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알았다

장학사에서 교감으로 돌아온 뒤, 몸과 마음이 들려준 학교와 삶의 이야기

몸이 먼저 보내온 신호

평생을 마른 체격으로 살아왔다. 주변에서는 늘 “살 좀 쪄야 한다”는 말을 했고, 나 역시 언젠가는 조금 더 건강하게 체중이 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학교로 돌아온 지 몇 달이 지나자 몸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몸이 조금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집에 들여놓은 혈압계가 나를 멈춰 세웠다. 화면에 찍힌 숫자는 ‘고혈압 1단계’. 그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교육청에서 일하던 시절에도 업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수많은 민원과 복잡한 사업 일정 속에서 긴장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때는 오히려 몸이 버텨주었다. 긴장 속에서 몸도 함께 긴장하며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학교로 돌아온 뒤 상황은 조금 달랐다. 겨울 동안 춥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멀리했고, 딸을 등교시키느라 자연스럽게 운전대를 잡았다. 하루의 활동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운동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밤늦게 헬스장에 가서 근력운동을 하곤 했다. 그러나 늦은 시간에 몰아서 하는 운동은 몸을 가볍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피로를 더 쌓이게 했다. 유산소 운동 없이 근력운동만 반복하다 보니 겉으로는 단단해 보일지 몰라도 몸의 중심은 예전 같지 않았다.

몸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하자 마음도 함께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웃어넘길 일에도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은 흔히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인심은 건강에서 나는지도 모른다. 몸이 편안해야 마음도 너그러워진다. 건강이 흔들리기 시작하니 마음의 여유도 함께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장학사와 교감 사이의 거리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행정 업무에 꽤 자신이 있었다. 공문을 처리하고 정책을 조율하며 다양한 민원을 상대했다. 때로는 감정이 격해진 민원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갈등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학교와 민원인 사이의 중간자였고, 때로는 외부 전문가에 가까운 위치였다. 민원은 처리해야 할 행정 사안이었고 나는 비교적 객관적인 거리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학교로 돌아와 교감이 된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학교는 매일 얼굴을 맞대는 관계의 공동체다. 민원 역시 단순한 행정 사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로 다가온다. 학부모와 교사, 학생과 학교 사이의 관계가 얽혀 있는 문제들이다.

그래서 갈등을 다루는 방식도 달라진다. 행정적으로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교육청에서 처리하던 민원이 우비를 입고 비를 맞는 느낌이었다면, 학교에서의 민원은 비를 직접 맞으며 서 있는 느낌에 가깝다.

거리의 차이가 감정의 무게를 바꾼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민원은 행정 처리 이상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아침 인사가 주는 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내가 평생 바라던 자리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마음이 편안한 순간이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아직 세상의 무게가 묻어 있지 않다. 장난스러운 웃음, 수줍은 인사, 잠이 덜 깬 얼굴까지도 모두 사랑스럽다.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학교라는 공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귀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학교가 불필요한 행정 요구와 제도적 부담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학교는 사람을 키우는 공간인데 때로는 숫자와 절차가 그 중심을 대신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선

최근 성과상여금 업무를 처리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제도는 누군가가 교사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구조라기보다는 교사들 사이의 다면평가를 통해 서로의 활동을 살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생긴다.

교사에게 교육은 숫자로 환산되는 일이 아니다. 교실 안에서의 노력은 눈에 보이는 성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학생의 변화는 시간이 지나야 보이기도 하고, 어떤 노력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교사의 헌신은 대개 조용한 곳에서 쌓인다. 교실에서 학생과 나누는 짧은 대화, 쉬는 시간에 아이를 불러 다독이는 순간, 방과 후 남아 수업을 고민하는 시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교육의 대부분을 이룬다.

그런데 성과상여금 제도에서는 교사들이 서로의 활동을 평가하고 그 결과가 등급과 금액의 차이로 이어진다. 이 과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이지만 학교 안에서는 미묘한 긴장감을 만든다.

평가를 해야 하는 사람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평가를 받는 사람 역시 결과를 의식하게 된다.

학교는 경쟁 조직이 아니라 협력 조직이다. 교사들은 서로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학생을 키우는 동료다. 학생 한 명의 성장은 여러 교사와 학교 구성원들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성과상여금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공동체의 분위기와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교감이라는 자리에서 배우는 것

20대 교사 시절, 내가 바라보던 교감 선생님들은 늘 안정감 있는 존재였다. 경험이 많고 학교를 묵묵히 지탱하는 어른이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교감 선생님이 계시니까 괜찮다”는 믿음을 주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서 보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과연 그때 내가 보았던 교감의 모습처럼 누군가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고 있는가.

학교로 돌아와 보니 몸도 마음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교육청에서 일할 때는 늘 긴장 속에서 살았고 그 긴장이 나를 버티게 했다.

지금은 그 긴장이 조금 풀린 대신 몸이 그동안 쌓인 피로를 하나씩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다른 기준을 생각하게 된다.

완벽한 관리자가 되는 것보다 균형 잡힌 어른이 되는 것. 학교 안에서 사람을 지키고 관계를 지켜내는 것.


몸이 알려준 새로운 기준

고혈압이라는 숫자는 나에게 작은 경고였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말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다시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늦은 밤 몰아치는 운동보다 아침 공기를 마시며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교감이라는 자리 역시 마찬가지다.

완벽한 관리자가 되기보다 건강한 어른이 되는 것이 먼저일지도 모른다.

건강해야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마음이 여유로워야 사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학교는 여전히 따뜻한 공간이고, 아이들은 여전히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교문 앞에 선다.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다시 생각한다.

멋진 교감이 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 다만 균형 잡힌 어른으로 학교를 지켜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새로운 기준일지도 모른다.


2026. 3. 8. 별의별 교육연구소장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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