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지는 날이 올 때까지
인사 시즌이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느끼며 아무 생각 없던 나의 마음에 오늘 갑자기 자갈이 톡, 하고 떨어졌다.
동요되었다.
일이냐 육아냐.
단도직입적이지는 않았지만 '내려놓은 거냐'는 질문에 그렇지 못하다고 답했다.
누군가, 특히나 부서장이 그런 질문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 너무 쉽게 속내를 드러냈다.
승진을 어찌 내려놓겠는가.
당장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승진을 염두하고 복직을 빨리 했는데.
질문이 단도직입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저 '열심히 할 거냐'는 질문으로 이해해
단축근무를 하더라도
주어진 업무를 시간 내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로
내려놓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질문자의 의도는 승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대화의 방향에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그의 지난 세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더욱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부서장은 자녀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 대부분의 것을 자녀에게 올인했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운채 일했고, 동기들보다 승진이 8년 늦었고,
후회는 없으며, 현재는 결국 모든 동기들과 같이 부서장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인생의 끝은 아무도 모르는 거지만,
승진을 원한다면 단축근무를 포기하고 더 열심히 일해보란다.
한번 늦어지면 자꾸 미뤄지게 되고 그러다 만년 과장이 될 수도 있다고.
네가 선임 승진한 해에 입사한 직원 중에도 벌써 최선임이 나왔다고.
둘 중 하나를 생각해서 마음이 덜 괴롭도록 고민해 보라는 말도 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하는 직원들은 눈에 다 보인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직원에게는 모두 물었던 내년도 부서이동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도대체 내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뭐였을까?
1. 단축근무 그만하고 승진을 목표로 자기 밑에서 빡쎄게 일해보자.(부서이동을 희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
2. 단축근무를 할 거면 승진을 욕심내서 자기에게 부담 주지 말라.
3. 단축근무를 하든 안 하든 승진을 욕심내든 안내든 어느 쪽이든 너의 마음이 편해지길 바란다.
4. 최종결정권자가 '얘는 단축근무하니 승진은 안돼'라고 말한 걸 들어서 안타깝다.
5. 별생각 없었지만 애가 간절해 보이니 누구나 아는걸 일단 조언해 보겠다.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단축근무를 쓰지 말라는 강요로 느껴지진 않았고,
다만 향후 5년간은 승진을 못하게 될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년과장, 후배들의 승진, 이런 워딩에 자극받았을지 모르겠다.
현실육아를 위해 오늘도 여전히 단축근무로 4시에 퇴근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복직 전 고민했던 시터를 쓰고 풀근무를 해야 할까(당시에도 승진을 염두한 대안이었다).
시어머니께 부탁을 드려야 할까(마음이 불편할 거 같아 패스).
그런데.. 저분은 과연 내가 단축근무를 포기하고 2년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승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사람일까?
정말로 확실한 루트를 가고 싶다면 본사 근무가 맞지 않을까(보내줄지는 모르지만).
본사 근무하면 우리 아이들 주말에만 볼 수 있을 텐데 그게 부모로서 가능한 일일까.
과연 직장에서의 승승장구가 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까?
결론은, 아직은 아이가 너무 어리다.
승진도 당장 내년에는 불가하다.
일단 둘째까지 유치원에 보내고 생각해볼까 한다.
그리고 직장 밖에서의 파이프라인을 이제는 진짜로 만들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온 우주가 나의 발전을 돕네.
더 큰 뜻이 느껴지고, 더 큰 파도가 몰아쳐 올 것으로 기대된다.
말은 하는 사람의 자유지만 받아들이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복직 전 스스로 고민했고, 결정했고, 실행하고 있으니 하던 대로 하자.
마침 영원한 나의 편, 남편도 나의 결정을 온전히 응원하고 있으니.
가만 보면 남편도 바보 같아 보이지만 촌철살인이란 말이야.
고마워,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설탕들,
달콤이 새콤이 아가들아.
어차피 엄마는 완벽한 직원은 아니었어.
이제 와서 뭘 얼마나 더 열심히 할 수 있겠니.
엄마는 엄마가 생각하는 기준만큼만 잘할게.
그리고 나머지 인생은 너희들과 즐거울 거야.
엄마 인생은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잖니.
그리고 엄마가 지금 이렇게 버텨야,
너희들이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질 거야.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나의 딸들을 위해,
엄마는 개인의 안위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버텨볼게.
너무 순진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엄마는 그게 좋아.
나 자신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