이 소식을 나누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감정의 배후를 '질투'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동안 나는 N블로그와 포스트 , 얼굴 북, 인별 그램 등 참 여러 S.N.S의 공간을 전전해온 인생이기도 하다. 그러다 쓰는 사람에게 꽤 유용한 합리적 쓰기의 기능과 정서를 포함하고 있는 여기 브런치 플랫폼을 만난 이후 어느새 벌써 여러 해 동안 상주하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 직관과 감성의 촉이 더 발달했다고 믿고 있기에 즉각적인 결과를 위한 글쓰기를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내 인생에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들, 세상에 좋은 에너지를 전하고 싶은 그런 글쓰기를 글 창고에 채워 마침내 잘 숙성될 때까지 지속해보자는 게 애초의 마음이었다.


그렇듯 순정한(?) 의도와 달리 브런치만 열면 자꾸 뜨는 메시지, 이번 수상작들을 둘러보라는 기쁨을 함께 나누라는 메시지는  반갑지가 않더라. 수상에서 배제되었다는 것에 몰두하진 않았지만 가끔 문득문득 '아니 왜 내 글이, 내 브런치 북이 안 뽑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였다. '심지어, '비건' 이 주제라서 불편해서 대중이 골고루 읽고 싶지 않으니까, 보편적이 아니니까, 잘 안 팔릴 테니까'  나도 모르게 들어온 불편해진 심상으로 수상작들을 거들떠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제서야 그것도 우연히 수상작들을 읽어보다가 어느 작품 앞에서 한참을 머물며 급기야 다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내 이름자 앞에 '시인' '작가' '요가 지도자'라는 수식이 붙는 것을 꽤 어려워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여기 브런치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발행하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하는'작가'라는 명칭은 보기에 따라 참 어렵고도 쉬운 관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흔히 볼 수 있는 '작가님' '작가님'이라고 서로를 부르는 호칭 또한 오글거리는 느낌이 든다면 내가 이상한 것일까?  그것은 마치 새파랗게 어린 업게 종사자분들이 서로를 부를 때 '선생님' 선생님' 하는 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생각의 결을 조금 확장해보면 한 사람이 태어나고 생을 마치기까지의 살아가는 모습은 한 편의 장편소설이거나 단편소설 즉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작품을 기획하고 쓰고 완성하는 개인은 누구나 '작가'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라는 이름에 남과 다르다는 공연한 '자부심'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다만 주어진 내 삶을 살아가는 중이고, 그 길에서 진지하게 시작된 글쓰기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자신을 돌아다보고, 일상을 재정비하며 성장해가는 것이 인생인 것처럼 '작가'로서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로서, 이 글쓰기 플랫폼에 내 글을 채워간다는 것 이건 꽤 창조적인  자극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모색하고 시작하고 해 보는 그런 거 말이다. 아직 이 나라에서는 비건으로 살아가는 게 소수자로서의 삶이다라고 감정적 비건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애당초 비건의 일상 따위가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될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내 삶 속으로 들어온 '비건 라이프 스타일'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희로애락의 매 순간들을 써 내려가면 그뿐일 것이다. 책이 나오느냐 마느냐는 그 후의 과정일 것이다.


물론 이 글에서 언급한  두 가지 '질투의 감정' 사이에는 확연히 다른 배경 속 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어느 게 더 낫고 낮고를 떠나 나는 이 '질투'의 감정을 분발하는 글쓰기의 거름으로 써볼까 한다. 이를테면 '도전'과 '에너지'를 부르는 촉매제 같은 거 말이다. 그러니 아직은 세상 속으로 내 보내지 못한 수많은 내 이야기들을 보물 창고 속에 더 채워볼 일이다. 더 심오하게 다듬고 채워보자 마음먹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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