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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ttyfree Apr 02. 2022

칠판에 그림을 한 달 동안 그렸을 때 생긴 변화





2학년 담임이 되었다.

일전에 담임과 교과전담의 기로에 서서 고민을 했던 글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천고의 고민 끝에 나는... 2학년 담임을 하기로 선택했다!


친한 선생님과 동학년을 계속하고 싶다는 이유,

오후 시간을 조금 더 길게 갖고 싶다는 이유,

내 교실을 포기 못하겠다는 이유 등

수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책을 더 많이 읽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림책을!








난데없이 그림책이라니?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실 내가 집필하고 있는 저서의 대부분은 동화책이었으니 말이다.


2021년 말의 나는, 운명처럼 그림책을 연구하는 교사 연구회의 운영진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나의 무지와 한계를 경험했다.

그곳에서 접한 그림책들은 별천지였다. 한 달에도 수십 권이 넘는 그림책들이 출간되고, 내가 접하지 못했던 책들은 쌓여있었다. 글밥이 적다고 무시할 일이 아니었다. 글밥이 적다고 하더라도, 책이 주는 메시지를 가볍게 넘긴다면 온전히 그림책을 읽었다고 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림책 연구회 운영진이 그림책을 잘 모른다니, 이보다 더 창피한 일이 있을까?

이 일을 어쩐다..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그래, 그림책 100권 읽기 챌린지를 하자!'였고,



출처 : <북적북적> 어플


그 목표는 2월 내에 달성하였으나, 그래도 아직 부족한 것 같았다. 뭔가가 더 필요했다!


필요는 노력을 낳는다. 하여 3월 한 달 동안 내가 한 모든 노력과 그 결과를 속삭여보고자 한다.








그림책에의 무지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아침 5시에 일어나 그림책 한 권씩 읽기.


다른 운영진보다 적은 역량을 극복하려면, 노력을 몇 배로 해야 함은 당연하다. 당분간은 24시간을 48시간으로 써야겠다! 고 다짐한 결론은 미라클 모닝으로 이어졌다.

입문서로 김유진 변호사의 <나의 아침은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고, 당장 3월 2일부터 시작했다. 뭐를? 새벽 5시에 그림책 읽기를!




처음에는 당연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무슨 업보를 쌓아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생각하기를 여러 번, 꾸역꾸역 한 달 쯤을 버티자 이제는 고요하고 적막한 새벽 시간이 나의 낙이 되었다. 아무것도 방해받지 않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 , 그 시간을 함께해준 그림책에 점점 정이 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칠판에 그림책 삽화 그려주기.


사실 이건 작정하고 세운 목표는 아니었다. 그림을 썩 잘 그리지 못하는 편이었던 데다가, 그림이라는 게 매일 균일한 퀄리티(?)로 그려지는 것이 아닌지라….

또, 고생 끝에 그린 그림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지워진다고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 그려보았다. 원래 생각이 많으면 실천이 더뎌지는 법이다.






그렇게 그린 칠판 그림은, 생각보다 반응이 더 좋았다. 아이들에게 말이다.

아홉 살 인생들은 생각보다 더 빛나고, 찬란했다. 나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 자그마한 손짓에도 쉽게 물결치는 것을 경험한 3월 한 달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린 그림은 어떻겠는가. 아이들에게 내가 연예인(?)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의 칭찬이 줄을 이었다.



"선생님, 예술가예요?"

"그림책이랑 그림이 똑같아요!"

"아니야, 선생님이 더 잘 그렸어!"



분에 겨운 칭찬에도 그저 행복했다. 아이들의 해사한 미소를 매일 볼 수 있다면 하루에 20분쯤 칠판 그림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우리 반에 함께해주시는 협력 강사님도 어느 날 나에게 살포시 다가와 말씀을 건넸다.




선생님, 선생님 교실에는 낭만이 있어요.

6년간 열심히 학급 운영을 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강사님께서 손으로 가리킨 내 칠판 그림이 그날 따라 더 어여뻐 보였다. 낭만이 있는 교실, 그것을 만들어준 것은 어쩌면 나도, 내 그림도 아닌 아이들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세 번째, 칠판에 그려진 그림책 매일 읽어주기!

그림책을 그려주기만 하면 의미가 없지, 하루 종일 우리 반과 함께 한 그림에 아이들이 스며드는 마지막 시간쯤, 나는 아이들에게 해당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어쩜 매일 읽어주어도 매일 반응이 좋은지, 이게 바로 저학년의 매력인가? 내가 잘 읽어주는 건가? 착각을 할 때마다 미진한 나의 그림책 식견을 떠올리면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된다.   








칠판에 그림을 한 달 동안 그렸더니, 그림책 박사가 되었어요!

라고 말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그림책들이 너무나 많고, 다른 운영진에 비해 나의 식견은 조막만 하며, 상황에 적절한 그림책을 척척 내뱉는 멋있는 사람이 되지도 못했다.

하지만 뭐랄까, 그런 마음이 생겼다.

한 달을 꾸준히 할 수 있다면, 몇 달이고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렇다면 언젠가는 나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식견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나는 어떻게 이렇게 매년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왜 내가 꾸리고 있는 정원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외연을 넓히고 싶어 할까,

하던 거나 잘하지, 내 무덤을 내가 팠네,

라는 생각을 지독하게도 많이 했던 3월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존에 하는 일과 새롭게 하는 일이 정말 동떨어진 일이었을까, 이렇게 물길을 내다보면 결국 한 길로 넓게 흐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품으면서,

오늘도 나는 다음 주에 그릴 그림책을 고르러 간다.



*칠판 그림 기록은 인스타그램에 담아두고 있어요.

브런치에는 아무래도 매번 업데이트하기 어려우니, 궁금하신 분들은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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