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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한계에 부딪히다

오늘도 나는, 글쓰기라는 작은 섬에서 나 자신과 마주 선다

‘쓴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감동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누가 보든 말든, 그것은 내가 나와 만나는 시간이었고, 하루를 정리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마다 '잘 쓴 글인가'보다 '내가 진심을 담았는가'에 더 집중했었다.

그러다 한 달 만에 구독자 천 명을 달성했을 때, 말로 다 하지 못할 감정이 밀려왔다. 뿌듯함, 기쁨, 설렘, 약간의 놀라움까지. 하지만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글쓰기가 어디선가 살짝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는 걸 느낀 건.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는,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글, '좋아요'를 받을 수 있는 글을 고민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더 조급해졌고, ‘일단 써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무언가 완성되기 전에 올려야 할 것 같은, 글쓰기의 마감일이 생긴 느낌. 그렇게 나는 어느덧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찍어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조급함은 깊이를 앗아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글에서 어떤 생기가 빠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히 나는 하루하루 느낀 감정과 생각을 글로 남기고 있었지만, 그 글들 사이에는 점점 ‘맥’이 없어지고 있었다. 예전처럼 긴 호흡으로 문장을 엮는 것이 어려워졌고, 하나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써 내려가는 여유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글을 쪼개고, 단편적으로 써서 이어 붙이고 있었다. 겉보기에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전체적인 조화가 깨져 있었다. 글의 서사가 아닌 조각난 파편들만이 남아 있었고, 그 파편들을 이어 붙이다 보니 글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 글에는 감정이 담기기보다 감정을 흉내 낸 문장이 들어섰고, 생각이 녹아들기보다 생각의 결과만 급히 정리된 듯한 문단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느끼는 ‘글의 메마름’이었고, ‘생명력을 잃었다’는 표현이 떠오른 이유였다.


하루의 파편을 모아 쓰는 글, 그것이 문제였다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고, 그 하루의 농도를 담아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즘 나는 하루 끝에 남은 파편만으로 글을 짜내고 있었다. 자기 전, 의무처럼 노트북을 열고, 생각의 조각을 붙잡아 글을 써 내려갔다.

이런 글쓰기는 감정의 맥락을 충분히 살피지 못한다. 생각이 온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쓰면, 결국 그 글은 ‘정리되지 않은 나’를 드러낼 뿐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분명 의미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마음과 흐트러진 상태로 쓰는 글은 오히려 나에게 실망을 안겨주곤 했다.

글은 곧 나다. 그런데 나는 요즘 글 앞에서 준비되지 않은 사람으로 서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독자와의 만남을 소중히 여겼고, 내 글을 읽는 이의 시간과 관심에 대한 예의를 다하고자 했다. 하지만 최근의 글은, 그런 마음이 옅어지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글이 ‘과제’가 될 때, 진심은 사라진다

예전엔 글을 쓰는 일이 설렘이었다면, 요즘은 어딘가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매일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 ‘나는 글 쓰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에 대한 증명이 필요해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글이 과제가 되고, 과제는 진심을 앗아간다.

내가 내 글을 먼저 좋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도 아쉬움만 남는다. 어쩌면 나 자신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글을,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란다는 건 욕심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오늘, 나의 글을 돌아보며 수많은 아쉬움을 떠올렸다. 글 한 편을 쓴 후에도 어쩐지 마음에 찜찜함이 남고, ‘이게 과연 내가 쓴 글이 맞나’ 싶은 회의감이 찾아오는 날이 많아졌다. 이 모든 건, 진심보다 증명이 먼저였기 때문일 것이다.고립된 섬에서 벗어나야 한다

브런치를 시작했을 땐 다른 작가들의 글을 자주 읽었다. 그들의 문장에서 위로를 받았고, 나도 언젠가는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내 글만 쓰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구독만 해두고, 정작 읽지 않는 다른 작가들의 글. 내 생각만 펼치고, 다른 생각은 들여다보지 않는 편협함.

글은 혼자 쓰지만, 글쓰기의 본질은 결국 ‘연결’이다. 그 연결이 끊어지면, 글은 고립되고, 고립된 글은 독자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나는 나만의 고립된 섬을 떠나야 한다. 다시 읽고, 느끼고, 타인의 생각을 내 마음에 담아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좋은 글은 결국, 좋은 읽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을 위한 ‘마음’과 ‘체력’

글은 마음으로 쓰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덧붙이고 싶다. 글은 체력으로도 쓴다.

요즘의 나는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글을 쓰고 있다. 하루가 끝나고 몸은 피곤한데, 생각은 멈추지 않아 억지로 글을 쓰려 하면, 감정이 쏟아지기보다 흐릿하게 뭉개져 버린다. 그러면 글은 감상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또는 감정을 충분히 담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남는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하루를 잘 살아내는 체력이 필요하다. 건강하게 깨어 있고, 생생하게 경험하고, 밤엔 안정된 마음으로 그 하루를 정리하는 힘이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내면의 에너지를 바깥으로 펼쳐놓는 일이기에, 그 에너지가 고갈되면 문장도 힘을 잃는다.


위로받는 글쓰기, 소통의 창을 여는 일

내가 글을 쓰며 가장 위로받았던 순간은, ‘좋아요’ 하나, 짧은 댓글 하나를 받았을 때였다. “잘 읽었습니다.” “오늘 제 마음 같았어요.” 그 한 줄의 문장은, 하루 종일 무기력했던 나를 위로하고, 다시 쓰고 싶게 만들었다.

글쓰기란 결국 세상과 소통하는 창을 여는 일이다. 그것이 내 마음을 드러내는 일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브런치에는 멤버십 제도도 생기고, 수익 모델도 제안되고 있다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순수한 글쓰기’와 그것을 나누는 ‘작은 연결’이 훨씬 소중하고 행복하다.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는 일, 그 자체로 충분하다.


글쓰기를 통해 돌아간 시간, 성장하는 나

고등학생 시절, 나는 매일 일기를 썼고, 니체와 칸트를 읽었다. 철학과를 가고 싶어했던 문학소년. 지금의 글쓰기는 그 시절의 나를 다시 꺼내는 일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면서 나는 종종 20살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희망과 설렘이 있었고, 사유의 깊이를 꿈꿨던 그 시절. 부족하지만 진심을 담고 싶었던 그 때의 마음이 요즘 다시 나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지금의 이 부족한 글쓰기가,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여정이 되기를. 생각하고, 반성하고, 나누고, 함께 울고 웃는 글쓰기를 통해 나도 계속 자라고 싶다.


글은 흔적이고, 존재의 증명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세상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존재는 아닐까? 나의 존재는 너무 작고, 너무 조용해서, 이대로 사라져도 누구도 모를 것만 같다.

하지만 글을 쓰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 닿았을 때, 나는 내 존재를 확인받는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당신의 글이 도움이 되었어요”라고 말할 때, 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과 연결된 사람이다.

글은 내 정체성이다. 내 생각이 곧 나이고, 그 생각을 담은 글은 나의 발자취다. 오늘의 이 글도, 오늘의 내가 남긴 조용한 기록으로,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이 밤을 마무리한다.


2025.8.27.(수)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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