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김치볶음밥을 하려고 김치와 햄을 넣어 볶아놓았는데, 밥이 안 되어있었다.
“아뿔싸!”
막내가 온종일 학교, 학원에 있다가 8시에 오는데 큰일이다. 부랴부랴 7시 50분에 밥을 지어야 했다. 전기밥솥이 해주지만 분명 6시 반에 잡곡으로 눌렀는데 밥이 안 되어 있다니! 생각보다 빨리 보온이 돼서 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설마’하며 지나친 게 그만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밥만 볶음김치에 넣어서 비비면 볶음밥이 완성되는 건데 밥솥 뚜껑을 여니 밥과 물이 분리되어 있었던 거다. 내가 버튼을 잘못 눌렀나 보다. 나는 부랴부랴 잡곡 버튼을 눌렀다. 51분을 기다려야 했다.
핸드폰에는 막내가 학원 수업이 끝나고 출발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어떡하지!”
식은 밥도 많지 않았다. 나는 막내가 오면 솔직하게 얘기하고 기다려달라고 얘기할 참이었다.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딸을 맞이하려고 했는데, 들어온 딸은 자초지종을 얘기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좋아 보였다.
"나 라면 먹을래!"
"식은 밥이 있어서 네 것은 금방 해줄 수 있어."
"아니야, 나 라면 먹는데도!"
나는 자책을 했다. 나 때문에 막내가 라면을 먹게 생겼다. 토요일 점심에만 라면 먹기로 약속을 해놓은 상태이긴 했지만, 사실 막내가 이러저러한 이유를 데서 더 먹는 편이다. 그런데 저녁에 라면을 먹겠다니. 아침도 시리얼 먹고 점심은 학교에서 먹지만 그래도 미안했다.
나는 달래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했다. 막내는 급기야 우기며 화를 냈다.
"나 밥 안 먹어!"
나는 가만있었다. 막내와 갈등을 빚고 싶진 않고 좀 기다리면 자기도 배가 고파서 밥을 차리면 못 이긴 척 먹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내가 라면 끓여 먹을 거야!”
나는 말릴 수가 없었다. 나의 실수가 막내에게는 기회였다. 아주 빠른 기회. 나는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라면 먹고 밥도 먹어!”
“배불러서 안 돼!”
“그러면 반반 먹자! 라면 끓이면 반은 언니 주고 반은 네가 먹으면 밥도 먹을 수 있잖아!”
“절대 안 돼! 내 라면을 누굴 줘! 오늘 무조건 라면 먹으려고 했다고!”
“헉, 엄마가 밥을 차려줘도 먹을 참이었네.”
“그렇지. 오늘 학원 마치고 돌아오면서 계획을 잡았지!”
그렇다. 막내는 우겨서 꼭 라면을 먹으려던 참이었고 나의 실수로 생각보다 쉽게 먹게 된 샘이다. 막내는 다른 것도 그렇지만 라면 먹는 거와 마라탕 먹는 거에는 물러섬이 없다.
딸은 엄마한테 늘 끓여달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공주가 되길 포기하고 직접 라면을 끓여 드셨다. 나는 은근슬쩍 김치볶음밥과 계란프라이를 상에 놓으면 막내에게 말했다.
"김치볶음밥 조금이라도 먹을래?"
"응, 알았어!"
나는 "너 밥 안 먹는다며!" 라며 따져 묻지 않고 밥을 놓아줬고, 딸이 맛있게 먹는 모습도 못 본 척하며 곁눈질하며 보았다. 그리고 요플레를 들고 막내 주변을 맴도니까 막내가 그것도 달라고 했다. 나는 블루베리를 넣은 요플레를 딸 상에 놓아주고 주방으로 갔다. 막내는 모두 다 맛있게 먹었다.
딸도 나도 원하는 저녁이 되어서 좋다! 가끔 저녁에 라면을 줘도 괜찮다. 딸 주변을 얼쩡거리며 내 계획을 티 나지 않게 보여주면 된다. 이렇게 막내가 밥도 먹고 간식도 먹게끔 됐으니.
엄마의 계획도 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