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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Mar 08. 2021

저 그냥 다닐게요!

<어쩌면 이건 너의 내일> 출간 전 연재

수경씨, 지금 이렇게 해놓고 퇴근한 거야?
대체 어디야?

지하철 개찰구에 막 카드를 찍었을 때였다. 지역 번호 02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가 뜨길래 일전에 지원했던 회사가 아닐까 하여 설레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으나, K대리였다.

“저 퇴근, 지금 막…….”

“당장 들어와.”

수당도 없는 수습사원인 데다 집에 도착해 저녁 먹고도 남을 시간에 퇴근한 것도 억울한데, 이 시간에 다시 회사로 들어오라니 이게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인가. 입사하자마자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K대리 때문에 요즘 하루하루가 지옥이다. 혹시 전생에 내가 K대리 남편이라도 뺏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K대리는 나만 보면 으르렁거렸다. 결국 그날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일이 끝났고 텅 빈 지하철에서 홀로 분노를 삼키며 내일 아침엔 꼭 그녀에게 사직서를 던지리라 생각했다.

다음날 K대리에게는 아니었지만 팀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하겠습니다.

딱 한 줄만 쓴 채로.


"뭘 제대로 했다는 거야? 내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렇게 사람 말을 이해 못 해서 일하겠어?”

그래,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복수할 길이 없을 것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를 내려는데, 이런 내 앞으로 짙은 눈썹에 날카로운 콧날, 앙다문 매력적인 입술을 지닌 한 남자가 섬광처럼 지나갔다. 그는 K대리가 속사포처럼 욕하는 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잘생겼고, 내가 지금껏 찾던 이상형이었다. 우리 회사에 저런 남자가 있었나 생각하며 내가 몽환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 아무래도 다시 다녀야 할까 봐요…….




해당 글은 저의 첫 독립출판물 에세이 <어쩌면 이건 너의 내일> 정식 출간에 앞서,

일부분을 발췌하여 올린 것입니다.

출간 전까지 연재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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