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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Oct 06. 2022

비건, 환대와 혐오 사이

영화배우 ‘호야 킨 피닉스 Joaquin Phoenix’의 경우


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 상처와 증오로 가득 찬 영혼의 소유자이자 영화 ‘조커’의 주인공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비교적 순탄하게 복수를 준비한다. 자신에게 곧 들이닥칠 죽음을 알지 못한 또 다른 한 남자는 피범벅의 얼굴이 되어 죽어갔다. 스크린 밖으로 피비린내가 새어 나올 것만 같은 한 장면이었다.

  

영화 조커 속 스틸 컷

‘아서’에게는 그의 엄마가 지어준 ‘해피’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결코 행복하지 않은 아들에게'해피' 라 불러주고 싶은 그 또한 모성애이리라. 하지만 여기서 불리는'Happy'의 늬양스는 본래 뜻과 달리 미묘하게도 역설적이다. 아들이 행복하게 살길 바라지만 결코 그렇지 못할 거라는 걸 예감했기 때문일까? 영화 속 '해피'라 부를 때마다 절박한 슬픔과 어두운 분위기가 더 배가되어지는 듯했다.


일찌감치 독보적 연기로 자리매김한 명배우 ‘호야 킨 피닉스’가 탄생시킨 새로운 ‘조커’는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닌 본래의 그 자체인 것처럼 리얼리티가 느껴졌다. 1981년을 배경으로 실패한 광대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아서 플렉이 광기와 허무주의에 빠져, 쇠락한 고담시에서 부유층에 대항하는 폭력 혁명을 불러일으킨다는 줄거리를 전개해나간다. 배우 호야 킨 피닉스는 이 영화로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호야 킨 피닉스’는 일찌감치 어린 나이부터 ‘비건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해 온 배우이다.  '조커'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타며 연설한 그의 아카데미 수상식 소감이 특별해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 비건 배우는 ‘환대 넘치는 시상식 자리에서 ‘불편한 진실’에 관해 목소리를 냈다. 동물권, 환경운동, 소수자 인권 및 사회 운동에 상당히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일 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도 그는 동물권 시위에 직접 참여하거나 연설을 주도한다고 한다. 경찰에 체포되는 한이 있어도 여전히 일선 활동가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왼쪽 : 도미니언 포스터, 오른 쪽: 페타 동물권 활동 피켓 시위중인 호야킨 피닉스

2018년에 나온 ‘크리스 델포스’가 감독한 《도미니언 Dominion》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현존하는 비건을 분류할 때 이 영화를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을 분류해도 좋을 만큼 특별한 영화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육식 산업'은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과 밀접한 이해관계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대로 진실 되게 육식 산업의 실체와 비판을 담은 기록으로는 '도미니언'이 최초라 할 수 있다.  '호야 킨 피닉스'가 이 진실을 알리는 영화에 ‘내레이션’으로 출연했다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는 활동이라 할 만하다.  


배우로서의 그를 향한 ‘환대’의 자세를 갖춘 수백만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진 수상소감에서‍ 그는 ‘혐오’에 대해 언급했다. 알면서도 용인하는 상호 연계성의 사회적 태도와 낙농업계에서‍ ‘소’와 ‘송아지’에게‍ 가하는 지독한 폭력에 대해 역설했다. 지금까지 어느 배우의 수상 소감에서도 볼 수 없었던 놀라운 광경이었다. 연설의 내용을 아래에 소개해본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설 중인 호야 킨 피닉스
Joaquin: 저는 우리가 함께 직면하고 있는 걱정스러운 문제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습니다. 가끔 우리는 여러 대의를‍ 옹호한다고 느끼거나‍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공통점을 봅니다. 그건 성평등이나 인종 차별,‍ 동성애자의 권리,‍ 원주민의 권리,‍ 동물의 권리에 관한‍ 이야기이거나‍ 불의에 항거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국가, 한 사람,‍ 하나의 인종, 하나의 성별, 하나의 생물종이‍ 나머지 모두를 처벌 없이‍ 지배하고 통제하고 이용하고‍ 착취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항하는 것에 관한 겁니다. 제 생각에‍ 우린 자연과‍ 너무 단절되었습니다.   우리는 인간 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원을 얻기 위해‍ 자연을 약탈합니다.  마치 우리의 권리인 것처럼‍ 소를 강제로 임신시키고‍ 송아지를 낳으면‍ 송아지를 빼앗습니다. 어미 소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게 분명한데도요. 그리고 송아지가 먹어야 할‍ 우유를 빼앗아‍ 우리가 마시는 커피와‍ 시리얼에 넣습니다.  

우린 스스로 변화하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뭔가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포기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최선을 다할 때‍ 우리 인간들은‍ 기발하고 창의적입니다.   사랑과 자비를‍ 원칙으로 삼는다면 우린‍ 모든 지각 있는 존재들과‍ 환경에 이로운‍ 변화된 체계를‍ 창조하고‍ 발전시키고‍ 시행할 수 있을 겁니다.  

 HOST: 피닉스 씨는 마찬가지로‍ 재능 있는 연기자이자‍ 동물권 운동가였던 작고한‍ 자신의 형 리버 피닉스 씨의‍ 감동적이고 힘 있는‍ 시구를 인용했습니다:‍    

Joaquin: 형이 17살 때‍ 이런 시를 썼습니다.  
'Run to the rescue with love and peace will follow.'     
「사랑으로 구조하세요. 평화가 따를 거예요」‍   감사합니다.     

     


‘환대와 혐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깨끗하게 세탁된 새하얀 리넨 식탁보의 네 귀퉁이에는 데이지 꽃 자수가 수놓아져 있다. 환대하고 싶은 귀한 손님을 위해 아끼던 식탁보를 깔았다. 그 저녁 식탁의 메인 요리는 안심 스테이크다. 특 등급 육질을 보장한다는 유명 백화점의 지하 정육코너에서 낮에 사 온 것이다.


정육 코너의 붉은빛 냉장고에는 손질이 잘 된 죽은 소의 살이 들어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표현 대신 그냥 신선한 고기가 가득 차 있다고 보거나 생각한다. 그것들이 죽기 이전 어떤 과정을 거쳐왔을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갓 새끼를 낳고도 자기 젖을 주지 못한 채 어미 소는 인간을 위한 우유를 착취당하는 곳으로 격리된다. 모든 것은 자동화 시스템이다. 엄마 젖을 빨지 못하게 새끼의 입에는 철망 마스크가 써지고 숫 소는 거세된다.


이 체계적 육식 산업 시스템에서 암소는 충분히 오래 키울 가치가 있다. 채 2~3년을 살고 수소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 고기가 된다. 심지어 어떤 암소는 자신의 운명을 그대로 이어갈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출산 직후의 새끼 소를 밟아 죽였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혐오’를 잘 감출수록 ‘자본’은 잘 쌓여만 간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눈 사진 피켓을 들고 시위 중인 호야 킨 피닉스


유명인으로서의 지위를‍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는 나처럼 평범한 이들의 귀에도 자주 들려오는 얘깃거리다. 하지만 그 힘을 무고한 존재들을‍ 위해 쓴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설명할 수도, 도와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생명들을 대변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용기가 필요한 이 일의 배후에 스며있는 자비심은 충분히 ‘이타적인 마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혐오’를 ‘환대’로 바꾼 멋진 비건 배우, 호야 킨 피닉스에게 마음 깊이 환대의 마음을 전한다.


시상식 후 비건 버거 데이트 중인 호야 킨 피닉스 커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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