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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by Johnstory

추석 명절을 앞두고 너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의 걱정과 미안함과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하루의 감사와 행복이 오늘의 나를 살게 하고 너희를 지킬 수 있게 해 준다.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는 입장이 되다 보면 듣는 입장에선 많은 부분 잔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오늘 지금의 시점에서 내게 후회되는 일들을 여럿 회고하다 보면 너희들이 그 안에서 타산지석의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말하는 나도,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너희들도 조금은 부담이 덜한 작업이 되겠지. 특히 아들인 너의 성정은 나를 많이 닮은 구석이 있어 많은 생각이 든다. 내가 지나온 삶이 앞으로 네가 가야 할 여정과 많이 닮아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말이다.



나고 지는 것이 모두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인데 많은 순간 난 고집과 집착으로 마음이 어지럽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런 시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는 나는 좀 특별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남들보다 나는 특정 영역에서 더 잘될 수밖에 없는 요인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운 시기 뒤에 찾아오는 좋은 운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난 내가 애쓰고 노력한 것 이상으로 좋은 결과들을 많이 경험했다.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를테면, 너희들처럼 건강하고 이쁜 자녀들과 사랑하는 아내,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집, 어디든 편히 갈 수 있는 자가용, 조금 쉬어가도 먹고살 걱정 없는 정도의 삶-은 많은 부분 '운'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넋 놓고 있는 삶을 산 것은 아니다. 분투의 경험과 잔상은 아프고 시릴 정도이다. 그럼에도 그 기억보다 나름의 성공과 성취의 경험이 오래가는 것을 보면, 의도적으로 좋은 것을 남기려 하는 나의 무의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가끔 난 생각보다 행동이 앞설 때가 있었다. 내 운의 흐름에 대한 과신이었을 수도 있다.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좌절하기도 여러 번, 그럼에도 난 늘 나의 직감대로의 선택을 믿었다. 기나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가끔 후회한다. 부모로서의 책임감과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의무를 나 자신의 삶보다 우위에 두었더라면, 좀 더 나은 아빠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럼 생각들 말이다.


그런데 난 이렇게 생각했다. 나 스스로의 삶에 대한 감사와 만족과 행복이 부재한 상황에서 남편과 아빠로서의 책임과 의무의 일반적 수행이 불가능할 거라고 말이다. 도망치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업무적인 부담과 스트레스와 압박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가장 좋은 핑계는, '나다운 삶의 회복'이었기에. 그런데 말이다, 나다운 삶을 산다는 것과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을 혼동한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구나. 내 능력의 부족함을 들키지 않기 위한 회피는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고. 나를 괴롭게 했던 건 그저 편안한 순간을 기다렸던 탓에 무책임한 선택이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일면,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도망치고 싶었다. 홀로 고요한 숲에 앉아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내가 가장 아끼는 만년필로 글을 쓰는 상상들을 해왔다. 말만 들어도 이건 가장으로서의 경제적 책무를 내려놓음과 가까운 것으로 들린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상황과 환경이 먹고살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엔, 아직 아빠는 스스로 내가 가진 경험과 노력과 부여받은 재능의 힘을 믿고 있다는 사실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이제 그런 힘이라는 것도 조금씩 빛을 잃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게 난 두렵고 무섭다. 그러다 희망과 염원 같은 밝은 것들을 놓아버리고 그저 현실에 물들어버리는 기계 같은 존재가 될까 봐 정말로 두렵다. 아직 나에게도 꿈이란 것이 있고 여전히 오늘보다 더 나을 내일을 소망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이 바로 오늘 여기에서부터 시작됨을 지난 인생을 통해 터득해 왔다. 지나고 보니 좀 더 대범했어도 됐을 건데 바짝 쫄아있던 시간들이 많았다. 생각이 많아서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도피의 선택은 빨랐다. 큰 고민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고 나를 지치게 할 수 있고 더 단단하게 할 수 있는 선택에 앞서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물론 어떤 경우엔 생각의 깊이로 터널을 무사히 지나올 수도 있었지만 그것이 안온한 것이었다고 말해주긴 어렵다. 경험과 기회와 모험의 순간을 잃었기에. 그럼에도 늘 다치는 것이 염려스러웠다. 몸과 마음 모두 편안한 곳에 있기를 희망했는데, 이제와 보니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몸이 편하면 마음이 불안해졌고, 마음이 편하려면 몸이 불편해져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많은 경우, 난 너의 몸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너를 지키고 살리고 또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는 길임을 알려주고 싶다. 난 나의 아버지와 아머니 또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내가 한 번도 뵌 적 없는 나의 근원이었을 조상의 뿌리 덕에 큰 걱정 없는 삶을 살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 또한 운이라 믿고 있고. 그래서 매일, 매 순간이 감사하다. 새벽에 일어나 쓰는 일기의 절반은 지금 내가 감사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얘기다. 몸이 불편했던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활들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황들을 경험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나의 의도와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나의 길을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몸이 편해지는 것의 부정적 효과는 그 상태에 머무르길 희망한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관성을 거스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상태에 머무를 확률이 크다. 그리고 몸이 편해지다 보면 한동안은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이런 일시적 상태를 휴식이라 부른다. 그리고 휴식은 되도록 짧고 굵게 하는 편이 낫다. 이 시기가 장기화되고 몸이 편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아빠는 작년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됐다. 후회를 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가끔 현실에 서있는 나 자신을 바라볼 때면 아쉬움이 커진다. 그런 시간들을 내 의지로 이겨보고자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4년 정도 된 것 같다. 그것도 처음에는 빠르게,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달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 호흡대로 나의 속도대로, 숨기거나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내어놓고 편하게 하지만 오래 달릴 수 있는 능력이 내겐 더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달리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고 만족스럽다.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더불어 감사한 마음이 충만하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내 삶은 내가 들여다보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전시된 인생이 아니다. 그러니 나 자신이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써야 했다. 화려한 것에, 반짝이는 것에 눈을 돌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나의 것을 소중히 여길 때 나의 삶은 빛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삶의 원칙과 기준과 세상의 법과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행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실패하고 상처받는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어떤 상황과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로 인해 위로받고 치유받는다. 인연의 힘으로 다시 일어서기도 하고, 사람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시간들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순환의 시점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없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처음인 생이다. 이번 판이 연습용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면서 가끔 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제껏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더 과감하게 내가 기대하고 바라는 일들을 위해 뛰어들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패턴은 습관이 된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너는 실행이 습관이 되는 삶이었으면 한다. 많은 생각 덕에 글을 쓰고 말을 남겼지만, 때론 많은 생각으로 쓰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으며 행동하지 못했다. 너의 인생을 그려보는 시간은 새벽 명상의 시간 정도면,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30분이면 충분하다. 그 사이의 시간을 너의 분주함으로 채워가길 바란다. 걷고 달리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선생님들로부터 배우고, 또 배운 것을 다시 너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며 너만의 우주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어느 하나 네 몸이 편한 순간이 없겠지만 그것이 너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임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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