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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그조띠끄 김서윤 Jan 05. 2024

야곱과 고갱이 펼쳐내는 삶에 대한 간곡하고도 당찬 욕망

설교 뒤의 환상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by 폴 고갱



설교 뒤의 환상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Vision after the Sermon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폴 고갱 Paul Gauguin (프랑스, 1848-1903)


미술 사조: 종합주의, 상징주의 

1888년, 캔버스에 오일, 72.2cm X 91cm 

에든버러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소장



형 에서를 배신한 사기꾼의 삶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다시 태어남의 상징이 된 '야곱', 그리고 자연을 재현하는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화가 자신의 감정을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한 종합주의의 시작과도 같은 '고갱'. 그들(야곱과 고갱)이 펼쳐낸 간곡한 욕망과 단단하고 당찬 삶을 향한 변화의 태도를 내 몸에도 빼곡히 새겨 놓고 싶다는 바램이었다. 그것이 집도! 삶도! 리모델링하겠다는 내 의지의 서막이었다. 










"서울 아차산 자락, 

1979년식 오래되고 낡은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합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라는 일반적인 삶의 방식 대신 

각자가 행복한 대로 선택하고 남과 비교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집은 이래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이나 유행하는 인테리어의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취향과 저마다 지닌 예술적인 시각으로 하나의 설치 미술 작품 같을 수는 없을까?



내 삶을 지독히도 리셋하고 싶었던 시절, 나를 간절한 변화로 이끈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그리고 이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수십 년간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고, 계약을 하고, 리모델링을 완성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느리게도 빠르게도 스쳐가는 그 이중적인 세월 동안 여기서 나는, '싱글로서의 내 삶'을 단단히 지탱해 주고 나의 가치관과 미학을 담은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사적이고도 공적인 공간을 무모하게 아니, 용기 있게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사실 가끔만 용기였고 대부분은 무모였다는 자백 같은) 이 모든 과정들은 나를 더 잘 알아가는 심리적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보편적이지 않은 삶의 궤적을 그려온 방황 많던 스스로와 화해하는 과정이었으며, 더 나이 들기 전에 '나 다운 삶 : season 2'를 공고히 구축하는 리추얼한 의식도 되었다. 

 

  

그리고 첫 결심의 순간부터 리모델링 추이마다 내게 영감을 준 예술 작품들이 있었다. 가족보다 친구보다 때론 와인보다 나를 더 깊이 안아주며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던 고단함을 녹여주던 작품들이 건넨 위로들. 그 감미로운 위로들이 어느새 내 몸 곳곳 새겨져 조금은 더 담담한 눈빛으로, 조금은 덜 애쓰고도 평온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앞으로도 내내 기억하게 된 그 시절 뮤즈와도 같던 작품에 대한 서정과 서사를 함께 나누고 싶어졌다.  

  







내게 '하고 싶다'와 '했다' 사이를 여여히 반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작품


"설교 뒤의 환상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폴 고갱"

Vision after the Sermon (Jacob Wrestling with the Angel), Paul Gauguin 



Colour Palette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고 있는 성서의 한 장면(구약성경 창세기 32장 22~31절)을 브르타뉴(Bretagne) 지방의 여성들이 설교 후에 보는 종교적 환영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한 화면 속에 상상과 현실이 뒤섞여 표현되어 있는데, 화폭 앞 기도하는 여성들은 현실의 장면이고 오른쪽 상단의 결투 장면은 환영 속 장면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고갱은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데 충실했던 인상주의와 결별을 선언하며 진정한 그만의 상징적이고 영적이며 원시적인 예술세계를 시작하게 된다. 최근에 이 작품은 '고갱의 작품 중 가장 위대하고 신비스러운 작품', '20세기의 모든 문을 여는 열쇠'로 찬사 받고 있다. 

(고갱은 종교적인 주제를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해석해 낸 자신의 이 기념비적 작품을 브르타뉴 퐁타방 교회에 기증하고 싶어 했으나 교회 측에서 거부했다고 한다.)  



