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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걸어갈 길

아직도 내 마음은 흔들리고 있는 걸까?

내년에는 일 생각 말고, 창작에만 집중할 마음이었는데, 아니 올해도 그랬지만 2월부터 8개월 동안 주민자치회 간사 일을 했다.


두 마음이 들키는 데는 행동이 어쩔 줄 몰라했다.

수입과 지출의 숫자 맞추는 회계업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갱신하려고 교육자료를 손에 들었다. 이런 일을 그만둔 지도 20년이 넘었지만 보고 있어도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선다. 그래도 다시 취업을 하게 된다면 과거에 했던 노하우가 자연스레 나올 것 같다. 그건 무시 못한다.


20대 후반, 회계 일을 할 때 어떤 달은 10만 원이 모자라 내 돈으로 채워 넣은 적도 있다.

다시는 안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앞으로 하게 될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 50+동행일자리 교육을 받았다. 강사가 정년퇴직 이후로는 명함이 종이에 불과하다고 했다. 과거에 내가 누구였고 무슨 일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취업을 하려면 마음을 많이 내려놓아야 한다고도 했다.


상상력은 20대보다 젊을지 모르지만 그 힘을 주워 담기엔 게으르고, 그걸 잠그는 꼭지는 코 앞에 있다. 바로 가까이 있는 자격증 공부와 이 전산회계 자격증처럼 갱신해야 하는 것들이다.

버려야 할까, 그래도 갱신하며 들고 있어야 할까?

고민하기도 잠시, 출력해서 손에 쥔 교육 자료를 넘긴다.

이해하려고 신경 쓰는 것이 내가 설거지와 밥을 차리기 위해 최면을 걸며 하는 일 같다.

'그래, 먹고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다.'

낯선 교육자료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생각하면, 머릿속에 좀 더 들어올 것 같다.

'이걸 해석하고 60점 과락의 시험을 치겠지. 나는 전산회계 1급이라는 자격을 지키는 거야.'

그리고 다시 동화책을 들어 재밌게 보면서 분석을 할 것 같다. 아니, 교육자료를 보다가 동화책을 볼 수도 있다.

내 맘대로다. 뭐든 찔끔씩 공부한 게 후회는 되지만 매일 아이들 키우고, 밥을 차리고, 빨래를 하고, 학교에 보내는 일련의 숙달된 행동은 결코 짧지가 않다.

엄마라는 자격이 내게 준 공부이자, 나를 강하게 만드는 선생님이다.


전산과를 나와서 처음 들어간 작장은 일반사무직, 두 번째 직장부터는 회계 일.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로 양육의 일이 부과 됐지만, 아이들 키우며 문예창작과 상담심리도 공부했다. 공부를 하면서 심리상담 계통이 맞았다. 이쪽으로 직업을 갖지 않은 게 좀 아쉽긴 했다. 나이에서 좀 자유로운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상담심리 쪽이 나에게 맞아서 일을 하면 자부심이 생기고 부담을 덜 느낄 것 같았다.

이렇게 매일 아이들과 티키타카 하며 나름 아이들의 대화 내용을 분석하고 있으니....

'그러면 됐다. 실생활에서 써먹고 있으면 됐지 뭐.'

뭐든 배워 놓으면 쓸 일이 생긴다.

그래도 이렇게 글 쓰는 시간이 제일 재밌고 집중되고 지루하지 않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직업은 이도저도 아니게 된 걸까?


20~30대에 못 느꼈던 중장년의 삶이 피부의 체온처럼 느껴진다. 어르신들이 해주셨던 말씀의 의미도 지나칠 수 없다. 이해하면서도 쓸쓸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인정하고 뚜벅뚜벅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아들이 수능 치고, 알바를 하며 적응해 가는 모습이 새롭고 대견한 것처럼.

"엄마, 나, 내년 10월에 입대할게요!"

그제 온 아들의 문자다.

아이들이 하나 둘 둥지에서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군대에 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던 아들이 영장이 나와서 기쁘게 내게 알려준 것처럼.

기존의 자리를 털고 새로운 자리, 마음은 비우고 좀 더 높이 날 수 있는 자리로 옮겨가야 한다.

길짐승에서 날짐승으로 탈바꿈되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해진 전환기.

아들이 어제 아르바이트하고 와서부터 몸살이 났다고 담담히 말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나와 저녁을 먹은 아들은 타이레놀 한 알 먹고 쉬면 된다고 한다.

속이 더 단단해진 걸 느낀다. 마음으로 나도 더 중장년을 이겨낼 힘을 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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