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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Aug 16. 2022

모래 뿌린 샌드위치의 맛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닭장 차를 만났다


다행히 차 안의 다른 일행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불행(?) 히도 나는 보고 말았다.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빗 속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던 그것은 주차 중인 두 대의 탑차였다. 차 안에는 다닥다닥 붙여진 철망 상자들이 옆으로, 위로 최대한 공간을 아껴 쌓여있었다. 막중한 임무를 띠고 어디론가 향하던 그 차의 상자 속에는 분명 탈진한 닭, 아니 어린 새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근처 비건 식당을 가는 정도가 전부였던 우리는 모처럼 일상을 벗어나 동해 쪽으로 가는 중이었다. 일행 중 유일하게 비건 Vegan인 나는 일찍 시작된 당일 코스의 일정을 위해 비건 샌드위치를 준비했다.  그저 통밀빵 한쪽에 피넛버터를 바르고 구운 두부와 야채를 채워 만드는 간단한 비건 샌드위치였지만 뜨거운 커피와 함께라면 논 비건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간단히 아침도 해결하고 시간도 절약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한 첫 번째 휴게소에서 나는 내리지 못했다. 


우리가 탄 차가 이른 아침 고속도로 휴게소로 접어들며 뒷자리에 탄 내 눈에 들어온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승용차들이 들어찬 넓은 주차장의 맨 끝자리, 비교적 사람들 눈에 덜 띄게 조심스레 자리 잡은 차 안에 살아있던 그것들 말이다. 그것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곧 죽을 목숨들, 죽은 듯이 살아있던 존재들이었다.


나는 그것을 외면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들의 움직임은 분명히 오물과 비에 젖어 시들 거리는 병아리들, 아니 치킨들이었다. 도살장으로 향하는 중이었을 저 병아리들이 효율적 생산 시스템을 위해 제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길러진 것들이란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향긋한 커피를 사 오겠다는 의지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 얼굴을 스스로 볼 순 없으나 분명 내 표정은 흉하게 일그러져갔을 것이며 마음속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 아, 여러분, 저것 좀 보세요"

" 저것들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요?"

" 저것들은 지금 도살장으로 이동 중인 닭들 일 것입니다.
" 혹시나 소비자들의 눈에 잔인한 장면이 눈에 띄면 판매에 지장이 있을 수 있을 테니 최대한 이른 시간에 은밀한 곳으로 이동 중인 것입니다."
" 현장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피범벅일 테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국내인에 비해 임금이 저렴한 외국인들 일 것입니다. "
" 저것들은 가공되고 포장되어 각종 치킨집으로 공급될 것입니다."

" 티브이를 틀면 치킨 광고가 가장 많이 나올 것이며, 다이어트로 다져진 멋진 몸을 뽐내면서도 연예인들은  많이 먹으라고 광고를 할 것입니다."
" 그것은 마치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자기들처럼 날씬할 거라는 무언의 유혹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 축구나 야구를 즐기며 치킨과 차가운 생맥주를 마시는 건 요즘 시대의 트렌드입니다."
" 요즘 흔한 현대병인 '통풍' 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사진 출처 : DXE 코리아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차 안에서 꺼내지 못했다. 


말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내심 그 사실을 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타고 있는 차 뒤 편에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맞닥뜨린 게 반갑지 않았다. 때마침 처음보다 세어지고 있는 빗줄기로 인해 커피를 사러 가지 않는 것도 자연스러워졌다. 우리는 각자의 샌드위치 박스를 열었다.


자꾸 뒤통수가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내색을 안 하려 애쓰며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려는데 잘 넘어가지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울상이었을 내가 한입 깨어문 샌드위치의 맛은 모래알이라도 뿌린 것처럼 서걱댔다. 다행히도 우리는 함께 였지만 각자의 시간과 각자의 샌드위치에 몰두했었기에 아무도 그런 나를 신경 쓰거나 눈치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차마 샌드위치 맛이 어떠냐고 일행에게 묻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속으로 기도를 했다. 그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랄 뿐 해줄 수 있는 일도, 마땅히 할 말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복을 빌어주는 정도의 기도란, 어떻게든 여행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윽고 우리가 탄 차가 그들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잠시였으나 슬프고 참혹했던 감정으로부터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장거리 도로를 달리게 될 때면 '로드킬'을 보게 되지 않기를, 내가 타고 가는 차가 그런 도구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곤 했다. 더불어 도살장으로 향하는 차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곤 했다.