"자연에서 너무 많은 그림을 그리지 마십시오. 예술은 추상화입니다. 자연 앞에서 꿈을 꾸면서 그것을 추출하고, 결과보다 창조하는 행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세요." 

- 고갱이 1888년 8월 에밀 슈페네커(Emile Schuffenecker)에게 보낸 편지 중 -


1️⃣(위)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의 
파리 생 쉴피스(Eglise Saint-Sulpice) 성당 안 벽화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c.1861) 

2️⃣(좌)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c.1893) 
3️⃣(우)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의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1866)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이라는 주제는 미술사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그려져 왔다. 야곱과 씨름하는 상대는 꿈속 인물, 예언적 환상, 천사, 예수 또는 신으로 많은 논쟁이 있어왔는데 현대 신학에서는 야곱이 천사와 벌이는 투쟁이 사실상 모든 그리스도인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투쟁이라는 개념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밤새도록 벌인 끈질긴 사투 끝에 야곱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주어지고 영원한 신의 축복을 받게 된다.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이 에피소드는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들라크루아, 모리스 드니, 귀스타브 모로, 귀스타브 도레 등 19세기 낭만적 상징주의자들에게 야곱은 자연과의 싸움, 세상과의 대결을 통해 삶 자체의 비밀을 표현해 내야 하는 고뇌하는 영혼인 예술가 자신을 대표하게 된다. 그리고 고갱에게도 야곱과 천사의 결투 장면은 주류에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써 자신만의 예술적 세계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그의 야망과 예술적 창조성이 신성(神性)에 의해 인정받는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폴 고갱, 1890-1891
화가로서의 운명을 감내하는 고갱 자신을 황색의 그리스도가 따뜻하게 보호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고갱은 이 작품에서 몇 가지 기법적 장치를 통해 한 화면에 동시에 나타난 현실과 상상의 장면을 구분 짓는다. 


우선 중앙에 대각선으로 배치된 사과나무줄기가 이미지를 과감히 분할하며 여성들과 천사와 씨름하고 있는 야곱 사이에 엄격한 시각적 분리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기도하는 여성을 그린 현실의 장면에서는 입체감을 살려 그려내고, 야곱과 천사의 결투 장면은 매우 평면적이고 전경의 현실 장면과 비례가 맞지 않게 축소해 그림으로써 두 장면이 다른 세계임을 암시적으로 표현했다. 


화면 전체를 뒤덮은 붉은색과 함께 고갱이 사용한 색채 또한 두 대조적인 세계를 상징한다. 현실 세계의 여인들은 무채색 계통의 흰색과 검은색으로 표현된 반면 상상 속 결투 장면은 푸른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등 단순하고 강렬한 원색으로 표현하여 초현실적인 세계임을 드러내준다. 또한 전경과 원경 사이의 공간을 생략함으로써 두 영역 간의 구분을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고흐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갱은 이러한 작품의 구성에 대해 "그림 속 풍경과 결투 장면은 설교 후에 기도하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만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려진 사람들과 부자연스럽고 비율이 맞지 않는 결투 장면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가메이도 매화공원>, 히로시게 

고갱은 히로시게의 여러 목판화를 소유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매화나무 판화에서 붉은색과 함께 화면을 가로지르는 나무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고갱의 대담한 색상과 드라마틱한 화면 구성은 자연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사진 같은 표현이 예술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되었던 1880년대 대부분의 작품들과 큰 대조를 이룬다. 이는 야수파(Fauvisme)와 표현주의(Expressionismus)의 탄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도래할 초현실주의 운동의 기초가 되는 직관, 상상력, 꿈의 이미지에 독창적인 단초를 마련해 주었다. 


고갱은 이러한 자신의 새로운 양식을 '종합주의(Synthetism)'라 명명했다. 종합주의란 상상력에 기반한 상징주의적인 주제를 단순화한 형태와 클루아조니즘의 기법으로 그린 것으로, 주관과 객관을 종합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종합주의의 대표적인 기법인 클루아조니즘(Cloisonnisme, 칠보주의)은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와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선명하고 원색적인 색채와 원근과 입체가 부정된 평면화된 색면 그리고 검은 윤곽선이 특징이다.



