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라는 확신

by 저기요

나만큼이나 남자 보는 눈이 없는 친구가 있었다. (물론 나보단 나았지만) 결혼하기 힘든 악조건을 가진 남자들만 골라 사귀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내 연애가 더 노답"이라며 불행 배틀을 벌였다.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동병상련을 나누다 보면 헤어질 때 마음가짐은 한결같았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괜찮긴 개뿔 뭐가 괜찮니...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며 짧지 않은 시간을 찌질한 연애에 허비했다. 친구는 결혼에 적합한 '멀쩡한' 남자를 만나 나보다 일찍 결혼했는데, 결혼 준비를 할 때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편해 보였다. 남자의 학벌과 경제력에 집착하던 친구네 부모님이 이젠 모든 걸 내려놓으셨는지 "대학은 나왔냐?", "지 밥벌이는 하는 거지?" 단 두 개의 질문만 던지셨다는 거다. 엄청난 변화였다.


친구가 그랬다. 할 사람과는 하게 되어 있다고. 예전 남자 친구들과는 아무리 해도 진도가 나가질 않았는데, 이번 남자 친구와는 순풍에 돛 단 듯 모든 게 순조롭다고 했다. 그때 당시 여전히 찌질한 연애에 발목이 묶여 있던 나는 친구 얘기를 들으며 1) 과연 나에게도 그런 날이 올까 2) 젠장 부럽다... 이 생각만 들었다. 나에겐 영영 일어나지 않을 일 같았다.


연애를 할 때마다 상대가 "결혼하자"는 말을 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고로 나는 비자발적 비혼 주의자가 되었다. 사랑에 빠지면 늘 상대와의 결혼을 꿈꾸게 되는데, 좋다고 먼저 달겨든 인간들이 결혼하자는 말은 일절 안 하니 참 슬프고 지쳤다. 물론 그들에겐 결혼을 절대 할 수 없는 매우 큰 결격사유가 1개 이상 있었다. 제 앞가림도 못할 만큼 생활력이 없거나, 미래가 불투명하거나, 우리 부모님을 상대할 베짱이 없거나.


그런데 왜 만났느냐고 묻는다면 그저 웃지요 #허허


남편과의 짧은 연애 기간 동안, 나는 참고 또 참았다. 이전 남자 친구들과 정반대 타입이라 '이 남자와는 결혼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 상대론 별로여도(여보 미안) 결혼 상대로는 괜찮을 것 같았다. 남편은 '가부장제의 총아' 같은 사람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고, 가족에게 희생해야 한다는 마음이 크다. 연애할 땐 남편의 이런 사고방식이 너무 싫었다. 여자 친구는 뒷전이고 허구한 날 가족 뒤치다꺼리에 여념이 없으니 좋을 리가 없었다.


가족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면? 그와 가족이 되면 된다. 결혼은 엄청나게 가족 중심적인 제도다. 양가 식구들 신경 안 쓰고 자유롭게 살래요~라는 건 결혼을 모를 때 했던 소리다. 갑자기 누가 방문 열고 들어올까 봐 불안했던 사춘기 시절보다 식구들 존재가 더 신경 쓰이는 게 결혼이다. 결혼을 하면 예기치 못한 가족 이슈가 시시때때로 일상을 침범한다.


싫고 어색하고 불편하고 귀찮은 감정. 나는 우리 가족에게도 이런 감정을 꽤 자주 느끼는데 남편은 나와 다르다. 싫고 귀찮을 때도 있겠지만 그걸 나만큼 티 내며 살진 않는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적당하게' 행동한다. 가족 문제는 그냥 접고 들어가는 그의 가부장적인 면이 우리 결혼생활을 지탱하는 울타리다.


결혼할 사람은 뭔가 다른가요?라는 질문을 나도 많이 했었다. 다르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진 않아도 뭔가 다르다. 이 사람이라면 부당하고 불편한 것도 참을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믿음과 기대가 훅 치고 들어온다. 이 남자라면 내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겠구나, 서로의 가족이 어울릴 수 있겠구나 하는 '와꾸'가 잡힌다. 그 와꾸가 바로 감이다.


나를 원하고,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내가 잘 못하는 건 성큼 앞장서서 해주는 사람. 나와 당신이 함께면 꽤 괜찮은 그림이 될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면 결혼을 하게 된다. 살면서 여러 번 부딪히고 깎여도 남편이 나에게 주었던 확신은 영영 녹지 않는 만년설처럼 내 마음 한켠에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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