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아 Oct 15. 2018

여름은 그래요, 짙고 달아요.

그리워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마주하는 날이 오겠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을 그리워했다.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뜨거운 여름일 수 있었던 파리의 어느 공원이었다. 막연하게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파리에 대한 갈망을 품고 살았다. 혹자는 그저 파리에 있는 것이라고는 발 딛기 어렵도록 즐비한 개똥들과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집시들 뿐이라고 했지만, 나에게 파리는 낭만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낭만적이고 화려한 파리에 비해, 내가 좋아한 것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공원이었다. 겨울에 마주했던 공원은 어딘지 황량하기까지 했지만, 보지 못한 여름의 공원이 기다려지고 그리워졌다.

맛있는 건 꼭 나누어 먹어야 한다. 기쁘게 받아드는 그 사람의 손과 맛있게 먹는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면, 그 맛은 배가 되곤 하니까 말이다.

내 손에 들린 달디 단 마카롱 몇 개를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여름을 위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고 오고 싶은 마음이었다. 뤽상부르 공원이었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만큼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 나 스스로에게 감탄해 마지않던 그곳 말이다.


나에게 생애 두 번째 파리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얼마든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떠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방랑이자 부랑이거나 한심한 일탈이라고 보는 세간의 시선을 견딜만한 배포도 자신도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쩌면 역마살일지도 모르는 이 마음의 싹을 스스로 잘라내지 않으면 정말이지 전 세계를 떠도는 거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농담 섞인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것은 실로 아주 무서운 농담 같은 진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내가 좋다.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 지금 여기서, 발 맞춰 춤춰 봅시다. 이게 인생 아니겠어요. C'est la vie!

꽤 오래, 잘 숨기고 살았다. 이제는 숨기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라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나의 생각을 또다시 산산조각 낸 사람이 있었다.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그리하여 존경해 마지않는 위인이기도 했다. 그 누구보다 많은 날을 어둠 속에서 살았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의 말에 이끌려 다시 한번 감당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사람이 겪은 삶이 투영된 말들이라면 나는 감히 맹신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단력이 부족한 내가 비행기 티켓을 끊으며 무수히 되뇌었고, 마침내 너무 뜨거워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열정이 되살아났다.


지금이 아니면, 결코 안된다고.

그리하여 결국 생각만으로 끝나버릴 것 같던, 두 번째 파리의 어느 공원에서 내가 걷고 있었다. 그 쓸쓸하던 겨울의 뤽상부르 공원이 아닌, 녹음이 짙다 못해 눈이 부신 한여름의 빨레 후와얄 (Palais Royal) 공원이었다. 마카롱 다섯 개를 쥐고 있던 그때와 달리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미 마음이 달았다. 나를 앞서 걷는 사람과 굳이 발을 맞춰 걷지 않아도 좋았다. 그의 그림자에 외려 내가 숨을 공간이 생긴 것 같아 편안했다.

완벽한 대칭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완벽한 풍경만 있을 뿐.

결코 가질 수 없는 곳이었지만, '나의 정원'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발을 딛고 있는 땅의 고운 입자가 내 몸을 타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흙이 이렇게 포근했나. 잔디가 이토록 폭신폭신했나. 하마터면 그대로 누워 여름을 온몸으로 맞이할 뻔한 순간이었다. 조금만 더 이곳에 나를 두고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엄마새를 따라가는 아기새 마냥, 누군가의 발걸음을 좇는 내가 발목을 조금 삐끗하더라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말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