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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연한태인 Aug 30. 2023

채수 된장찌개를 끓이며

멸치 대신 다시마

다소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내가 된장찌개를 이렇게나 잘, 맛있게 끓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었다. 일찍 결혼해 이미 두 아들이 삼십 대에 이른 경력자 주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 기본 중의 기본이라는 된장찌개의 위상에 대해서도 큰 감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나는 요리 잘하는,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손 맛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분명하다는 걸 알고 있다. 가까이에 외할머니의 손맛이 그랬고, 내 어머니가 그랬고, 그 손맛과 솜씨를 다 물려받은 내 언니의 솜씨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에는 거의 늘 된장찌개가 있었다. 어떤 날의 된장찌개에는 집 뒤 밭에서 자란 호박잎 쌈이 곁들여졌던 것 같다. 작은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는 상태의 된장찌개가 가운데에 자리했고, 짜글이 알감자 조림과 늙은 오이 무침이 올려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된장찌개에 멸치가 들어갔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된장찌개의 국물은 뽀얀 쌀뜨물이었다는 것과 고기가 들어가진 않았을 거라는 추측이 든다. 당시엔 몰랐던 엄마표 된장찌개의 맛이 글을 쓰는 이 순간 그리워진다.


오랫동안 엄마의 된장찌개 맛에 길들여진 내가 이제는 내 자식들에게 된장찌개를 끓여준다. 다행인 건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준다는 것. 내가 끓인 된장찌개가 진짜 맛있어서 잘 먹는 건지, 익숙해서 잘 먹는 건지 싶을 때가 있다만 몇 번씩 떠다가 먹는 걸 보면 은근히 된장찌개 부심 같은 게 생기기도 한다.  


맛있는 된장찌개를 위해서는 쌀뜨물이 필수다. 자연스레 갓 지은 밥과 된장찌개는 한 세트가 된다. 속 쌀뜨물을 좋아하는 코발트 빛 철냄비에 담고 일단은 미리 잘라놓은 국물용 다시마 두 잎을 넣고 파르르 끓이기 시작한다. 다시마가 우러날 즈음 가장 기본적인 야채인 호박과 양파를 듬뿍 넣고 끓인다. 보글보글 야채들이 끓으며 거품을 물기 시작할 때 거품을 걷어내고 적당한 양의 된장을 푼다. 이 모든 것의 조화로움에 시간차도 영향을 준다는 걸 알 수 있다.(반드시 다시마와 야채를 먼저 끓여낸 후에 된장을 풀어야 함)

된장을 풀어 끓여냄과 동시에 두부 한 모를 적당히 잘라 넣는다. 맛을 위해 콩 원료 채식 조미료를 조금 추가해도 좋다. 고춧가루 조금, 마늘과 파 풋고추를 썰어 얹어내며 좀 더 끓인다. 간을 보며 짜면 물을 추가하고 괜찮으면 마지막에 미원을 아주 조금 넣어도 괜찮다. (미원의 원료가 사탕수수인데 된장찌개와 합이 좋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된장찌개에 미원을 넣는지 모른다는)


된장찌개는 슬로 푸드이기에 최소한의 기다림은 필수다. 쌀뜨물을 얻어내는 과정이 그걸 설명해 준다.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의 모든 순간에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 속에 엄마가 있고, 어린 동생이 있고 언니가 있다. 가족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오늘 이런 생각이 든다. 내 아이들은 내 된장찌개를 어떻게 기억해 낼까? 어떤 음식들을 떠올릴 수 있을까? 그걸 기대할 만큼 나는 살림꾼이 아니건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새삼 된장찌개를 끓여 드시던 우리 조상들에 감사한 마음도 든다. 된장찌개야 말로 단백질의 보고 이기 때문이다.


된장찌개의 주 재료인 된장은 우리 콩을 발효시키고 오랜 기간 숙성하여 만들어낸 메주로 만들어낸다. 된장을 끓일 때 꼭 넣는 두부 또한 단백질의 보고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싱싱한 야채를 듬뿍 넣어 끓여 먹는 한 뚝배기 보양식. 된장찌개야 말로 우리 곁의 진정한 비건 보양식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비건일상 #집밥 #소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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