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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속 카타르의 생존법.

by 김창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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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마드 국왕 시기 (1995~2013): 외교 독립 선언과 ‘판 흔들기’

1995년, 당시 왕세자였던 하마드 빈 칼리파 알사니는 무혈 쿠데타로 자신의 아버지를 축출하고 국왕 자리에 오른다.
이 사건은 단순한 권력교체가 아니라, 카타르 외교의 본질적 전환점이 된다.

하마드는 사우디 중심의 걸프질서에서 이탈하고,
카타르를 독립적인 외교 행위자로 만들려는 야심을 품는다.

먼저, 그는 미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한다.
1996년, 미국에 알우데이드 미군 공군기지를 제공함으로써
카타르는 미국의 중동 주둔 전략에 있어 핵심 거점으로 떠오른다.
이는 단지 안보 보장의 차원을 넘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력을 우회적으로 차단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하마드는 동시에 이란과의 관계 개선에도 나선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전 중 하나인 노스 필드를
이란의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과 공유하고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하마드는
수니파 국가 중 드물게 이란과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형성한다.
이때부터 종파보다 실리가 우선이라는 실용주의 외교의 핵심 원칙이 자리잡는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복잡한 줄타기다.
카타르는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하지 않았지만,
가자지구 재건과 하마스 지원을 통해 간접적인 접점을 유지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고,
이스라엘과도 대화 가능한 중재자 포지션을 구축하는 기반이 된다.

하마드는 또한 1996년 ‘알자지라 방송’을 창설한다.
이는 중동에서 유례없는 언론 독립성을 표방하며
사우디 왕정을 비판하고, 지역 내 자유 담론을 활성화시킨다.
사우디와 UAE 등은 이를 내심 적대시했지만,
하마드는 이를 통해 카타르의 국제적 이미지와 소프트파워를 급속히 강화한다.

요컨대 하마드 국왕은
“미국과 밀착하면서도, 사우디를 벗어나고,
이란과는 경제 협력하고, 이스라엘은 직접 자극하지 않되 활용하는”
매우 복합적이고 진보적인 외교 전략을 통해
카타르 외교의 독립성과 존재감을 극적으로 끌어올린 인물이었다.

2️⃣ 타밈 국왕 시기 (2013~현재): 판을 다듬고, 생존 전략을 정교화한 줄타기의 달인

2013년, 하마드는 자발적으로 퇴위하고
아들인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가 국왕 자리를 이어받는다.
타밈은 아버지의 전략을 그대로 계승하되,
보다 신중하고 정교하게 다듬는 방향으로 외교 노선을 운영한다.

미국과의 관계는 계속해서 강화된다.
트럼프 대통령 시기인 2017년, 카타르는 200억 달러 규모의 무기 계약을 체결하며
미국과의 군사·경제 동맹을 확고히 한다.
알우데이드 기지도 지속적으로 제공하며,
미국의 중동 전략에 있어 신뢰 가능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타밈의 진짜 시험대는 2017년 걸프 단교 사태였다.
사우디, UAE, 바레인, 이집트가
**“카타르가 이란과 가깝고, 무슬림 형제단을 지원하며, 알자지라가 우리를 비난한다”**는 이유로
카타르와 단교하고 경제 봉쇄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 타밈은 전광석화 같은 생존 전략을 구사한다.
이란과 터키의 지원을 받아 식량, 항공, 금융망을 유지하고
자국 경제의 자립도를 높이는 동시에
이란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며 봉쇄를 역이용한다.
결국 2021년부터 걸프국들과 다시 관계를 회복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카타르는 자주성과 독자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타밈 역시 이란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에너지 협력은 물론, 중동 분쟁(가자지구, 시리아, 예멘 등)에서
중재자·완충지대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자국의 중재자 브랜드를 확립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도 하마드 시기와 유사하게 유지된다.
여전히 수교는 하지 않지만,
팔레스타인 하마스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가자지구의 인도적 지원과 재건에 참여하고 있다.
이스라엘 역시 카타르가 하마스를 통제하거나 조율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상 국가’로 인식하고 있어,
타밈은 이스라엘과의 간접적 외교 루트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 결론:

하마드가 만든 ‘판’을 타밈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으며,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동 외교의 신흥 강자로 거듭났다.

하마드는 사우디에 도전했고, 타밈은 사우디와 화해하면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하마드는 미국의 보호를 활용했고, 타밈은 미국과 거래하면서도
이란과의 완충지대 역할을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시켰다.
둘 모두 이스라엘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을 통해 외교적 입지를 확보했다.

이처럼 카타르의 실용주의 외교는
단순한 중립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마드의 혁신,
그리고 타밈의 정교한 유지와 확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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