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특별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특별하기로 결정한 이유로 인함이다.
마음으로 온전한 하루를 이미 지은 연유이다.
-청연-
일체 유심조!
오늘을 특별하게 해 줄 마법의 주문
오늘은 특별하다!
오늘은 특별하다!
아침이 오는 고요의 소리에
내가 제일 먼저 내 마음에 던지는 작은 돌맹이자,
그것이 내가 아침을 맞이하는
유일한, 또 '특별하지 않은' 습관이자 태도이다.
-청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화엄경(華嚴經)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일은 오로지 마음이 짓는다라는 뜻이다.
곧 만사의 의미가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곧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의례 나의 밖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의 마음속에 닿을 때만 나와의 연이 생긴다.
나와 무관한 일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올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나의 마음속에 있다.
얼굴 없는 행복에 지배당한 보통의 삶
불혹, 만사에 대한 사유에 질서가 세워질 때쯤 행복에 대한 단상
매일, 매 순간이 행복하기란 참 어렵다.
한동안은 어쩌면 나는 행복을 등에 지고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등에 진 행복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등과 허리가 굽고, 지팡이로 겨우 지탱하며
그것도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한발 한발 가까스로 걸어가는 불쌍한 인간의 형상.
바로 그 사람
- 어쩌면 바로 나일 듯한,
너무도 잔혹하고 비참한 이미지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사람은 나의 부모였고, 또 나였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의 모습은
앞으로 다가올 그림자로 얼룩져 있었다.
행복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호모 베아티투도!
(Homo Beatitudo ;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 이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나 의미상 그렇게 붙여 봄)
'행복'을 위해, '행복'에 의해, '행복'에 따라!
행복 지상주의!
참 중요하지만, 삶의 일부일 뿐인 행복이 나를 짓누른다.
행복이란 무게에 압도당하고 있다.
'행복'이란 아주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한 단어로 인해
나는 일과 모든 관계에 그리고 나의 미래조차 얽매이고 있는 느낌이다.
행복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인가?
행복이 내 사는 것에 따르고 동행이 되어 줘야 하는가?
그래, 3%만 더 행복하자.
산소는 생과 사를 동시에 준다. 행복도 생과 사를 동시에 준다.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살아있게 하는 산소를 행복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공기 중 산소는 단지 2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편함 없이, 충분히' 살아가고 있다.
공기 중에는 산소만 있지 않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더 놀랍게도 산소가 생과 사를 가르는 수치다.
산소가 18% 이하로 떨어지면 저산소증으로 죽을 수 있다.
산소가 24% 이상으로 올라가면 산소중독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결국 3%의 더함, 3% 적음, 곧 6% 범위가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산소 농도다.
조금은 우습게도 우리의 삼과 죽음은 고작 3%에 달려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행복에 대한 지혜를 준다.
보이지 않는 산소는 마치 보이지 않는 행복과 같다.
생과 사를 가르는 산소의 농도가 그러하듯 행복의 농도도 그와 비슷하다.
행복도 우리를 죽일 수 있다?
농담으로,
우리는 '행복해 죽겠어!'라는 표현을 가끔 하지 않는가?
이런 죽음이 가장 이상적인 죽음이라 생각하면서!
(나도 이런 죽음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나는 너무 행복하지 않다. 곧 '불행'하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다.
만약 그들이 '약간'의 행복만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면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 조금의 행복이 다시 살게 하는 힘과 희망을 주었다면...
우리 3%만 더 행복하자.
'어제보다 2배 더 행복하기'란 어쩌면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
실체가 없는 행복을 측정하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수치 이야기할 때 행복의 크기가 좀 더 확실히 다가온다면 3%만 기억하자.
최상의 행복 = 현재의 행복 농도 + 3%
(행복은 +3%의 한계치를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3%만 더 행복해지면 바랄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행복은 너무도 쉽게 다가온다.
겨우 3%만 더!
