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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콘텐츠 코치 서민규 Dec 28. 2019

1,800일 기록해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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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vs 아날로그 

기록 콘텐츠를 4,5년 째 만들어오면서 자주 받는 질문 한 가지를 꼽아보라면 기록 관리를 무엇으로 하냐는 질문이다. 'PC의 시대'를 넘어서 '스마트폰 시대'에 진입하고도 10년이 됐다.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아날로그만으로 기록 관리를 하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디지털로 기록하자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몇 년 간의 시행착오 끝에 '디지털vs아날로그'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지 않기로 했다. 중복이 발생하는 걸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둘 다 모두 활용하기로 했고, 다만, 언제 디지털로 쓰고, 언제 아날로그를 쓸지를 더 구분하기 시작했다. 디지털의 장점은 기기간 동기화/빠른 기록/검색 가능성을 들 수 있는데, 이런 속성의 기록은 대체로 디지털로 남기는 편이다. 다시 말해, 이벤트, 정보, 대화, 지식, 사실 중심의 기록은 디지털로 남긴다. 에버노트에 쌓인 1,800일의 기록이 이런 속성을 지닌다.   


한 편, 아날로그의 장점은 특유의 감성, 비교적 느린 기록 속도, 기록물이 쌓일 때 고유한 만족감이 있다. 결국, 감성적인 기록, 사색 끝에 나온 문장,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하는 기획 작업 등에서는 아날로그로 기록한다. 언급한 것처럼 디지털 기록과 중복이 발생하는 일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이렇게 손으로 느릿하게 눌러 적을 때 내 생각이 제대로 깨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스마트폰, 유튜브 시대가 열린 뒤로는 즉각적이고 휘발성이 강한 말초적인 단상 외에 깊게 숙고하는 시간을 많이 잃어버렸다. 아날로그 기록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기록하면 뭐가 남나

기록하면 기억이 남는다. 몇 년 전에 만났던 사람과의 대화도 간단한 키워드로 정리해두는 편이다. 그러면, 다음에 만날 때 대화를 더 수월하게 이어갈 수 있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제주도에 출장을 가서 2년 전 만난 분을 번개로 다시 보게 되었는데, 2년 전의 기록을 보니까 이 분이 나에게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을 추천해주신 거다. 그 때도 꼭 읽어봐야겠다, 싶었는데 여러 핑계로 2년이 흘러버렸고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책을 주문하고 지금 읽고 있다. 



또, 그 분께는 2년 전의 기록을 언급하며 우리가 나눈 주요한 대화들을 상기해드리곤 한다. 나야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들 위주로 적지만, 아마도 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자기만의 'salesforce'를 만드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사소하고 자잘한 기록이라 할지라도 과거에 내가 한 기록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생각에 자극을 주고, 관계에 활력을 줄 때 삶에 대한 통제감이 높아진다. 


이처럼 일상적인 일 말고도 책을 쓰거나, 새로 기획을 해야 할 때는 에버노트의 수천 개의 DB에서 검색을 해본다. 작은 퍼즐 조각처럼 흩어놓은 기록이지만,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부스러기처럼 생각의 흔적이 쌓여있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할 때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은 아니게 된다.  



기록의 종류

기록의 종류는 수십 가지가 있겠지만, '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기록에 국한해서 이야기 한다면 나는 3단계 권하는 편이다. '소비'-'생산적 소비'-'생산'이다. 다시 말해, 생각날 때 휘갈겨 적는 것[단초], 생각을 잘 정돈하여 서랍에 보관하는 것[서랍정리], 이를 바탕으로 정제된 내 생각을 기록하는 것[생산]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점검하는 것이다. 재테크 도서의 1장은 언제나 같은 조언으로 시작된다. 돈을 모으려면 먼저 나가는 돈부터 파악하라는 것이다. 들어오는 월급은 그대로인데 나가는 돈은 너무나 많다. 나가는 돈부터 막아야 월급이 쌓이는 것처럼 관심사 계좌도 마찬가지다. 돈이 줄줄 새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동이체 내역을 살피게 된다. 마찬가지로 ‘관심사 계좌’에 자동이체로 등록해 둔 것들도 점검하고 해지해야 한다. 


이렇게 콘텐츠 소비에 대한 다이어트를 하고 나면 다음 단계인 ‘생산적 소비’를 시작할 수 있다. 생산적 소비는 나중에 만들 콘텐츠를 염두에 두고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쌓인 것들을 토대로 비로소 '내 콘텐츠'를 시작하는데 큰 어려움 없이 시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12월 출간한 《회사 말고 내 콘텐츠》에 자세히 적었다.)  


정성적인 기록을 정량적으로 돌아보기

'1,800일의 기록이 있다.' 이 문장에서 '기록'을 '데이터'로 바꾼다면, 문제가 조금 복잡해진다. 그저 성실하게 매일을 기록한 것 말고, 이 데이터로부터 유의미한 발견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언제 뭘 했다"는 정보보다 가치있는 내용을 도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3-4년 쯤 전부터 '태그tag'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정성적인 기록에 태그를 붙인다. '새로운 경험을 했거나, 무언가 새로 시작한 날, 깊은 대화를 나눈 날, 감사한 날, 성취가 있었던 날.'에 각각 태그를 붙인다. 이렇게 태그를 붙이게 되면, 연말에 한 번 정리를 할 때 '태그 개수'라는 정량적 데이터가 나온다. 


