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농도 21%

#행복은 단지 21%다.

by 청연

오늘은 특별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다만

특별하기로 결정한 이유로 인함이다.

마음으로 온전한 하루를 이미 지은 연유이다.

-청연-




일체 유심조!

오늘을 특별하게 해 줄 마법의 주문


오늘은 특별하다!


오늘은 특별하다!

아침이 오는 고요의 소리에

내가 제일 먼저 내 마음에 던지는 작은 돌맹이자,

그것이 내가 아침을 맞이하는

유일한, 또 '특별하지 않은' 습관이자 태도이다.

-청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화엄경(華嚴經)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일은 오로지 마음이 짓는다라는 뜻이다.

곧 만사의 의미가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곧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의례 나의 밖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의 마음속에 닿을 때만 나와의 연이 생긴다.

나와 무관한 일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올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나의 마음속에 있다.




얼굴 없는 행복에 지배당한 보통의 삶

불혹, 만사에 대한 사유에 질서가 세워질 때쯤 행복에 대한 단상


매일, 매 순간이 행복하기란 참 어렵다.

한동안은 어쩌면 나는 행복을 등에 지고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등에 진 행복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등과 허리가 굽고, 지팡이로 겨우 지탱하며

그것도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한발 한발 가까스로 걸어가는 불쌍한 인간의 형상.


바로 그 사람

- 어쩌면 바로 나일 듯한,

너무도 잔혹하고 비참한 이미지가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사람은 나의 부모였고, 또 나였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의 모습은

앞으로 다가올 그림자로 얼룩져 있었다.


행복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호모 베아티투도!

(Homo Beatitudo ;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 - 이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나 의미상 그렇게 붙여 봄)


'행복'을 위해, '행복'에 의해, '행복'에 따라!


행복 지상주의!

참 중요하지만, 삶의 일부일 뿐인 행복이 나를 짓누른다.

행복이란 무게에 압도당하고 있다.

'행복'이란 아주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한 단어로 인해

나는 일과 모든 관계에 그리고 나의 미래조차 얽매이고 있는 느낌이다.

행복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행복을 위해 사는 것인가?

행복이 내 사는 것에 따르고 동행이 되어 줘야 하는가?



그래, 3%만 더 행복하자.

산소는 생과 사를 동시에 준다. 행복도 생과 사를 동시에 준다.


우리를 숨 쉬게 하는, 살아있게 하는 산소를 행복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공기 중 산소는 단지 2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편함 없이, 충분히' 살아가고 있다.

공기 중에는 산소만 있지 않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지만

더 놀랍게도 산소가 생과 사를 가르는 수치다.


산소가 18% 이하로 떨어지면 저산소증으로 죽을 수 있다.

산소가 24% 이상으로 올라가면 산소중독으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결국 3%의 더함, 3% 적음, 곧 6% 범위가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산소 농도다.

조금은 우습게도 우리의 삼과 죽음은 고작 3%에 달려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행복에 대한 지혜를 준다.

보이지 않는 산소는 마치 보이지 않는 행복과 같다.

생과 사를 가르는 산소의 농도가 그러하듯 행복의 농도도 그와 비슷하다.


행복도 우리를 죽일 수 있다?

농담으로,

우리는 '행복해 죽겠어!'라는 표현을 가끔 하지 않는가?

이런 죽음이 가장 이상적인 죽음이라 생각하면서!

(나도 이런 죽음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죽고 싶다'라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나는 너무 행복하지 않다. 곧 '불행'하다.


안타깝게도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다.

만약 그들이 '약간'의 행복만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면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 조금의 행복이 다시 살게 하는 힘과 희망을 주었다면...


우리 3%만 더 행복하자.


'어제보다 2배 더 행복하기'란 어쩌면 그 자체로 불가능하다.

실체가 없는 행복을 측정하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수치 이야기할 때 행복의 크기가 좀 더 확실히 다가온다면 3%만 기억하자.


최상의 행복 = 현재의 행복 농도 + 3%
(행복은 +3%의 한계치를 가지고 있다. 지금보다 3%만 더 행복해지면 바랄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행복은 너무도 쉽게 다가온다.

