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중인 지인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 있다. “남자친구가 너무 수동적이에요.” 무슨 일인가 물어보면 대개 이렇게 답한다. 데이트 약속을 할 때도, 연락을 주고받을 때도, 싸움이 나도 먼저 풀지 않는다. 겉으로는 착하고 온화해 보이지만, 정작 관계는 답답하다. 나 혼자 애쓰는 느낌, 나만 이 관계를 유지하려는 기분.
처음엔 그냥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수동성’ 뒤에는 훨씬 복잡한 심리가 숨어 있다. 어떤 사람은 거절당하거나 비난받는 걸 두려워해서, 아예 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한다. 또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타인의 눈치를 봐왔기에 자기 욕구를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싫어요’나 ‘그건 좀 다른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입 밖에 낼 때 느끼는 불안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언가를 말하기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한다. 그게 덜 위험하니까.
흥미로운 건, 수동적인 사람들이 오히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관계 속에서 수동성은 권력이 된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공백을 채우려는 사람이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므로. 상대가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으니 내가 모든 걸 정해야 한다. 노력이 들고, 선택을 해야 하고, 불안감까지 모두 내 몫이 된다. 이처럼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렇게 한쪽은 점점 동적이 되고, 다른 한쪽은 점점 더 정적으로 변해간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들은 관계의 흐름을 자기 속도에 맞춰 조정한다. 즉, 수동성은 아주 정교한 통제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관계에서의 수동성은 두 가지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정신분석이다.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수동적인 사람들의 특성은 ‘수동-공격적(passive-aggressive)’ 형태의 저항이다. 즉, 직접적으로 화를 표현하지 못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를 통제하는 것이다. 이런 패턴의 근원에는 억압된 분노가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감정을 존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저항을 표현하는 대신 ‘순응’을 택한다. 하지만 순응하며 속으로 억눌렀던 공격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무의식의 바닥에서 남아서 먼훗날 ‘수동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듯하지만, 실제로는 관계를 자기 속도로 조정하고, 감정적 부담을 상대에게 전가함으로써 일종의 주도권을 쥔다. 이것이 바로 ‘수동성의 힘’이며, 관계 안에서 가장 교묘하게 작동하는 방어기제 중 하나다.
두 번째는 애착 이론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종종 ‘회피형 애착’을 보인다. 즉, 가까워지고 싶지만 동시에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감정적으로 밀착되는 순간 불안을 느끼기에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표현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스스로를 ‘무해한 사람’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 무해함 뒤에는 깊은 자기 보호 본능이 있다. 그들은 사랑을 원하면서도 사랑이 두렵다. 사랑이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과의 연애에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감정의 속도를 맞추는 일이다. 수동적인 사람을 억지로 끌어당기려 하면 그들은 더 멀어진다. 그들의 침묵을 깨려 하기보다, 그 침묵이 어디서 오는지 살펴보는 게 먼저다. 그건 게으름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불안의 언어일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불안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짊어지는 과한 책임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관계는 언제나 둘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로는 내 쪽의 능동성을 돌아볼 필요도 있다. 왜 나는 이런 사람에게 끌렸을까? 왜 나는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 할까? 능동적인 사람일수록, 자신의 돌봄 욕구나 통제 욕구를 상대의 무기력 속에서 실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관계. 그 속에는 ‘구원자 콤플렉스’나 ‘불안형 애착’이 숨어 있다. 결국 둘 다 같은 춤을 추는 것이다. 한 사람은 도망가고, 한 사람은 쫓아가며.
수동적인 사람과의 연애는 그 사람을 바꾸는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수동성을 견디는 나’를 이해하는 여정에 가깝다. 상대의 느림을 참지 못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내 안의 초조함을 바라볼 수 있다면 비로소 관계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그 변화가 함께하는 여정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헤어짐을 택하는 용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언제나 균형의 문제다. 너무 당기면 끊어지고, 너무 놓으면 멀어진다. 수동적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건 인내가 아니라 통찰이다. 상대의 침묵 속에서 두려움을 보고, 내 조급함 속에서 외로움을 본다면, 그제야 사랑은 조금 더 현실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비로소 진짜 친밀함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