<해변에 서 있는 브르타뉴의 소녀들>, 폴 고갱, 1889


작품 속 배경은 프랑스 브르타뉴(불어 'Bretagne', 영어로는 '브리타니 Brittany')의 퐁타방(Pont-Aven)이다. 고갱은 이곳에 머무르며 순수하고 단순한 원시성과 야생의 편린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고갱 예술세계의 근간이 될 중요한 키워드를 탄생시킨 브르타뉴는 과연 어떤 곳이었을까? 


프랑스 서북부 끝,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브르타뉴는 로마 시대에 켈트족이 처음 정착했던 곳으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향유했다. 19세기 이전까지도 미지의 땅이었던 브르타뉴의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를 유지하며 고유민속신앙과 보닛, 나막신 등의 전통 의상 그리고 고유한 풍습과 결합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소박하고도 초자연적인 삶을 살았다. 이런 신비로운 삶의 모습과 고인돌과 선돌 등 고대 거석문화 유적을 지닌 독특한 지역색은 당시 많은 화가들의 (특히 퐁타방파) 호기심을 끌며 새로운 영감을 주는 땅이 되었다. 



이 이질적인 영감의 땅에서 고갱은 설교 후 위대하고 단순한 신앙의 마음속에 떠오른 브르타뉴 농민들의 환영을 상상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야만인으로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 본연의 감성과 본능의 에너지를 찾으려 폴리네시아의 원시의 섬 타히티로 떠난다. 


 








1891년 원시의 순수성을 찾아 63일간의 긴 항해 끝에 도착한 남태평양의 타히티에는 서구 문명에 의해 무참히 오염된 유럽의 식민지가 있었을 뿐 고갱이 꿈꾸던 지상낙원의 순수는 사라지고 없었다. 타히티인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다녔고 여인들은 어색한 유럽식 드레스를 입고 채 그릇된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을 품고 있는 유럽 백인 남성들에게 자신의 성(性)을 팔았다. 물론 '타히티에 대한 애정과 순수'를 운운하던 고갱도 별다른 가책 없이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고 '자신에게 순수를 바친' 원주민 여성들을 기약 없이 떠나기를 반복했다.


고갱은 타히티에서 2년여 동안 제작한 그림을 가지고 화려한 금의환향을 꿈꾸며 파리로 돌아오지만 파리 미술시장의 싸늘한 반응에 좌절하고 만다. 그리고 1901년 마치 유배를 떠나듯 모든 것을 정리하고 타히티보다 더 오지인 마르키즈 군도의 히바오바(Hiva Oa) 섬 남단에 위치한 아투 오나(Atuona)에 '쾌락의 집(House of Pleasure)'을 짓고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다.


이 전설적인 초가집 아뜰리에에는 세 개의 방이 있었는데 각각의 방은 고갱에게 쾌락을 주는 세 가지 요소를 담고 있다. 1층에 위치한 식당은 '음주와 파티'를, 2층 침실과 작업실은 '여자'와 '그림'을 상징한다. 특히 방의 벽면들은 파리에서 가져온 수십 장의 포르노 사진들로 장식을 했는데 고갱은 밤마다 이를 보기 위해 몰려든 원주민들과 무분별한 파티를 즐겼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작업실 '쾌락의 집'에 살면서 고갱은 여전한 가난과 폭음 그리고 매독과 우울증으로 쾌락과는 거리가 먼 처절한 나날을 보내다 1903년 외롭게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 1897
타히티에서 남긴 고갱이 유작



방탕한 사적 삶 속, 끊임없는 도전으로 공적인 위대한 예술을 완성한 고갱

신성한 것과 속된 것을 동시에 추종한 고갱


내가 진정 갈구했던 건 건성으로만 읊조리던 안정적인 삶이 아닌 이 이중적인 예술가의 광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저지를 수 있는 무모, 기꺼이 결과를 감내하겠다는 용기 그리고 그것들에서 얻어지는 진정한 자유. 

'하고 싶다'와 '했다' 사이를 여여히 반복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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