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줄까?”
“응.”
“어떤 음악 좋아해?”
“없는데!”
“아니, 요즘 듣는 음악이 뭐냐고? 저번에 밥 먹으며 듣던 팝송?”
내가 실수했다. 잘 안 묻던 질문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복숭아만 주면 되는 건데, 괜히 음악 얘기를 해서.
"엄마 또 내 얘기 쓰려고 하지?"
그랬다. 나는 딸 얘기를 쓰려는데 뭘 써야 할지는 생각해 둔 상태에서 묻고 싶었던 게 있었던 거다.
“좀 쓰는 게 어때서! 나쁜 얘기 쓰는 것도 아니고,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엄마 생각으로 엄마가 쓰는 건데 뭐가 어때!”
나는 충분히 딸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사춘기라 예민한 딸 얘기를 하면 좋겠어! 다른 사람이 볼 텐데!”
“그럼, 갱년기 엄마는 안 예민하니?”
나는 반박할 말이 생각이 안 났다. 애꿎게 예민한 얘기를 해서….
“엄마가 갱년기야!”
딸은 내가 전혀 그래 보이지 않나 보다.
“갱년기지! 요즘 내 기분이 좋아 보여?”
“응, 엄마 기분 좋아 보이는데!”
“그래,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든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힘들어도 티가 잘 안 나 보인다는 딸의 말에 내 연기 실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딸의 얘기가 글을 쓰는데 절반이라고 해도 과장되지 않는데, 딸이 자기 얘기를 쓰지 말라니 글감이 마르기 일보직전이다. 그래도 딸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딸이 알아줘서 기분이 슬쩍 좋아졌다.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하는 딸내미 덕에 산다!’
그리고 사춘기 딸이 뭐라고 한다고 안 쓸 갱년기 내가 아니다. 갱년기가 사춘기를 이긴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3:1’이라서 매번 지나? 도와주지 않는 남편 덕에 ‘3:1’로 맞서게 된 건데, 엄마 마음으로 해야지 다른 도리가 없다. 사랑의 마음으로 일 보 후퇴다! 저번에도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딸 얘기를 쓰려다 컴퓨터에 저장만 해둔 얘기가 있다.
"오늘 얘기 쓰지 마!"
"그래 안 써!"
그렇다, 쓰지 말라고 한 당일 얘기만 안 쓰면 되는 거여서 보류해 놓았다. 그 얘기도 쓸 수 있게 딸이 한 마디 해주면 될 일이다. ㅎㅎㅎ
딸이 내 글을 읽고 “이 글은 괜찮고, 이 글은 당장 내려!”라고 하면 그렇게 하거나, 맛난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주거나 마라탕 한 번 사주면 풀릴 수도 있다. 나도 딸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비장의 무기” 하나쯤은 있다.
나의 글감은 순간 움찔했지만, 다시 이어진다.
사춘기를 이기는 갱년기의 힘은 협상이다! 갱년기도 진화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