겨우 3%만 더!


대단한 맛집을 찾거나,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해외나 국내로 이리저리 바쁘게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런 것들에는 대단한 기쁨과 행복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보통의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누리기에는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다.


지금부터 3%만 더 행복한 일을 생각하고 종이에 써보세요!


라고 질문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을 것들을 적을 수 있는가!

아마 한 장의 종이론 부족할 것이다.


그러니 평범한 오늘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딱 하루치, 3%만 더 행복하자.


(나머지 79%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이들이 '일시적 싱글 퐈더'에게 아침밥을 보채는 바람에 다음으로 넘긴다. ^^:)




매일, 특별한 하루를 위하여

'모든 행복'보다 '모든 특별함'을


매일, 매 순간이 행복할 순 없지만 매일, 매 순간이 특별할 순 있다.

- 청연 -


모든 시간이 행복할 수도 없거니와

모든 시간이 행복하다고 해서 인생이 풍성해지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인생 중요 요소지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사 만물에는 좋고 나쁨의 양면성 - 지극히 주관적인 이 있다.

그러니 좋고 나쁨으로 따지지 말고

그저 좋았든 나빴든 '특별했'던 순간으로 만들어 버리자.

모든 순간을, 모든 날들을, 마침내 모든 생애를!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


그래.

모든 순간은 특별한 순간이자, 결정적인 순간이다.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는 시각만 가지고 있다면...



오늘, 이 '특별한' 보통의 아침

일체유심조, 검증된 마음 사용법


가까스로 눈을 뜬 으스스한 새벽

혹, 어제의 피곤을 못 이긴 뒤척이는 아침에도

'오늘은 특별하다!'라고 먼저 마음에 던져둔다.

그러면 자연히 특별함이 따라온다.

마음으로 지은 특별한 오늘!

또 하루 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이유다.

모든 일이 나의 마음속에 있다면

내가 해야 할 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즐거운 선택은

마음을 결정하는 일이다.

마음을 '잘' 먹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 보통의 아침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행복의 뒷모습> 새벽부터 아침까지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해준, 땀에 얼룩진 등이 고달프고 또 아름다웠던. / 조지아


*커버 사진 : <행복의 뒷모습 / 조지아 / 청연 >


문득 타인의 뒷모습이 보일 때

그 뒷모습이 마치 나의 것인 양 투영될 때

영감이 물일 듯 밀려온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쓰나미처럼.


글을 한번 써보겠다고 써지지도 않는 글을 붙잡고 밤새 씨름했던 2020년 4월 어느 새벽.

글재주 없음을 한탄하며 길가 벤치에 않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등이 땀으로 얼룩진 한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갔다.

그의 손에는 산발을 한 빗자루와

뭐가 소중하다고 아이보리색 천으로 양철 쓰레받기를 고이 싸서 들고 있었다.


'쓰레받기를 고은 천으로 싸다니...'


순간 그의 모습에 나의 모습이 보였고

이 순간을 꼭 담아 두고 싶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꺼내어 급히 셔터를 눌렀다.

그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고

무언갈 중얼거리며 - 아니 작게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 유유히 사라졌다.


오늘을 쓸어낸 빗자루.

오늘을 담아낸 쓰레받기.

오늘을 살아낸 땀.


한동안 멍하니 그의 사라진 길을 바라보았고

내겐 한 장의 사진이 남았다.


사진을 한참 보며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나 나나

이 보통의 새벽을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아직 이 새벽이 다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우리에게 있음이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작은 희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 행복의 뒷모습!

행복의 뒷모습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희망이어야 한다.


길 위에서 마주친 얼굴 없는 사람.

그는 내 하루를 가장 완벽하게 채워준 얼굴 없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 이 글을 쓰는 내내 일면식도 없는 그 사람이 생각났다.

별 연관성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만 마음을 맴돌았다.

아마 그의 땀에 절은 뒷모습이

손에 쥔 산발을 한 요술 빗자루와

버릴 것조차 깨끗하게 담아내는 양철 쓰레받기가...

밝은 색 천으로 고이 감은 양철 쓰레받기가...

행복의 뒷모습이 보여서 그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