대단한 맛집을 찾거나,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해외나 국내로 이리저리 바쁘게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런 것들에는 대단한 기쁨과 행복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보통의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누리기에는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지금부터 3%만 더 행복한 일을 생각하고 종이에 써보세요!
라고 질문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을 것들을 적을 수 있는가!
아마 한 장의 종이론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평범한 오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딱 하루치, 3%만 더 행복하자.
(나머지 79%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이들이 '일시적 싱글 퐈더'에게 아침밥을 보채는 바람에 다음으로 넘긴다. ^^:)
매일, 특별한 하루를 위하여
'모든 행복'보다 '모든 특별함'을
매일, 매 순간이 행복할 순 없지만 매일, 매 순간이 특별할 순 있다.
- 청연 -
모든 시간이 행복할 수도 없거니와
모든 시간이 행복하다고 해서 인생이 풍성해지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인생 중요 요소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사 만물에는 좋고 나쁨의 양면성 - 지극히 주관적인 이 있다.
그러니 좋고 나쁨으로 따지지 말고
그저 좋았든 나빴든 '특별했'던 순간으로 만들어 버리자.
모든 순간을, 모든 날들을, 마침내 모든 생애를!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
그래.
모든 순간은 특별한 순간이자, 결정적인 순간이다.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는 시각만 가지고 있다면...
오늘, 이 '특별한' 보통의 아침
일체유심조, 검증된 마음 사용법
가까스로 눈을 뜬 으스스한 새벽
혹, 어제의 피곤을 못 이긴 뒤척이는 아침에도
'오늘은 특별하다!'라고 먼저 마음에 던져둔다.
그러면 자연히 특별함이 따라온다.
마음으로 지은 특별한 오늘!
또 하루 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이유다.
모든 일이 나의 마음속에 있다면
내가 해야 할 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즐거운 선택은
마음을 결정하는 일이다.
마음을 '잘' 먹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 보통의 아침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행복의 뒷모습> 새벽부터 아침까지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해준, 땀에 얼룩진 등이 고달프고 또 아름다웠던. / 조지아
*커버 사진 : <행복의 뒷모습 / 조지아 / 청연 >
문득 타인의 뒷모습이 보일 때
그 뒷모습이 마치 나의 것인 양 투영될 때
영감이 물일 듯 밀려온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쓰나미처럼.
글을 한번 써보겠다고 써지지도 않는 글을 붙잡고 밤새 씨름했던 2020년 4월 어느 새벽.
글재주 없음을 한탄하며 길가 벤치에 않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등이 땀으로 얼룩진 한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그의 손에는 산발을 한 빗자루와
뭐가 소중하다고 아이보리색 천으로 양철 쓰레받기를 고이 싸서 들고 있었다.
'쓰레받기를 고은 천으로 싸다니...'
순간 그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보였고
이 순간을 꼭 담아 두고 싶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어 급히 셔터를 눌렀다.
그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고
무언갈 중얼거리며 - 아니 작게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 유유히 사라졌다.
오늘을 쓸어낸 빗자루.
오늘을 담아낸 쓰레받기.
오늘을 살아낸 땀.
한동안 멍하니 그의 사라진 길을 바라보았고
내겐 한 장의 사진이 남았다.
사진을 한참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나 나나
이 보통의 새벽을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아직 이 새벽이 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우리에게 있음이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작은 희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 행복의 뒷모습!
행복의 뒷모습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희망이어야 한다.
길 위에서 마주친 얼굴 없는 사람.
그는 내 하루를 가장 완벽하게 채워준 얼굴 없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 이 글을 쓰는 내내 일면식도 없는 그 사람이 생각났다.
별 연관성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만 마음을 맴돌았다.
아마 그의 땀에 절은 뒷모습이
손에 쥔 산발을 한 요술 빗자루와
버릴 것조차 깨끗하게 담아내는 양철 쓰레받기가...
밝은 색 천으로 고이 감은 양철 쓰레받기가...
행복의 뒷모습이 보여서 그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