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의 자리, 시민의 책임, 그리고 침묵의 비용
안전한 자리와 불편한 질문 사이에서
마흔 후반이 되니 선택의 기준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해보고 후회하는 쪽을 택했다면 이제는 괜히 나섰다가 상처받지 말자는 계산이 먼저 선다. 특히 공적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교감이라는 직함, 언젠가 교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 길 위에서 괜한 오해를 사지 말라는 주변의 조언은 충분히 현실적이다. 가족과 선배들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들은 나를 보호하려 한다. 조직 안에서 조용히 자기 역할을 다하면 된다는 충고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유튜브에서 교육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신문사 등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위험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괜히 입방아에 오를 뿐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것이 중년의 사춘기인가, 아니면 늦게 찾아온 책임감인가. 그러나 질문을 미루는 동안에도 교육 현장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교실의 공기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벽에 대고라도 소리치라는 말의 의미
예전에 들었던 한 정치인의 말이 떠오른다. 벽에 대고라도 소리치라고 했다. 당장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교육은 정답이 없는 영역이다. 정책 하나가 학교를 살릴 수도, 더 지치게 할 수도 있다. 무엇이 옳은지 단번에 증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닿아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사교육비는 기형적으로 치솟고 가정경제는 흔들린다. 학교는 마음껏 가르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안전과 민원 사이를 줄타기한다. 학생들은 협력보다는 경쟁을 먼저 배우고 친구는 동료가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가 된다. 이런 구조를 보며 침묵하는 것이 과연 중립일까. 나는 가끔 독일의 한 목사가 남긴 고백을 떠올린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문장은 정치적 선언을 넘어 시민의 태도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교육 현장이 황폐해질수록 피해는 결국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로 돌아간다. 침묵은 안전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비용을 남긴다.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책임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이롭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조직 안에서 무난하게 평가받으며, 남은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없다”고 했다. 침묵도 하나의 선택이다. 말하지 않겠다는 결정 역시 책임을 동반한다. 중년이 되니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과거였다면 이미 생을 정리했을 나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남은 삶이 두려워 말하지 않는다면, 훗날 돌아봤을 때 후회가 남지 않을까. 나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것이 과연 교육자다운 태도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정작 교사가 시민으로서 침묵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자기모순일 수 있다. 학생들에게 토론과 참여를 말하기 전에, 교사 자신이 공적 사안에 대해 성찰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감정에 휩쓸린 발언이 아니라, 근거와 책임을 갖춘 언어로 말해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교사
교육 정책이 늘어날수록 현장은 더 복잡해진다. 법과 지침은 세분화되지만 교실의 어려움은 단순해지지 않는다. 교원과 학부모, 학생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위에서 설계된 정책은 현장에서 다른 모습으로 변형된다. 그래서 현장의 언어가 필요하다. 나는 칼럼과 인터뷰가 벽에 대고 외치는 것보다 더 나은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기록으로 남고, 누군가는 읽고, 또 다른 논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침묵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확신 역시 없다. 교육이 시대에 뒤처진다는 불안, 정책이 방향을 잃고 있다는 걱정, 저출생과 경쟁지옥이라는 구조적 문제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나 스스로를 설득하기 어렵다. 교사는 직업 이전에 시민이다.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겠다는 다짐은 거창한 투쟁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에 책임 있는 언어를 선택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하여
저녁이 되면 하루의 선택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오늘 나는 무엇을 말했고 무엇을 삼켰는가를 생각한다. 시끄러움을 피하는 것이 상책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면, 최소한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할 용기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교육은 단기간에 결과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방향이 중요하다. 옳은 방향을 찾기 위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곧 민주주의의 훈련이다. 나는 완벽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침묵 속에서 편안해지는 대신, 불완전하더라도 말하고 고민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훗날 인생의 마지막에서 돌아봤을 때, 안전을 위해 침묵했다는 후회보다 서툴렀지만 책임 있게 말하려 했다는 기억이 남기를 바란다. 오늘의 다짐은 거창하지 않다. 우리를 위한 일이라면,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일이라면, 말하고 행동한 뒤에 후회하겠다는 작은 결심일 뿐이다.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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