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표정 관리를 잘 못한다. 기분의 좋고 나쁨이 얼굴이 고대로 드러난다. 말로는 거짓말을 해도, 얼굴로는 거짓말을 못한다. 겉과 속이 참 똑같다.
결혼 후 남편과 부딪히는 일이 많은 것도 내 표정 때문이다. 입으로는 "괜찮아", "더 자", "내가 할게"를 외치지만 표정은 "짜증 나", " 얼른 안 일어나?", "그따위로 할래?"를 말하고 있다. 내 표정은 말보다 오만 배쯤 정직하다. 싫은 것, 귀찮은 것, 짜증 나는 것은 물론이고 불편하고 어색한 건 더 티가 난다. 시댁에 갈 때마다 남편과 삐걱거리는 이유다.
아이가 생긴 뒤 시댁에 가면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다. 모두가 아이만 본다. 내 존재감은 별로 없다. 사실 시댁에서 존재감 있는 며느리도 드물 거다. 나는 스스로를 아기의자나 아기띠 같은 존재라고 여긴다. 아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아이를 케어하는 존재.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시댁에서 날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어려워하시며 잘 대해주시는데도 나는 자진해서 투명인간 코스프레를 한다. 괜히 불편하고 어색하니까 그냥 눈에 안 보이는 존재라고 생각해 버리는 거다. 결혼 3년 차인데 왜 아직도 불편할까? '시댁'과 '며느리'는 그냥 그 자체로 불편한 관계라서 그렇다.
결혼을 통해 나는 남편 소유가 됐고 남편은 내 소유가 됐다. 그런데 가끔 남편이 여전히 어머님 소유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까워질 것 같던 내 마음은 배로 멀어진다. '멀어지고 싶다'는 마음이 기본 전제라 멀어질 만한 상황이 생기면 가속도가 붙는다.
일찍 결혼한 친오빠를 통해 우리 부모님의 며느리가 된 새언니를 접했다. 육아 때문에 부모님 댁에 들어와 살게 된 뒤로, 부모님이 며느리 흉보는 건 일상이었다. 심하게 흉보신 적은 없지만 오빠가 3 정도의 잘못을 하면 3의 강도로 나무라실 것을 새언니가 3을 잘못하면 8 정도로 흉을 보셨다.
내 자식이 아니라 남의 자식이고, 며느리는 아들에게 딸린 부수적인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내 아들은 가정의 주인이고, 며느리는 아무리 잘났어도 그 주인의 곁을 지키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며느리의 야망이나 자아실현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건강은 챙긴다. 며느리가 아프면 아들과 손주가 피해를 보니까).
지금 나와 남편은 필드에서 함께 사냥을 하고 있다. 비슷하게 돈을 벌고, 사회 경험치도 비슷하고, 육아 참여도는 "당연히" 내가 더 높다. 이러니까 모든 게 기브 앤 테이크인 결혼 생활에서 나는 굳이 남편의 부수적인 존재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며 귀엽고 살가운 며느리가 되고 싶진 않다. 시댁에서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실 경우엔 상황이 달라진다. 받는 게 있으면 반드시 돌려드려야 한다. 정량적인 것으로 돌려드릴 수 없다면 정성적인 것으로 온 힘을 다해 돌려드리는 게 맞다. 까놓고 말해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 마음으로 잘해야 한다는 소리다.
아직까지 결혼은 남성 중심적인 제도다. 여권이 신장됐다 해도 결혼이 여성 중심적인 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거다('결혼식'만 여성 중심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했으면 아내이자 며느리가 남편이자 아들의 부수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해가 안 돼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의 본질이자 모순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싶진 않다. 싸우지 않고, 서로 다치지 않게, 적당히 인정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나도 인간인지라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곧 내가 왜? 하는 물음이 든다. 시댁에서 예의를 갖추는 건 인간이자 며느리로서의 기본 도리지만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는 건 기본 도리는 아니다. 주기적으로 시댁에 가는 건 아내이자 며느리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지, 자발적으로 원해서는 아니다. 남편을 존중하며 결혼 생활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이상하게 내가 나일 수 없는, 어색하고 불편한 존재 시댁. 다른 공간에서 다른 관계로 만났다면 존경하고 스스럼없이 친해질 수도 있었을 사람들과 나는 점점 더 어색해지고 있다. 시댁과 며느리 사이에 껴서 종종 괴로워하는 남편에게 이해를 구하고 싶다. 이게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물론 내가 착하고 이해심 많은 사람이었다면 상황은 조금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누군가의 며느리가 된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여하튼 시댁 갈 때마다 표정이 이래서 미안해,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