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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순이를 꿈꾸는 그대에게
by 썰양 May 11. 2018

내가 만났던 최악의 동료들

혹시 내가 이런 동료는 아니었을까

#1

오전 9시 정각. 근무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옆자리 A씨의 가방은 책상 위에 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5분쯤 지나서 A씨는 '안녕하세요~'라고 조그만 소리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출근은 일찌감치 했는데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샤워하고 오느라 늦은 모양이다.

9시 반, A씨는 사무실 냉장고에서 요거트를 꺼내와서 시리얼과 견과류를 섞어 자리에서 오도독 오도독 소리를 내며 아침 식사를 한다. 10시, 양치를 하고 그릇을 씻는다. 10시 반, 화장을 시작한다. 11시가 다돼서야 옆자리에서 키보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출근시간이 오전 9시라는 건 아침식사와 화장을 미리 마치고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이 늦어도 9시라는 것이다. 오지랖 넓은 옆팀 팀장님이 A씨에게 몇 번 잔소리도 한 것 같고, 우리 팀 팀원들에게도 잔소리 좀 하라고 말하지만 소용이 없다. 아마도 그는 맡은 일만 적시에 처리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9시부터 자리에 앉아서 일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회사는 근무시간 동안 아침밥도 먹고 화장도 하라고 월급을 주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용무는 제발 근무시간을 피해서 처리하자.


#2

세종시에 있는 국세청에는 본인만 세종시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가족들은 서울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금요일은 유일하게 정시 퇴근해서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B씨도 6시에 정시 퇴근해서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과장님 지시로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떨어졌다. 옆 직원이 작업을 해서 B씨에게 넘겨주고 마무리가 되면 과장님에게 보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B씨라면 퇴근이 좀 늦어지더라도 옆에서 기다렸다가 일을 마무리해서 과장님에게 보고하고 혹시라도 수정사항이 있으면 반영해서 다같이 일을 끝내련만 B씨는 굳이 서울에 올라가서 카페에서 이메일로 파일을 받아서 작업을 하고 보내주겠단다. B씨 말처럼 작업을 해서 보내오면 최소 세시간은 걸릴 것 같았고, 보고받을 과장님을 포함해 팀원 모두 손놓고 마냥 기다려야했으며 결과물을 받아볼 상대회사가 퇴근하기 전에 결론이 나야하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B씨가  같이 마무리를 했다면 한시간 여만에 일을 끝내고 같이 퇴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팀장도 같이 마무리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양해를 구했으나 결국 B씨는 6시가 되자마자 고향 앞으로 출발해버렸다.


직장생활에 의리를 기대하는 것이 좀 우습긴 하지만 참 의리 없는 동료였다. 물론 노트북이 있고 전화기도 있으니 얼마든지 원격으로 본인의 몫을 할 수야 있겠지만, 중요한 일이 있어서 반드시 그 시간에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는데 굳이 그래야 했을까 싶었다. 내가 너무 구식인가? 다른 팀원들이 고생을 하든 말든 내 소중한 저녁시간을 칼같이 챙기는 것이 신식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구식을 선택하고 싶다.


#3

내 옆에서 근무하던 C씨는 덩치가 크고 더위를 많이 탔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땀을 흘리며 일을 했다. 인사이동할 때마다 잊지 않고 챙겨 다니는 탁상용 선풍기를 틀었는데 꼬릿꼬릿한 냄새가 솔솔 풍겼다. 냄새가 난다고 차마 말도 못 하고 C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선풍기 방향을 살짝 틀었다. 겨우 숨통이 트였다.

코트나 점퍼를 자주 세탁하지 않는 겨울철엔 남자들에게서 쿰쿰한 냄새가 종종 난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서랍에 향수를 두고 있다. 이상한 냄새가 날 때마다 향수를 내 주변에 뿌려서 내 코를 마비시키곤 한다.

