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이라면, 그저 다 좋은 걸 어떡하죠.
싫어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게 많다. 이분법적인 관념을 싫어하기 때문에 굳이 '싫어하는 것'을 마음에 담으려 하지 않는 편이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아하지 않는 편이 싫어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다.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것. 나에게는 꽤나 아프고 어려운 일이었다.
굳이 알람을 맞춰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보다는, 아침 햇살에 가볍게 눈을 뜨는 것.
끼니때가 되어 음식을 찾아먹기보다는, 길 가다 보이는 맘에 드는 식당에서 아름다운 만찬을 즐기는 것.
시간 단위로 일상을 쪼개어 바쁘게 살기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한없이 걷기도 하는 것.
북적북적한 곳에서 정신을 쏙 빼놓기보다는, 가끔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을 춤추듯 돌아다니는 것.
가방과 어깨에 투닥투닥 부딪쳐도 찡그리지 않고, 가볍게 미안하단 말로 지나갈 수 있는 것.
아,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차라리 이 모든 것들은 제멋대로 살기와도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이토록 마음 놓고 제멋대로 살아보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싫어하는 것이 없진 않았다.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음속에 담기도 입 밖에 내기도 싫을 정도로 미움의 싹이 컸던 적도 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을 좋아하고 모든 이들과 잘 지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전부 좋아하는 것만 있을 수는 없거니와 좋아하기 위해 시간과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노력을 쏟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때론 그러한 시도가 극한의 낭비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차라리 싫어하는 것이 인생 살기 쉽겠다 여겼으나, 좋아질 수는 없을 것 같으니 그저 '좋아하지 않음'의 상태를 유지하자 마음먹었다. 애써 좋아할 필요가 없었다. 개인의 취향이고 사람마다 모두 다른 탓이다. 그렇게 차츰 미워하고 싫어하지는 말자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사물에게 싫다는 이유로 상처 입힐 권리 또한 나는 없으니까. 아주 재밌게도, 아니 어쩌면 우습게도, 나는 그렇게 가장 편한 중립의 길을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곧 줏대가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거 아니면 저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삶의 모든 결정적인 순간에 있어 쉬이 휘둘릴 수 있는 성격 아니겠는가. 그런 내가 여행을 결심하고 '적어도'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좋아하자고 마음먹었다. 극도로 싫어하는 것도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도 없이 무엇이든 그저 그런 상태로 살자고 결심한 내가, 모든 것을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심각하게 나쁜 상황을 맞이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나, 전부 좋았다, 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마음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도 여행을 좋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여행을 쉽게 떠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예측할 수 없음의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음이야말로 가장 낯설지만 신선한 자극이 아닐까. 뭐든 미리 알아버리면 그 놀라움의 감도가 지극히 낮아질 테니 말이다.
All is well.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고 선뜻 시도할 수 없을뿐더러 겁도 내는 것이지만, 어차피 모든 것은 좋을 테니 기꺼이 떠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굳이 나쁜 것은 싫은 것은 생각하지 말자. 아니, 설령 그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런 사람과 그런 것들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굳이 너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자. 그리고 좋아하는 생각을 갖자. 나를 제일 먼저 좋아하는 것. 모든 좋은 순간에 마음 놓고 기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앞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는 것. 이분법적인 세상에서 말이 좋아 중립이지 아무런 감정도 감흥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마음을 갖는 것과 그 마음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