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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의 발견

by Johnstory

기대하는 마음 없이 같은 하루를 살아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행운이다.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는 삶, 바라는 것이 없어도,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충분히 누리며 사는 삶, 내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그 이상을 원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삶, 의도적인 절제와 통제가 아닌 자유로운 마음들로 시간을 채워갈 수 있는 삶, 그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 삶, 이런 인생은 대체 무엇일까. 성직자나 가능할 것만 같은 이런 삶을 나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



선택과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 삶을 살겠다고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그리고 생존에 지장이 없는 최소한의 물질적 상태가 필요하다. 의식주에 소요되는 기본 비용 정도는 지불할 수 있어야 삶이 이어질 테니 말이다. 그다음 단계로 무언가를 채워가려 하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바람이다. 물론 바람과 동시에 스스로 노력하며 내일을 기대하는 인생이 진취적이며 발전적인 삶을 사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이상적인 형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라지 않는 삶의 목적은 기대하고 원하는 시간 대신 현재의 나에게 더 집중하고 스스로 그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사는 데에 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은 그렇다면 나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기대감 뒤엔 많은 경우 현재에 대한 불만족이 있다.

내가 정한 수준의 양이 있다고 가정하고 100%로 그것들이 채워져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상태로 유지되다 타인과의 비교가 시작되면 기존의 적정선의 수위는 높아지게 되고 그에 따른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진다. 더 많은 양의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바람이 커진다.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을 끄고 살 수 있다면,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평온에 가까워질 수 있는 삶이다. 지금, 오늘, 나의 생각, 건강, 반복되는 일상, 새롭게 시작하는 하루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성실히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이들은 이런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살거나 정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고 있다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기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기대 이상의 무언가를 얻기도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Contribution=Compensation, Garbage in Garbage out.


내가 매일 뿌리는 씨앗이 순수하게 감사하는 마음과 그에 맞는 행동들이라면 그에 합당한 결과를 얻게 된다. 물론 여기에도 운이 작용할 수 있다.

기대하지 않는 삶, 기대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 기대가 필요 없는 삶, 있는 그대로만 지속되어도 감사한 삶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마음에 있다. 살아 있음으로 모든 것을 다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머지들은 잉여가 된다. 잉여가 풍족해짐을 알아차리게 되면 감사하게 된다. 감사함 또한 넘치게 된다. 이미 넘치는 상태이기에 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채워질 만큼 채워졌다는 생각이 지속되다 불편한 마음이 들 때면 비움의 단계로 넘어간다. 비워내다 보니 필요한 것들만 남는다. 이 비움의 과정을 잘 수행하게 되면 내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정작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들은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있는 것들로 하루를 꾸려가는 생활에는 정성이 필요하다. 가끔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갈망하지 않는 마음, 갈망하는 마음 모두 습관이다. 부족함에 집중하게 되면 내 삶의 하자요인만 보게 된다. 내가 복 받은 존재라 생각하면 감사한 것들만 눈에 띈다. 어떤 삶이 바람직한 것인가.

나는 풍족해서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마음도 피어난다. 내가 가진 것들을 주위의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고 그것이 기쁨이 되며 나눔의 대상이 물질이라면 자원을 다시 쓰이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나의 재능과 경험 또한 마찬가지다. 이것을 나누려 하면,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내가 어떤 것들을 나눌 수 있을지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나의 예상과 생각보다 사소한 것부터 나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쩌면 글을 쓰고 있는 것 또한 나눔이라 볼 수도 있겠다. 경험을 나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누군가의 낭비되는 인생을 막아주기도 하고 길을 잃고 시간도 잃어가는 누군가를 돕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눔과 공유의 합이 늘어나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더 가지려 애쓰는 것보다 더 많이 나누려 하는 행동은 파급력이 크다. 기업가적 마인드의 최종 단계가 이런 상태가 아닐까. 비록 내가 기업가가 아니지만 이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대하는 마음이 없는 평온한 상태에서의 삶은 감사와 행복이며, 충분히 소유했다는 믿음 뒤엔 누군가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깃드는 것이다. 모두가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누구는 이런 인생이 발전이 없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난 시간 동안 내가 보내온 과정들은 늘 무언가를 갈구하고 기대하고 채워가기 위해 분투한 삶이었을지 모른다. 아니, 백 퍼센트 그런 삶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기 계발서 외에 다른 책은 읽지 않았고 성공을 위한 스토리에만 귀 기울였다. 그것이 무용했음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덕분이 이만큼 올 수 있었고 이만큼 살 수 있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나의 생각과 방향을 성장하는 쪽으로 잡아주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마흔 중반의 나는 이제, 채우고 바라고 원하는 습관을 나누려는 삶으로 전환하는 것의 의미를 찾고 있다. 인생의 모든 구절이 나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런 방향성만은 잃고 싶지가 않다. 되도록 빨리 이런 마음으로 젊은 시절을 살아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이었을까. 인생의 절반가량을 달려오며 많은 것들을 채우다 보니 무거워진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채우는 것도, 비우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염원하지 않는 것도 모두 나의 선택인데 나는 지금 어디로 가려하는가. 그것이 무엇이든 가벼운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마음 또한 나의 기대함이니,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말을 계속 되뇐다.




이 정도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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