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L1 친절함의 힘
친절한 태도, 워딩, 미소 짓는다고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힘들까
우리 집 맞은편 블록에는 유명한 베이커리 세 곳이 있다.
퇴근 후 방문하면 영업을 종료했거나, 빵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한 번도 사 먹어보지 못했다.
헌데, 오늘은 회사에 오후 반차를 내고 우리 집 근처 커뮤니티 시설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듣기로 하여
강의장으로 향하는 길에 베이커리 중 한 곳에 들러 시그니처 메뉴를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베이커리에 다다를 즈음 약간 빗방울이 쏟아지는 것 같아 우산을 아주 잠깐 쓴 뒤 접고,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작은 접이식 우산이었는데, 베이커리 입구에 우산꽂이가 있었지만 우산에 빗방울이 거의 묻지 않은 걸 보고 한 손으로 우산 비닐 부분을 움켜쥐고 매장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장은 빵 거치대가 5개 정도 있는 굉장히 작은 규모였고,
사장님은 앞쪽 일행을 응대하시느라 아마 내가 들어온 모습 정도만 보신 것 같다.
빵을 구경하려는 나에게 사장님은 '우산은 매장 밖에 놓아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미 난 매장 안에 들어와 있기도 했고, 우산에 빗방울도 묻지 않았는데 굳이 우산꽃이에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매장이 협소하니 우산 부피 때문에 그러나' 하고 우산을 말아 가방에 넣는 제스처를 취했다.
헌데, 이 모습을 보신 건지 아닌지.
아님 정말 우산 그 자체가 빗방울이 묻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매장 밖에 놓여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건지, 사장님은 '우산은 매장 밖에 놓아주시라고요.'라고 말씀을 재차 하셨다.
일단 사장님의 그 말에 나는 굉장히 기분이 불쾌해졌다.
사람에 따라, 아마 착한 우리 엄마는 바로 '죄송합니다.' 하고 밖에 나가 우산꽂이에 우산을 넣었을 테고, 전혀 이게 기분을 상하게 할 워딩이 아니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란 고객에게는 이런 불친절한 장면이 제아무리 맛있는 베이커리라 해도 뒤도 안 돌아보고 매장을 나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마음속 워너비였던 1순위 베이커리에서 나온 뒤, 그 바로 옆에 있는 2순위 베이커리로 향했다.
여기는 모든 빵이 비닐 포장 없이 외부에 나와있었는데 마침 내가 사려는 '크루키'에 날파리가 안락하게 쉬고 있는 걸 목격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매장을 나왔다. 캐셔 분은 아르바이트생 같았고, 포스기 뒤에서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에게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만 전했다.
오늘은 빵을 사지 말라는 신의 계시가 있는 날인가? 싶었지만
또 언제 반차를 내겠나 싶어 만약 1,2 순위에서 빵을 샀다면 굳이 안 들렀을 3순위 베이커리에 마지막으로 들렀다.
솔직히 3순위 빵집에는 유명세에 비해 외관상 크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빵은 없었다.
그래도 힘들게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가긴 뭐 해서 best 스티커가 붙어있는 메뉴 2개를 집어 계산대로 향했다.
고객 등록을 하면 결제 금액에 5%씩 적립된다는 말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사장님께 불러드렸는데,
'어머~ 너무 예쁜 이름이시네요, 호호호~'라는 기분 좋은 칭찬 한 스푼,
그리고 내가 영수증을 받은 뒤 '리뷰 쓸게요'라는 한 마디에 '너무 고마워요~'라는 감사 한 스푼이 따라왔다.
참 별것 아닌 말과 미소였는데, 빵의 외관상 매력도와는 상관없이 빵이 맛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실제 집에 오자마자 맛본 빵도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오늘은 참 신기하게 서로 다른 세 곳의 매장에서 나라는 고객에게 '친절함'과 약간의 청결도가 상품의 매력 그 자체와는 전혀 상관없이 '구매 결정 요인'이 됨을 확인했다. 아마 나는 다음번 반차의 기회가 생겨도 1,2 순위 베이커리가 아닌 마지막 베이커리에 방문해 빵을 구매할 것이다.
친절함, 돈도 안 들고 시간도 안 드는데 누군가의 지갑을 열거나 꽁꽁 닫게 하는 key factor가 될 수 있다.
나도 남들에게 친절한 사람으로 인식되는지, 나도 친절한 사람인지 매일매일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