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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극복하기

심리상담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번아웃은 그냥 피곤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삶과 나 사이의 접점이 어긋난다는 깊고 조용한 붕괴의 감각이다. 피로는 쉬면 회복되지만 번아웃은 쉰다고 낫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에너지 고갈이 아니라 동기의 붕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움직이는가? 왜 일하고, 관계를 맺고, 무언가를 성취하려 하는가? 번아웃은 이 질문들에 대해 더는 대답할 수 없는 상태다. 무엇을 위해 하는지를 잊어버린 채 해야 하니까, 멈출 수 없으니까, 남들이 그러하니까. 그렇게 점점 침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따라서 번아웃은 일종의 ‘심리적 무중력 상태’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있고, 외부에서 요구되는 역할도 여전하지만 그 일을 가능하게 했던 내면의 추진력이 사라진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게을러서 그런가”, “내가 유난을 떠는 건가”,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게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 하지만 번아웃은 게으름이 아니라 너무 열심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애써도 애써도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함을 향해 쉬지 않고 자신을 밀어붙인 결과다. 번아웃은 나약함이 아니라 지나친 노력의 결과다.


번아웃이 무서운 이유는 자기 인식의 왜곡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즐거웠던 일도 더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가 좋아했던 것이 나를 피로하게 만들고, 내가 잘하던 것이 더는 나를 증명해 주지 않는다. 그러자 자존감도 함께 흔들린다. "나는 뭔가 잘못됐어"라는 느낌, "예전의 나는 어디 갔을까" 하는 상실감이 시작된다. 번아웃은 단순히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없는 상태다. 자기 효능감이 무너지고 동시에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까지 손상되기 시작한다. 나는 더는 쓸모없는 사람, 무가치한 사람, 기능만 남은 껍데기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스스로를 자학하게 된다. “나는 왜 이 정도도 못하나.” “내가 나약해서 그런 거다.” “내가 멈추면 모두에게 피해가 간다.” 번아웃을 겪는 사람은 자기 연민이 부족하고, 자기 비판에 능하다. 우울해도 우울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화가 나도 화가 났다고 표현하지 못한다. 감정은 차단되고, 표정은 사라지며, 내면에는 깊은 무감각이 자리 잡는다. 그것이 곧 번아웃의 본질이다. 살아는 있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이 없고, 움직이고는 있지만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는 상태. 내 안에 있는 모든 감각이 고장 난 듯 느껴지는 상태.


번아웃은 관계 속에서도 나타난다. 감정적으로 지친 사람은 타인에게 공감할 여유를 잃고, 친밀감을 부담스러워하며, 때로는 공격적으로 변한다. 연인이나 가족에게 예민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연락을 피하게 된다. 그러나 그 고립조차 편안하지 않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고, 함께 있고 싶지만 피로하다. 이런 모순적인 상태는 정서적 탈진을 더욱 심화시킨다. 번아웃은 결국 ‘나와 타인, 나와 세계 사이의 연결이 끊어지는 상태’이며, 이는 단지 일에서 오는 피로를 넘어, 존재의 피로로 확장된다. 세상이 멀게 느껴지고, 사람들과 단절되며, 내 감정조차 낯설게 느껴진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번아웃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바쁜 걸 정상이라 여기고, 지쳐도 참아야 한다고 배우며 살아왔다. 번아웃은 종종 성취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누구보다 잘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사람, 항상 열정적인 척하는 사람일수록 번아웃에 깊게 빠져 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쉬는 법을 잊어버렸고,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감정 점검조차 사치로 여긴다. 이런 문화는 번아웃을 ‘잠깐의 피로’로 둔갑시키고, 그 안에 담긴 ‘존재의 경고음’을 무시하게 만든다.


회복은 결코 단순한 휴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번아웃의 심리는 단순한 과로가 아니라, ‘의미의 단절’과 ‘자기 대상의 상실’이라는 깊은 내적 고통을 담고 있다. 진짜 회복은 나를 다시 인간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의 회복, 타인과 연결되었을 때 느껴지는 정서적 안정감, 무엇보다 내 삶의 방향성을 다시 물을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무작정 멈춘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그 멈춤 안에서 무엇을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나는 지금 어떤 감정 안에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이 고장 난 채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나를 회복해야 하는가.


번아웃은 우리가 인간임을 다시 물어보게 만든다. 기계처럼 반복적으로 생산하고, 감정을 억제하며,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하는 구조 속에서 인간은 결국 소진될 수밖에 없다. 번아웃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번아웃이 왜 왔는지를 묻고 그것이 말해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는 좀 쉬어야 한다.”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이 목소리는 비난이 아닌 신호다. 우리는 그 신호를 ‘게으름’으로 오해하지 않고, 자기 존재에 대한 정직한 응답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번아웃의 심리는 결국 ‘살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것은 무너짐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려는 존재의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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