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가능한 삶, 그것이 진짜 나였을까?
책에서 데이터로, 삶의 정수는 희석되는가?
과거 사람들은 지식과 경험을 ‘책’을 통해 배웠다. 책은 한정된 분량 속에서 삶의 정수를 담아냈다. 그러나 현대인은 더 이상 책 한 권에 응축된 지혜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영상과 글을 통해 타인의 삶을 실시간으로 엿보며, 선택 가능한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최적의 길을 찾아 나선다.
게임의 공략집처럼, 네비게이션이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듯, 현대인은 삶에서도 효율성과 최적화를 원한다.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손해 보지 않는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장 폴 사르트르가 말한 ‘자유의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고, 그 대신 ‘안전한 선택’이라는 새로운 굴레가 우리의 삶을 감싸고 있다.
검증된 삶을 향한 열망
SNS의 발달은 동시대인의 삶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남들이 어디에서 무슨 음식을 먹고, 어떤 여행지를 가며, 어떤 성공의 길을 걸어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도전보다 안주를, 무모함보다 안정을, 새로움보다 검증된 삶을 선호하게 되었다.
음식은 리뷰를 보고 결정하고, 여행은 블로그와 유튜브의 추천 코스를 따라간다. 삶조차도 ‘최적의 경로’와 ‘등급’이 존재하며, 성공의 길은 점점 더 붐비고 경쟁은 치열해진다. 그러나 니체가 ‘영원회귀’ 개념을 통해 지적했듯, 무한히 반복되는 같은 패턴 속에서 인간은 권태와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꿈꾸지만, 정작 그 길에서 낙오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조차도 끊임없이 새로운 검증을 요구받으며, ‘더 나은 삶’을 향해 질주하느라 정작 행복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욕망을 사고파는 자본주의
인터넷과 미디어는 이런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성공학, 이끌림의 법칙, 시크릿, 관계의 기술 등, 삶을 기술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코칭하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진정성보다는 요령이 중요해지고, 삶의 방식조차도 하나의 제품처럼 팔리고 소비된다.
자본주의는 더 이상 ‘쓸모’를 사고파는 시스템이 아니다. 이제는 ‘욕망’ 자체를 사고파는 구조로 변화했다. 파이어족을 꿈꾸고, 돈의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육체노동을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삶의 본질은 흐려진다. 마르크스는 ‘소외’ 개념을 통해 현대 노동자가 자신이 만든 생산물과 분리된다고 보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노동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획일화된 욕망과 개성의 소멸
SNS를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된 사회에서 사람들의 욕망은 점점 단순화되고 획일화된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비슷한 꿈을 꾸며, 같은 방식으로 성공을 추구한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를 ‘시뮬라크르(Simulacra)’라고 설명하며, 우리가 이제 더 이상 ‘진짜’가 무엇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삶의 희소성, 유한함, 독특함과 개별성은 점점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누구나 SNS 속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을 꾸미고, 비슷한 성공 방식을 좇으며, 독창적인 삶보다는 ‘검증된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러나 결국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소통의 증가가 갈등을 심화하다.
우리는 소통의 도구를 늘렸지만, 정작 소통의 질은 악화되었다. 인터넷과 SNS는 전 세계의 사람들과 연결될 기회를 주었지만, 현실은 오히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만을 강화시키고 있다.
정치, 사회, 가치관의 차이가 극명해지면서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더욱 단절되고, 편을 갈라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통해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사회에서는 도덕적 판단마저도 획일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지금 그 경계에 서 있다.
안정적인 삶이란 환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공무원으로서 안정적인 일상과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일상이 어쩌면 환상일 수도 있다. 좋은 시대를 살아왔고, 우연히 직업이 공무원이었기에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 두기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내 삶도 주변인들을 통해 예측 가능해지고, 하나의 시뮬레이션처럼 보편적인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나의 길이었을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길’을 나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단조로운 삶의 궤적을 벗어나기 위해
그러나 어쩌면 단조로운 시뮬레이션, 보편적인 삶의 궤적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스스로의 삶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이미 새로운 변수는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픽테토스는 “삶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하루는 늘 새롭고, 늘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지금 이 순간은 무수한 변수 속에 존재하는 찰나와 같은 불꽃이다.
우리는 시뮬레이션 사회 속에서도 여전히 삶의 가능성을 탐험할 수 있다. 검증된 길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감각을 믿고, 삶의 우연성을 즐기며,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2025.3.2. 별의별 교육연구소 김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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