예를 들어, 풍성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눈 날에는 짤막하게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록하고 '.conversation'이라는 태그를 붙여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대화일 수도 있고,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눈 듯한 기분일 때도 붙여놓는다. 2019년엔 55개가 검색된다. 2018년에 45개가 검색된 것에 비해서 좀 더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애쓴 결과일지 모른다. 정성적으로 남긴 기록이 정량적으로 환산이 가능해지면, 곧 다가올 2020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구체적인 의욕을 만나게 된다. (관련 글 : 에버노트로 10분만에 연말결산)


삶의 주제를 갖춰나갈 것

그렇기 때문에 에버노트가 서버를 폐쇄하고, 회사가 문을 닫는다고 하면 내가 가장 먼저 할 것은 손으로 내 인생의 주제를 정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새롭게 내 인생의 주제를 태그로 나누어 보고, 그 태그가 어떻게 내 삶에 녹아들 수 있는지 고민할 것이다. 강조하자면, '기록을 위한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록을 통해서 삶의 지향을 스스로 명확하게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기록'이라는 보조 장치 없이 그러한 삶의 지향을 따르는 게 어렵기 때문에 기록할 따름이다. 


기록을 꾸준히 해왔는데 스스로 바보같이 느껴진다고 하는 분들도 더러 만났다. 무엇을 위한 기록일지 고민하지 않고, 단순히 반복만 하는 데서 오는 감정일 터다. 무엇에도 적용될 말이지만, '회의를 위한 회의', '기록을 위한 기록'같은 공허함은 조심하는 게 좋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는 두 가지를 같이 권한다. 


기록을 데이터로 보고, 데이터관리를 시작해 볼 것  

"기록을 통해서 ~를 하게됐다"는 문장을 염두에 둘 것

(관련 글 : 나만의 콘텐츠를 시작하는 다섯가지 질문)


어떤 사람에게는 기록이 실행의 방아쇠다

1,000일을 기록하고 생긴 3가지 변화에서 나는 "기록은 실행의 방아쇠다"라고 썼다. 몇 년이 지나며 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누군가에게는 그렇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나처럼 먼저 숙고하고 실행에 옮기는 게 수월한 사람에겐 그렇고, 그냥 생각날 때 바로 실행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먼저 실행하는 사람들이 숙고하는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나기도 한다. 무엇이 낫다, 그르다는 가치 판단을 내리긴 어려운 문제다. 


다만, 그래도 어느 경우에나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기록이 실행에 대해서 사후 조정 장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해서 과거 기억을 더듬거리면, 내 실행에 대해서 분석하기가 어렵다. 운에 의한 것인지, 사람을 잘 만난 덕에 가능했던 일인지, 혹은 내 올바른 판단과 실행 덕을 본 것인지 알기가 어렵다. 


나가며

나도 그렇지만 사람들은 편견을 쉽게 갖는다. '사람들은 편견을 쉽게 갖는다' 역시 내 편견일지도 모른다. 내가 '1,800일을 기록해 왔어요', 라고 밝히면 사람들은 내게 편견을 갖는다. 뭔가 고립된 채로 골방에서 읽고 쓰기만 하는 사람을 떠올리는가 보다. 내 경우는 내향적이라 사람들을 많이 안 만나기는 하지만, 기록을 시작하고서 외부로 더 많이 향할 수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거기서 발견한 생각을 적고, 또 만나고 하는 과정은 우리가 만나는 시간 밖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줬다. 또 거기서 내 세계가 확장되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확장되어 가는 경험을 했다.  


너무 외향적이라서 발산만 하다가, 한 해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는 사람은 기록을 시작해보길 권한다. 기록으로 1년 간 일어났던 이야기를 나에게로 수렴하고, 정리하는 일은 다시 외부로 나갈 건강한 힘을 줄 것이다. 또 반대로, 내향적이지만 기록이 없는 사람에게도 기록을 권하고 싶다. 혼자 골똘히 방에서 고민하고, 사색했지만 아무것도 남기고 있지 않다면, 우울감을 느끼거나 사변적으로 빠지기도 쉽다. 기록하다 보면, '수렴된 나'가 다시 세상으로 나갈 근거를 명확히 발견하고, 세상에 나가서 '나'를 발산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서민규

- 책 《콘텐츠 가드닝》 ,  《회사 말고 내 콘텐츠》  저자

- 콘텐츠 기획자, 콘텐츠 코치


커리어의 궤도를 이탈하고 콘텐츠를 자전축으로 삼고 있는 창작자. 창작 경험이 개인의 변화와 성장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 아래 콘텐츠 코치로 일하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창작을 경험하고 콘텐츠를 기를 수 있도록 교육과 코칭을 통해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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