냄새나는 게 잘못인가, 냄새를 잘 맡는게 잘못인가


#4

본청에는 부서마다 계약직 직원(=임기제 공무원)들이 종종 근무를 한다. 보통 2년 계약을 하고 재계약해서 최장 5년까지 근무하는데, 같이 일했던 계약직 직원이 퇴사하면서 PC에 있는 자료를 전부 지우고 간 적이 있다. 아마도 그는 자기가 만든 결과물이니 자기가 챙겨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나, 이는 형사소송감이다. 어찌저찌하여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자료는 복구를 했고 그 직원을 상대로 소송까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그 무책임함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세무서에서 근무하다 보면 2년에 한번씩 인사이동을 하면서 업무를 인수인계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내 업무를 바로 이어받아하더라도 전혀 지장이 없도록 서류도 인덱스를 붙여 잘 정리하고, 컴퓨터 파일도 지울 건 지우고 남길건 남기고 자리도 깨끗하게 치워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보다. 책임소재를 따져야 하는 미결 업무 인계만 신경 쓰는 사람도 있고, 컴퓨터 폴더 정리가 전혀 안돼서 대체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사람도 있고, 먼지 가득한 자리를 치우느라 한나절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5

소녀감성의 D씨는 팀장님이 지적을 할 때마다 "왜 나한테만 그러냐"며 울분을 터트리곤 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왜 나만 미워하냐고 훌쩍이기도 했다. 옆에서 보는 입장에선 팀장이 충분히 지적할만한 상황이었고, D씨를 나무란 것이 아니라 업무의 잘못된 점을 이야기한 것이었는데 D씨는 인격모독을 당한 것처럼 괴로워했다. 선생님에게 혼나고 속상해하는 사춘기 소녀 같아서 안타까웠다. 일 때문에 혼나는 것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프로 월급러의 기본이다.


#6

같은 모양의 동물을 모아 팡 터트리는 게임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조그맣게 팡! 팡! 소리가 났다. 본청은 대개 팀장 한 명에 직원 두어 명이 팀으로 근무를 하는데, 이리저리 둘러봐도 직원들은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고 팡팡 소리는 파티션 너머 팀장님 자리에서 나고 있었다. 아마도 그분은 소리를 작게 해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그 게임은 팡팡 소리가 나야 제맛이긴 하다. 그래도 근무시간에 티나게 게임하는 건 좀 그렇다. 그 팀장님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나도 게임에 소질이 있었으면 팀장님처럼 사무실에서 팡팡했을지도...


#7

정말 최악은 얼굴에서 열이 난다며 한겨울에도 다른 사람들이야 춥든 말든, 어둡든 말든 사무실 창문을 열어놓고 형광등은 꺼버리던 팀장이었다. 뚱뚱한 남직원에게 '손이 돼지같다'고 했고, 갓난아기 때문에 잠을 설쳐서 피곤하다는 직원에게는 '애를 갖다 버리라'라고 했다. 본인 혼자 야근하는데 아무도 저녁식사를 챙겨주지 않아서 열받았다며 단톡방에 '당장 사무실로 복귀하라'고 해서 다시 사무실로 뛰어갔던 적도 있다.

요새 대한항공 조 모씨의 갑질 때문에 직장 내에서의 갑질이 화제가 되었는데 우리에게도 익명 게시판이 있다면 다양한 갑질 미투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최악의 동료 또는 상사가 겨우 이정도였다니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었나 보다.


10년 동안 일하면서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세무서에 처음 발령받아서 7급이라고 중간자리쯤 앉아 눈만 꿈뻑꿈뻑하는 천둥벌거숭이였던 나를 옆에 앉혀두고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가르쳐주시던 반장님들이 계셨고, 경력은 나보다 훨씬 많은데 직급이 낮은 분들도 싫은 내색 없이 일을 가르쳐주셨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고만고만해서, 어느 직장 어느 조직이든 이상한 사람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소위 똘아이 보존 법칙. 그나마 국세청은 2년마다 인사이동을 하니 헤어짐이 예정되어 있어 괴로운 시간을 버티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휴직을 하고 보니 그동안 만났던 이상한 직원들조차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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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여성복 디자이너, 현직 국세공무원.  공순이를 꿈꾸는 그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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