하지만 어디 이 같은 마음이 내게만 국한되는 것이겠는가. 이 거대한 '죽음의 차'를 움직여야 하는 운전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더구나 그것이 밥벌이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도 쉽게 그 직업에 대해 왈가왈부 판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죽음의 차를 모는 운전자들은 분명 이른 새벽 이들을 싫고 출발했을 테고, 첫 번째 마주치는 휴게소에서 졸음을 쫓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고 다시 출발하곤 했을 것이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는 일은 즐겁다. '기후위기'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져 내려도 우리는 여행을 떠나고 즐길 수가 있다. 기후위기의 주범인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지대 온도가 높아지고 이와 함께 해수면의 범람으로 태풍과 해일이 밀려와도 인간은 그리 쉽게 생활습관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보단 차라리 지난날의 여행을 추억하며 언제고 다시 떠날 날을 희망으로 삼아 기대한다.


온난화의 주범이 '대규모 사육과 과도한 육식'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논리적 근거와 사실로 알게 되어도 여전히 인간은 쉽게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은 지구가 견딜 수 있는 임계점을 넘겼다고. 지금 당장 육식을 끊고 사육동물에게 먹일 곡류를 키우기 위해 숲을 더 이상 벌목하지 않는다면 되돌아올 지구의 시간이 아직은 있다고,  진실을 알리려 해도, 그것은 일부 환경운동가들의 견해라고 굳게 믿고 싶어 한다.


말복을 앞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동물들은 죽어간다. 서둘러 나온 이름 아침의 여행길, 그 길에서의 커피 한 잔은 그토록 소중했던 것. 그 빗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불과 1년 미만의 어린 닭들이 흐린 눈을 뜨고 지켜보아도 마시지 못한 커피가 아쉬웠던 게 사실이기도 하다. 일행의 기분을 혹시라도 망치게 될까 봐 내가 목격한 그것을 즉시 화제로 꺼내지  않은 건 일견 잘한 일인 듯싶기도 하다.

 

그러나 지구는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한쪽에선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고 지구 반대편에선 식량과 물 부족으로 어린 생명들이 굶어 죽어간다. 육식 산업의 순환으로 가장 많은 이익을 보는 집단은 과연 누구인가? 인류를 위한 경제와 자본의 논리로 이어져온 이 육식 산업은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현재도 진행 중에 있다. 그 수많은 문제 중에는 부당한 노동력 착취와 굶주림이 있고, 무분별한 삼림훼손과 거대한 사육장에서 쏟아내는 탄소배출이 있다.


윤리적 비건인 내게 그중에 가장 아프고 힘든 건 고통과 감정을 다 느끼는 생명들을 향한 인간들의 가학이다.

하지만 비교적 긍정적 인간형인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눈'과 '귀'를 조금 더 열면 보이고 들리는 '진실'에 관한 말이기도 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지구'를 살리고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순환과 변화'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꼭 그들이 아니어도 개인의 직관과 변화된 기후환경에 관한 판단으로라도 지금 현재 지구가 위험하다는 것은 다들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비건 세상을 꿈꾼다. 사람들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자비로운 마음을 믿는다. 자비로운 마음의 불씨가 모여 멀지 않은 날 동물을 가두어 잡아먹는 일이 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야만적 기록으로 여겨질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런 날을 위해 기도한다. 가끔은 간절함을 잃고 헤맬지라도 그 마음을 잊지 않는다. 당신 안에 존재하는 그 자비로운 빛에게 경배를 올린다. 나마스테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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