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수업 후 나의 꼰대력에 대해 고민하다.
무려 6시간이었다.
줌 화면 속 검은 사각형들을 바라보며, 나는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혼자 질문하고, 혼자 기다렸다가,
또 혼자 답했다. 마흔여덟 명의 학생들이 접속해 있다고 했지만, 그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이름만 떠 있는 검은 화면들.
그들이 정말 거기 있는지, 아니면 접속만 해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인성교육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타인을 존중하는 법’, ‘함께 사는 사회의 예의’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작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있긴 했다. 어딘가에.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하나 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물론 요즘 학생들이 카메라 켜기를 꺼린다는 걸 알고 있다.
집안이 보이는 게 싫고, 화장 안 한 얼굴이 부담스럽고, 그냥 익숙하지 않다는 걸.
또 온라인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카메라 끄기는 어느새 ‘당연한 권리’처럼 여겨지게 됐다는 것도.
하지만 6시간 동안 단 한 명도 카메라를 켜지 않다니...
내가 농담을 던져도 반응은 없었고 질문을 해도 침묵뿐이었다.
“이해되셨나요? “라고 물으면 한참 뒤에 채팅창에 “네”라는 글자 하나가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처음엔 교과 외 과정이라 그런가 했지만
들어보니 전공수업이 아니면 대부분 너무 익숙한 풍경이라고 한다.
나는 모니터 속 내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소통일까? 이게 수업일까?
편의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온라인은 편리하다. 집에서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고, 통학 시간도 아낄 수 있다.
카메라를 끄면 더 편하다. 신경 쓸 게 없으니까.
강사인 나도 보이기 위해 한껏 꾸며야 하는 부담이 적어 시간이 많이 절약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편의라는 달콤함 뒤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
나는 학생들의 표정을 볼 수 없다. 누가 이해하고 있는지, 누가 지루해하는지, 누가 공감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면 강의를 조정할 수도, 속도를 맞춰갈 수도 없다.
일방적으로 던지는 말들이 어디에 닿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
같은 수업을 듣는 동료가 어떤 표정으로 앉아 있는지, 누가 고개를 끄덕이는지, 누가 궁금해하는지.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완전히 혼자였다.
인성은 관계 속에서 자란다
인성교육의 핵심은 결국 ‘관계’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나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혼자 있을 때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와 마주할 때, 불편함을 느낄 때, 또 배려가 필요한 순간에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 ‘마주침’을 피하고 있다.
카메라를 끄는 건 단순히 내 얼굴을 숨기는 게 아니다.
어쩌면 나의 존재를 지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저는 여기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물론 그럴 권리가 있다.
하지만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6시간 동안 혼자 말하고 있는 강사에게,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 동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나서 세 명의 학생이 메시지를 보냈다.
“교수님, 오늘 수업 정말 좋았어요. 특히 중간에 하신 이야기가 공감됐어요.”
"죄송해요, 전 카메라를 켤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열심히 들으며 미션 작성했어요."
"온라인이 아니라 대면이었으면 더 좋았을 거 같아요. 재밌었어요."
순간 뭉클했다.
'아, 맞아. 누군가는 듣고 있었구나. 검은 화면 너머 누군가는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구나.'
하지만 동시에 드는 아쉬움은 이 학생의 고개 끄덕임을 볼 수 있었다면,
그 공감하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면,
아마 나는 더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랄까.
혹시 내가 틀린 걸까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도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혹시 나는 지금 꼰대처럼 구는 걸까?
온라인 수업을 받아들였듯, 카메라 끄기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는 새로운 문화일까?
“우리 때는 말이야” 하며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건 아닐까?
학생들에게도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을 수도, 외모 콤플렉스가 있을 수도,
단순히 익숙하지 않아서일 수도.
그들의 편의와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답을 모르겠다.
그래도 묻고 싶은 것
하지만 확실한 건, 6시간 동안 검은 화면을 보며 느낀 그 허무함이다.
‘타인 존중’, ‘함께 사는 법’을 이야기하는 인성교육이었음에도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기로 했다.
인성은 교과서가 아니라
타인과 마주하는 불편함 속에서, 내 편의를 조금 내려놓는 순간에,
“여기 있습니다”라고 존재를 드러내는 것, 그게 인성일 텐데...
카메라를 켜는 게 의무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배려일 수는 있지 않을까.
보이는 것과 보여주는 것, 이 둘 다 있어야 비로소 함께이지 않을까.
편의는 우리를 편하게 만들지만, 연결은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시대에 뒤처진 걸까? 아니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걸까?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그저 질문으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