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관하여

[사유 05]

by E 앙데팡당
사랑에도 준비가 필요할까?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대기실 프로젝트 <사랑을 위한 준비운동>은 사랑에도 배움과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때의 사랑은 감정의 영역을 넘어서 세상을 이해하고 이와 관계를 맺는 일상적인 태도이다. 살면서 마주치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한 준비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와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차별과 혐오와 같은 일상적인 폭력에 맞서는 행동으로서의 작품과 활동을 다루는 <사랑을 위한 준비운동>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이은희의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은 높고 가파른 계단이 많은 남서울미술관을 순회하는 걸음걸이 영상과 함께 장애등급 판정기분, 수정바델지수, 인지기능장애 평가도구의 문항들을 자막과 내레이션으로 제시한다. 제시되는 여러 항목들 안에서 과연 우리들은 몇 점짜리 정상인일까, 온전히 정상적인 몸과 마음을 지니는 것은 가능할까.


이은희,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 2021


나는 혹은 당신은,
치료와 약품, 건강보조제를 섭취하지 않고 온전히 건강한가?
혼자서 어떠한 보조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생활하는가?
종일 무엇하나 잊어버리거나 헷갈리지 않고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는가?
혼자서 모든 이동을 걸어서 할 수 있는가?
전시에 입장하기 위해 온전히 보행하고 왔는가?
그 누구의 도움과 안내를 받지 않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사회가 지정하는 100점짜리 정상인에 부합하다.
그러나 과연 그 누가 이 좁디좁은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완전한 의존과 독립이란 것이 과연 가능할까?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대기실 프로젝트 #2 <사랑을 위한 준비운동> 워크북 발췌


필자는 일상 속에서 안경, 혹은 렌즈를 착용하고 생활을 한다. 이러한 도구들이 없이도 세상과 마주할 수 있지만 사물의 형태를 파악하고 각각을 명확히 구분짓거나 글씨를 읽는 행위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필자의 하루는 분명히 가지고 있으나 어디있는지 모르는 것들을 찾아 헤매는 것에서 시작하고 또 끝난다. 필자가 잃어버린 수많은 우산과 다른 소품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시를 방문하기 위한 여정도 함께 살펴보자. 집을 나선 후 미술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버스와 지하철의 이용이 불가피하다. 물론 온전히 도보를 통해 올 수도 있겠지만 시간상의 문제 뿐 아니라 체력상의 문제로도 굳이 그런 길은 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하루는 정상인의 범주에 속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을 읽는 독자는 필자의 이러한 하루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가?


사회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때때로 우리에게 아주 당연한 행동들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정상인의 범주에 속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던 우리에게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위의 기준에서 볼 때 그 종류와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 우리 모두는 일정 부분에서 불편함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을 긋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한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정상인의 범주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종 혐오표현으로 지칭하며 배척한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 모두는 만점짜리 육체와 정신을 가지지 못한 비정상인이다. 또한 육체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혹은 외부의 이유로 점점 더 만점과 멀어져 간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다른 이들의 삶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만약 현실의 문제로 인해 타인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신체상의 다름을 이유로 타인을 배척하는 일은 만들지 않도록 노력을 하자. 이러한 노력이 바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한 준비 운동이자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향한 발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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