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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여기록1) 외로움이 그리웠다

여행 = 크리스마스?

by 언제라도봄

목요일 아침 출근길. 결혼 후 첫 '혼여(혼자여행)'가 이제 70시간즘 남았구나, 셈을 하고 있던 찰나 카톡 알람이 울렸다.

"여행 3일 전입니다."

항공편을 예매한 사이트에서 온 알림이다. 기계가 혹은 시스템이 보낸 문자에 답이 하고 싶어진다.

'맞아요! 저 너무 신나요!!! 감사해요!'라고. 그 메시지를 받기 전부터도 시간단위로 이미 카운트다운 중이라 잘 알고 있었지만, 나의 일정을 '공식적'으로 확정받은 느낌에 설렘이 밀려왔다. 들떠서 일이 손에 잘 안 잡힐 정도의 두근거림이라니, 너무 오랜만이라 매우 낯설지만 또 반가운 감정이었다.


그 순간부터 3일간은 나에게 크리스마스이브 같았다. 크리스마스날인 12월 25일도 좋지만 이브인 24일이 더 설레어 들뜨기도 하지 않는가. 활짝 핀 꽃보다 곧 피어날 꽃봉오리가 더 설레는 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 전 3일간은 계속 이브였고, 여행하는 4일간은 크리스마스였으며, 지금 그 크리스마스를 다시 떠올리며 글을 쓰는 이 순간도 파티의 연장선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무거웠다. 커다란 짐을 위탁수하물로 부치고도 남편은 백팩을 나는 넉넉한 가방을 어깨에 메어야 했다. 꼭 필요한 짐과 또 필요할지도 모를 것들을 챙기다 보면 늘 생각보다 부피도 무게도 늘어나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많이 큰 지금은 양반이다. 더 어릴 적엔 아이들이 가장 무거운 준비물이었다. 두고 갈 수도 없고, 부칠 수도 없으며, 떨어트려도 안 되는. 그래서 공항에서 보안검색대에 줄을 서있다 보면, 가끔 손바닥만 한 크로스백 하나 메고 출국하는 사람들 - 대개는 젊은 아가씨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작지만 비싼 크로스백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가벼움이 부러웠다. 그래서 이번 여행엔 기내에 들어갈 땐 작은 지갑하나랑 립스틱 한 개, 이어폰을 넣으면 공간이 남지 않는 작은 크로스백하나만 들고 가려 도전했으나 아이들 짐 싸면서 몸에 배어버린 '혹시라도' '만약에'를 벗어나지 못해 좀 더 큰 숄더백을 꺼냈다가 하루 종일 걸어 다닐 것이 분명해서 작은 백팩으로 바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로스백하나 매고 출국의 로망은 이번 여행을 다녀오며 남편에게 큰 백팩을 선물해 준 다음 5월 중순에 잠시 다녀온 홍콩에서 이루어졌다.)


비록 작고 날렵한 크로스백은 아니어도, 백팩이라 두 손도 자유로운데 옆에 챙겨야 할 사람은 없으니 역시 마음은 매우 가벼웠다. 혼자 여행을 간다고 할 때 남편이 물었었다.

"외롭지 않겠어?"

내 대답은 이러했다.

"그 외로움이 너무 그리워서 가는 여행이야."


물론 인간이 간사해서 그 혼자인 기간이 이번처럼 4일이 아니라 넉달이거나 4년이 되면 가벼움이 외로움으로 변할 것이라는 걸 나도 모르지 않는다. 외로운 게 싫어서 가정을 꾸리고는 그 외로움을 그리워하다니 사람은 참 까다롭게 설계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리웠던 외로움을 가벼움으로 만끽하며 출발했고 10시경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일본 공항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아마 공항의 냄새라기보다 일본 자체의 특유의 냄새인지도 모른다. 다만 후각은 가장 빨리 무뎌지기에 도착한 직후 공항에서 그걸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일 테다. 개인적으로는 딱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냄새지만 1년 가까이 일본에 있었던 기억 때문인지 그 일본 공항의 냄새는 내가 일본에 왔구나 하는 강한 트리거가 되어 내 깊은 기억들을 자극한다. '프루스트현상'이라고 했던가. 시각이나 청각보다 후각에 입혀진 기억은 훨씬 감성적인 영역을 자극해 추억에 빠트린다. 몇 번이나 그런 경험을 했기에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그 후각적 자극을 매우 기대했는데, 기대가 컸던 건지 생각보다 옅어진 느낌이다. 괜스레 아쉬워 짐을 찾으러 가면서도 숨을 참았다가 깊이 들이마셔본다. 향이 희미해서인지 예전처럼 심하게 감정이 요동치지는 않아 외려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괜찮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엄마 OFF, 나 ON.


도쿄타워가 가까워지고 시부야가 가까워지는 중 - 리무진버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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