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8개월 - 태국의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푸켓에서 초중고 생활
푸켓은 신혼여행지로 잘 알려져있는 꽤 유명한 관광지이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 차로는 12시간 정도 떨어져있는 섬이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서 내가 어렸을때 살던 당시에 비하면 정말 이루말할 수 없는 발전을 이뤘지만, 정말이지 30년전에는 허허벌판이었고, 한국의 80년대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관광지로 유명할만큼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을 품고 있는 정말 멋진 섬이고 우리에게는 진정한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우리 가족이 처음 푸켓에 왔을때에는 한국인이 50명도 안될 정도로 낯선 외국땅이었고, 엄마는 당시에 할 줄 아는 태국어라고는 '카오팟꿍(새우볶음밥)' 한 단어만 알아서 하루에 두끼를 카오팟꿍을 드셨다고 한다.
아마 그 당시에 이민을 간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겠지만, 인터넷 같은 건 아직 없고, 한국방송도 안되고, 국제전화는 또 엄청 비쌌기 때문에 편지로 한국과 소식을 주고 받았던 시절이었고, 특히 93년도의 푸켓은 더더욱 열악하고, 덥기는 또 엄청 덥고, 언어도 마음대로 통하지 않는 곳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그때부터 거의 30년 가까이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앞에 제목에서 소개한것처럼 나는 8개월때 처음 푸켓에 가게 되었다고 하는데, '왜 그곳을 가게되었는가?' 부터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그때 기억은 당연히 없기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전달 받은 '이유'는 바로 아빠의 직업적 이유였다. 아빠는 푸켓에서 가이드일을 하기 위해 태국으로 가셨는데, 왜 하필 다들 많이 가던 영어권 국가도 아닌, 태국 - 푸켓으로 이주 결정을 하셨는지 얘기하려면 또 계속해서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 내 얘기가 아니라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를 해야하기 때문에, 간단히만 이야기하자면 대만에서 유학하신 부모님은 거기서 만나 결혼을 하셨고, 아빠는 당시 유학생으로서 용돈 벌이를 위해 대만에서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하셨다고 한다 (우리 아빠, 대만 알바몬 시절, 만두집에서 만두도 잘 빚어서 만두집 사장님이 만두가게 물려주신다고 했다는...).
근데 대만과 우리나라간의 교류가 끊어지고, 어쩔수없이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지만, 마침 대만에서 알았던 선배가 어느날 연락이 와서는 푸켓으로 와서 다시 가이드일을 해보자고 하는 권유에 (여러가지 사정)을 바탕으로 푸켓으로 오시게 되었고, 내가 그 때 생후 8개월이되었던 것이다.
당시에 나는 이미 걸을 수 있는 유난스러운 애기가 되어서 엄마가 내 손목에 개끈같은 끈을 묶은 상태로 푸켓 공항에서 걸어서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돌을 맞은 나는 어렵게 친할머니할아버지께서 가져오신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 앞에는 두리안, 람부탄(태국어 : 응어), 파인애플 - 열대과일과 태국 바트+ 원화를 나열해놓은, 남들과는 좀 다른 돌 상 앞에서 첫돌을 맞았다. 그리고 이 사진은 나의 정체성의 상징과도 같은 사진이 되었다, 왜냐면 한복을 통해 보여주는 한국사람인 정체성과 동시에 전혀 동떨어진 태국이라는 환경속에 놓여있는것이 나의 그곳에서의 삶이었으니까.
(사진속에 이 집은 우리가 푸켓에서 살게 된 첫번째 집이었다 - 엄마는 이집에서 겪었던 쥐와의 전쟁만 생각하면 여전히 너무 끔찍하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돌상 앞에서 나]
[할머니가 우리의 첫번째 집 앞에서 나를 안고 계시는 사진]
그리고 지금부터 브런치를 통해 지금은 너무나도 한국인 패치가 완벽하게 되어 내가 언제 이렇게 태국에서 살았나 싶게 K-직장인으로 충실히 살고 있는 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천천히 나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가족의 태국에서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조금씩 기록 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