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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Mar 29. 2021

프롤로그

감정적(emotional) 비건이지만 미안해하진 않습니다. 


소수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 


이 땅에서 비건 Vegan, 즉 동물을 착취해서 만든 음식이나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완전 채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소수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는 의미이자 의지이기도 합니다. 다수자들의 의견과 취향이 우선시 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소수자들의 취향이나 신념은 사뭇 위축되는 일이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처음으로 비건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해 시작했던 2009년은 확실히 그런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소심한 성격 탓일 수도 있겠지만 어디 가서 비건이라고 잘 밝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고깃집에서의 모임에도 종종 참석하곤 했습니다.  고기를 왜 먹질 않느냐고 물어올 때도 '내 목구멍에 동물의 사체를 넘기고 싶지 않아서'라는 대답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밥상 위에 올라오는 '고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음식'들이 살고 싶은 본능으로 몸부림치던 '생명'이었다는 진실을 마주 한 이상, 더는 음식으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비건하기 좋은 세상이 왔다


13년 전에 비해 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미처 점심을 먹지 못한 집 밖에서의 비건이 최소한 편의점에서도 비건 먹을거리 한 두 개는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9년 서울에서는 비건 식당, 비건 카페, 비건 베이커리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현재는 수많은 비건 식당과 카페, 베이커리 등이 생겨났습니다. 동물의 가죽을 산채로 벗기거나 털을 이용하는 등의 잔혹한 착취가 없는 비건 패션,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비건 화장품들의 종류도 많아졌고 품질도 좋습니다. 한 마디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비건하기 참 쉬워진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대형 비즈니스 쪽으로도 비건의 성장 가능성을 보았는지 대형 프랜차이즈점에서 비건 버거를 주문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형 햄버거의 상징이랄 수 있는 '롯데리아'에 순 식물성을 원료로 만든 비건 버거가 출시되던 날, 비건들은 일부러 버거 가게에 가서 식물성 버거를 주문하기도 합니다. 필자 또한 비건 이후 갈 일이 없었던 일반 프랜차이즈 버거 가게에 가서 식물성 버거를 마주하던 날의 특별했던 감정을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비건들에게 있어 그동안의 세상이란 고작 새로 나온 '식물성 버거' 하나에 감격할 만큼, 온통 동물의 사체로 만든 음식으로만 둘러싸여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비건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읽을거리, 볼거리 


약속 장소로 '비건 식당'을 추천하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던 때도 있었으나 살며 비건으로의 전환은 필자처럼 평범한 인간의 일생 중에 꽤 잘한 선택이라고 할 정도로 만족도가 높습니다.  이 분야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동물해방』은 현대 공리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유명한 책입니다. 그는 주로 무분별한 동물실험과 공장식 가축 사육을 문제 삼았습니다. 자본주의 속 과학의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거리낌 없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인간의 행위와 열악한 환경의 공장식 농장에서 사육되다 잔인하게 도축되는 실상에 대해 철학적 근거와 견해 아래 신랄하게 비판해놓은 책입니다. 


또한 비틀스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는 <만약 전 세계의 도살장이 유리벽으로 되어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비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김한민 작가의『아무튼 비건』이란 에세이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완벽하진 않아도'비건 지향'을 시작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이의철 베지닥터의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이라는 건강한 비건 생활방식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출간되었습니다. 


국외에서는  『어느 채식 의사의 고백』『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월드피스 다이어트』등도 인상 깊게 읽은 비건 입문서입니다. 그밖에 다큐멘터리로는 < 더 게임 체인저스> <카우 스피라 시>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 하드코어인 <도미니언>이 있습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비건이 된 지 어느덧 13년 차에 접어들어 사람을 대하기에 소심했던 비건 초창기보다는 꽤 여유가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 다녀온 비건 식당과 카페도 꽤 많아졌습니다. 비건 관련 비즈니스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타 생명에 대한 착취가 줄어든다는 얘기이기도 하기에 비건 비즈니스 하는 분들을 보면 진심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비건 시장이 많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수요면에서 약한 게 비건 비즈니스입니다. 그렇기에 윤리적 의미의 목표를 세워 비건 비즈니스를 시작하거나 지속하는 분들의 그 마음에서 선한 신념과 용기를 보곤 합니다. 



선한 에너지의 흐름을 위해


소수자로서의 삶을 선택한다느니, 목구멍에 동물의 사체를 넘기고 싶지 않아서 라는 다소 강한 어조로 이 글을 시작한 것에 대해 부연의 말을 몇 마디 덧붙여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이 비 채식인들을 향한 비난으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비건이 되기 이전 필자 또한 수많은 동물을 먹고, 입고, 신고, 바르고 살며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책을 가져야 하는 까닭에 대해서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스스로 달라지게 된 건 진실을 마주하고 난 이후부터였습니다. 


일체의 육류와 해산물을 비롯, 달걀, 우유, 꿀, 동물성 의류와 신발, 가방, 화장품을 쓰지도 먹지도 않는 비건 지향 라이프로 전환한 후 놀랍게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부정적 감정들이 이전에 비해 훨씬 적어졌습니다. 집중력도 더 생겼습니다. 건강해졌고 무엇보다 삶의 지향점이 비교적 명확해졌습니다. 방황하는 지구인에서 벗어나 단단해진 내면으로 중심을 잃지 않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날마다 스쳐 지나는 소소한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역사가 되고, 한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기록의 작업에 대해 많은 공감을 기대하진 않지만, 누군가 한 사람이라 해도 전해오는 공감의 마음은 파문이 되어 널리 번져나가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틀림없이 사랑과 자비로움을 품은 환한 에너지로 부풀어올라 세상을 밝혀주게 될 거라는 희망과 함께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나마스테 















* 표지 그림으로 사용한 <푸른 옷의 여인>은 최하연 작가(인스타그램 @hayonamatata )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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