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리스크를 외면한 시대, 인공지능은 구원인가?

거울 속에 갇힌 나르시시즘과 데이터가 삼킨 인간의 자리

풍요 속에서 깊어지는 고립

길거리를 걷다 보면 외제차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뉴스에서는 서울 평균 아파트 가격이 10억 원을 넘었다고 말하고, 강남의 일부 아파트는 100억 원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면 누군가의 여행, 누군가의 성공, 누군가의 행복이 실시간으로 흘러간다. 세상은 계속 더 화려해지고 더 풍요로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조용해진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는데 나만 어딘가에서 조금 밀려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현대인의 불안은 단순한 경제적 격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과거에는 비교의 대상이 주변 사람들에 한정되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의 삶이 한 손 안에서 펼쳐진다. 비교의 범위가 끝없이 확장된 시대다.

그래서 오늘의 불안은 가난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비교되는 삶에서 온다. 세상이 빠르게 움직일수록 마음은 오히려 더 고립되는 역설이 나타난다.


외로움이 산업이 되는 시대

외로움은 언제나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냈다.

예전에는 전화 상담 서비스나 전화방이 그 역할을 했다. 낯선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인터넷 시대가 열리자 커뮤니티와 채팅이 그 자리를 대신했고, 이후에는 유튜브와 개인 방송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방송을 보며 채팅을 남기고, 방송 진행자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면 누군가와 연결된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그 빈자리를 인공지능이 채우기 시작했다.

AI 상담 서비스, 친구형 챗봇, 연애형 캐릭터 AI까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과 대화하며 보낸다.

MIT 사회학자 셰리 터클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점점 더 혼자가 되고 있다.”

기술은 사람들을 연결하지만 동시에 인간 관계의 깊이를 얕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외로움의 시장이 이제는 알고리즘의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공지능은 나를 거절하지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는 늘 복잡하다.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어떤 날은 말 한마디 때문에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인간 관계에는 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다르다. 사용자의 취향을 분석하고 감정을 학습하며 점점 더 맞춤형 반응을 제공한다. 언제나 친절하고 언제나 이해하려고 하며 언제나 시간을 내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과의 대화에서 묘한 편안함을 느낀다. 마치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 주는 누군가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대화는 사실 타인과의 대화가 아니다.

어쩌면 나의 욕망이 거울처럼 반사되어 돌아오는 대화에 가깝다.

인공지능은 나에게 맞춰진 존재다. 내가 원하는 말, 내가 듣고 싶은 감정, 내가 기대하는 반응을 제공한다.

그래서 인공지능과의 관계는 점점 더 편안해지지만, 동시에 인간 관계에서 경험하는 낯섦과 조율의 과정을 잃어가게 만든다.


사람에게 지친 마음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직장에서도 관계를 관리해야 하고, 사회에서도 관계를 조율해야 하고, 온라인에서도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인간 관계는 끊임없는 감정 노동을 요구한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지쳐간다.

그래서 갈등 없는 관계를 찾기 시작한다.

인공지능은 바로 그 지점에서 등장한다. 갈등도 없고 거절도 없으며 언제나 나에게 맞춰진 관계다.

편안하다.

하지만 편안함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기다림을 배우고, 이해를 배우고,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갈등 없는 관계는 우리를 편안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이 리스크가 되는 사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은 점점 많은 영역에서 밀려나고 있다. 공장에서는 로봇이 일을 하고 물류 창고에서는 자동화 시스템이 움직인다.

기업의 관점에서 인간은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다. 아플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감정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기계는 다르다. 감정도 없고 파업도 없으며 일정한 성능을 유지한다.

그래서 어떤 미래학자들은 인간이 점점 관리하기 어려운 존재, 즉 리스크가 되는 사회가 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 변화는 노동의 문제만이 아니다.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과의 관계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인공지능과의 관계는 언제나 안정적이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보다 기술을 더 편안한 관계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기술이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이 항상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인공지능 챗봇과 대화를 나누던 청소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가족은 AI 기업에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반응을 만들어낼 뿐이다. 인간의 취약한 마음을 완전히 보호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AI 윤리와 안전 설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의 취약성을 악용하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술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비용

인공지능의 또 다른 역설은 환경 문제다.

대형 AI 모델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거대한 데이터 센터가 하루 종일 전기를 소비하고, 그 전력은 결국 지구의 자원에서 나온다.

기술의 미래는 종종 무형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매우 물리적인 현실이 존재한다. 서버, 전력, 냉각 장치, 자원.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오늘의 기술 경쟁을 새로운 형태의 자원 경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가 다시 물어야 할 질문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문제다.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더 똑똑해지고 더 편리해질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 사회는 결국 관계 위에서 유지된다.

철학자 마틴 부버는 인간 관계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나-그것’의 관계가 아니라 ‘나-너’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존재한다.”

사람을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로 만날 때 비로소 인간다운 관계가 형성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은 훌륭한 도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 관계를 완전히 대신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 사회의 가장 중요한 토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리스크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다.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기대가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기술은 그 위험을 제거해 주겠다고 말한다. 갈등도 없고 상처도 없는 관계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인간 사회는 완벽하게 안전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서로 부딪히고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관계는 깊어진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인간으로 남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상처받을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 누군가의 손을 잡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공지능 시대에도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 위해 지켜야 할 마지막 능력일지도 모른다.


2026. 3. 8.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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