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는 수학 잘해야 하잖아."
그래서 경제학과를 갔다.
10년 후, 나는 개발자가 됐다.
중학교 때는 나모 웹에디터로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HTML 태그가 뭔지도 모르면서, 배경색 바꾸고, 이미지 넣고, BGM 넣고.
"이거 진짜 신기하다."
하지만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다.
왜?
"개발자는 수학 잘해야 하잖아."
그래서 컴퓨터는 취미로만 뒀다.
2000년대 중반.
"요즘 상경계가 대세야. 경제, 경영 가면 길이 넓어."
부모님도, 선생님도, 학원 강사도 다 그렇게 말했다.
나는 영어도 수학도 그리 잘하지 않았지만, "뭐 적당히 할 만하겠지" 하고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입학하고 첫 학기.
미적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이공계 갈 걸."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버티는 수밖에.
경제학이 나랑 잘 맞았냐고?
모르겠다. 끝까지 확신 없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경제학에서 배운 논리적 사고랑 문제를 구조화하는 습관은, 개발할 때 엄청 도움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 2학년.
필수 교양: 불교 개론
"이거 말고 다른 거 없나?"
대체 과목: 인터넷 프로그래밍 입문
"뭐야 이거. 그냥 이거나 들을까."
별 기대 없이 수강.
첫 시간.
<html> <body> <h1>Hello World</h1> </body> </html>
"...이거 중학생 때 해봤던 건데?"
중학교 때 나모 웹에디터로 만들던 개인 홈페이지가 떠올랐다.
태그 하나 바꾸면 화면이 바뀌는 게 신기했다.
즉각적인 피드백.
기말고사.
성적: A+
컴공과 전공자들도 많았던 수업에서.
"...어? 나 잘하는 거 아니야?"
그때 처음 생각했다.
"이거, 내 길일지도?"
문제는, 주변에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는 거였다.
여고 출신.
컴퓨터 하는 친구? 없음. 개발자 선배? 들어본 적 없음. 집에 개발자? 당연히 없음.
"여자가 개발을 한다고?"
그 말 자체가 낯설었던 시절.
혼자 HTML 만지고, 나모 웹에디터로 홈페이지 만들면서도:
"나는 그냥 취미로 하는 사람이지."
선을 그었다.
사실, 주변에서는 내가 제일 잘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비교할 대상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그때 누군가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줬으면,
나는 더 일찍 개발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대학 졸업.
취업.
IT? 안 갔다.
개발? 안 했다.
10년 넘게.
엑셀 다루고, 보고서 쓰고, 회의하고.
평범한 직장인.
컴퓨터는 그냥 업무 도구일 뿐.
HTML? 까먹었다.
JavaScript? 뭐였더라.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찜찜함이 남았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었던 건 이게 아닐까?"
10년 동안, 이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다.
2023년.
우연히 ChatGPT를 써봤다.
"이거... 코드도 짜줘?"
// GPT가 짜준 코드 function hello() { console.log("Hello World"); }
그때 깨달았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할 것 같다고.
과거였으면, 혼자 개발 공부하는 데 몇 년 걸렸을 거다.
책 사고, 강의 듣고, 에러 나면 포럼 뒤지고.
하지만 지금은?
GPT, 코파일럿, Claude.
24시간 내 개발 파트너.
"이거 왜 안 돼?" → GPT: "여기 세미콜론 빠졌어요."
"이 함수 어떻게 짜?" → Claude: "이렇게 짜면 됩니다."
덕분에, 혼자서:
프론트엔드 만들고
백엔드 구축하고
인프라 올리고
서비스 운영까지
전부 가능해졌다.
10년 전 내가 멀어졌던 개발은,
어느새 내게 훨씬 더 다정해져 있었다.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개발자 됐어요?"
솔직히 말하면:
운.
적절한 타이밍 (AI 시대)
적절한 도구 (GPT, Claude)
적절한 환경 (혼자서도 가능한 시대)
운이 좋았다.
하지만.
"계속 하는 것"은 순전히 내 선택이었다.
에러 나도 안 멈췄고, 막혀도 포기 안 했고, "이거 왜 하지?" 싶을 때도 계속했다.
'어쩌다' 시작했지만, '계속' 했다.
그게 전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에게.
비전공자여도 괜찮다. 여성이어도 괜찮다. 늦게 시작해도 괜찮다.
나는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
운도 있었고, 시대도 잘 만났지만,
결국 끝까지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홈피 만들던 여중생이, 지금은 개발자로 살고 있다.
완벽한 계획 없이도, 어설프게 시작해도, 느리게 가도,
멈추지 않으면 된다.
개발이 처음부터 내 꿈은 아니었다.
어쩌다 시작했고, 재미있어서 계속했고, 지금은 내 삶의 중요한 축이 됐다.
인생의 많은 일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
계획한 대로만 가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은 어설프게, 가끔은 느리게, 그래도 멈추지 않고 가는 것.
이게 내가 개발을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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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할 대상이 없어서 내가 잘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나만의 속도로 가게 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