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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유형보다 ‘상처 유형’이 진짜 당신을 말해준다

심리상담 이야기

by 이상혁 심리상담가

요즘은 누구나 MBTI를 논한다. “난 INFJ야.” “ENFP라서 그래.” “INTJ들은 원래 감정 표현 잘 안 해.” 말끝마다 네 개의 문자가 붙는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MBTI는 문화, 아니,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해독하기 위한 ‘코드’가 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정작 그 코드 속에 숨겨진 진짜 당신은 MBTI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무언가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당신을 말해주는가? 바로 당신이 받은 ‘상처의 모양’이다.


생각해보자. MBTI는 “어떻게 행동하느냐”를 설명해주지만,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되었느냐”는 말해주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T(사고형)’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어릴 때 감정을 표현했다가 무시당한 기억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들을 웃기고 분위기를 띄우며 ‘E(외향형)’라 불린다. 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움과 인정 욕구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MBTI 성격유형은 당신의 겉모습을 보여주고, 상처 유형은 당신의 적나라한 내면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버려질까 봐 두려워하는 유형”이다. 이들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확인을 구한다. “내가 뭐 잘못했어?” “나한테 기분 나쁜 일 있어?” 어떤 사람은 “통제하려는 유형”이다. 늘 모든 걸 완벽히 하려 하고, 계획이 틀어지면 불안해한다. 그건 통제를 잃는 순간,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오래된 공포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은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유형”이다. 타인에게 인정 받아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성취하고, 더 노력하고, 끝없이 자신을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믿음이 숨어 있다.


이러한 상처의 흔적은 흔히 '성격’으로 간주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성격은 상처가 오랜 세월 굳어진 결과물일 때가 많으므로. 누군가가 지나치게 배려한다면, 그는 진심으로 친절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갈등이 생기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을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누군가가 늘 냉정하고 거리를 둔다면, 그는 무심한 사람이 아니라 “가까워지면 다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은 사람일 수 있다. 즉,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기 전에, ‘나는 왜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를 물어야 한다. 그 질문이야말로 진짜 자기 이해의 시작이다.


MBTI 성격유형은 우리의 ‘패턴’을 설명하지만, 상처 유형은 우리의 ‘서사’를 드러낸다. MBTI는 당신을 네 글자로 단순화하지만, 상처 유형은 그 네 글자에 스며든 문장을 꺼낸다. “나는 INFJ라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해”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고독 속에는 “다시는 실망하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ESTP라서 즉흥적이야”라고 말하지만, 그 즉흥성은 “불확실한 미래를 미리 걱정하느니 지금이라도 즐기자”는 생존 전략일 수도 있다.


상처 유형을 알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이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불안의 표현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군가의 무관심이 사실은 자기 보호일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도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나는 왜 이럴까”라고 자책하던 마음이 “아, 나도 그렇게 살아남으려 했구나”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자기연민은 시작된다.


상처를 되새기는 건 과거를 탓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나를 더 잘 돌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모두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웠다. 성장하는 동안 그 전략이 굳어져 성격이 되었다. 하지만 그 전략이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이제 새로운 방식을 배워야 한다. 불안 대신 신뢰를, 통제 대신 유연함을, 완벽함 대신 인간적인 허용을.


MBTI가 우리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상처는 묻는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니?” 전자는 정의하고, 후자는 이해한다. 전자는 분류하고, 후자는 품는다. 그리고 상담실에서 내가 가장 자주 목격하는 변화는 바로 그것이다. 자기 이해에서 자기 수용으로, 분석에서 따뜻한 인식으로. 사람은 결국, 이해받을 때 변화한다.


그러니 때로는 우리의 상처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MBTI는 성격의 겉을 보여주지만, 상처 유형은 맨살을 드러낸다. 그리고 진짜 변화는 언제나 그 맨살에서 시작된다.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보다, 어떤 아픔을 견뎌내며 여기까지 왔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당신이 당신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법이다. 그러니 묻자.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아니,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


당신은 어떤 상처를 안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아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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