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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익은 집중되고 비용은 흩어지는가

by 김창익

부정부패 못 참겠다: 동남아 Z세대의 분노와 결집

1) 기사 내용 정리

네팔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의 불길은 동티모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방글라데시로 번져갔다. 거리로 나온 세대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다. 대학생과 청년층이 중심이 되어, 소셜미디어로 모이고, 영상으로 서로의 분노를 확인하며, 부정부패와 특권 구조에 저항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네팔에서는 정부의 소셜미디어 차단 시도가 오히려 기폭제가 되었고, 동티모르에서는 국회의원의 평생 연금 지급 결정이 대학생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위층의 비리와 연료 보조금의 불공정 배분이, 필리핀에서는 대규모 개발사업 예산 편성과정의 불투명성이, 방글라데시에서는 공무원 채용 부패와 청년 실업이 시위의 불씨가 되었다.

시위는 때로는 대규모 연행과 사망자를 남길 정도로 격렬했으나, 그 결과 일부 정책은 철회되거나 수정 논의에 들어갔다. 표면적으로는 각국의 사건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조였다. 집중된 권력이 특권을 만들고, 그 비용은 흩어져 국민 다수가 부담한다. Z세대의 구호는 명확했다. “세금은 공공을 위해 쓰여야 한다. 특권은 멈춰야 한다.”


2) 왜 ‘이익은 집중’되고 ‘비용은 확산’되는가 — 이론으로 보는 구조

정치경제학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해명해왔다. **맨커 올슨(Mancur Olson)**은 《집합행동의 논리(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에서 “소수 집단은 집중된 이익 때문에 조직화에 성공하지만, 다수는 분산된 비용 때문에 무력하다”라고 설명했다. 각 개인이 치르는 세금 인상이나 물가 상승은 미미하지만, 소수가 챙기는 특혜는 막대하다. 그래서 정책은 조용히 소수를 향해 기운다.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는 《규제의 이론(The Theory of Economic Regulation)》에서 ‘규제 포획’ 개념을 제시했다. 규제 기관은 원래 공익을 위해 존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피감기관인 업계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게 된다. 전문성 의존, 인사 회전문, 정치 자금의 유혹이 규제를 사익 추구의 도구로 바꿔놓는다.

**고든 털럭(Gordon Tullock)**과 **앤 크루거(Anne Krueger)**는 ‘렌트 시킹(Rent-Seeking)’ 이론을 발전시켰다. 《The Welfare Costs of Tariffs, Monopolies, and Theft》와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Rent-Seeking Society》 같은 저술에서, 이들은 경쟁과 혁신으로 이윤을 얻는 대신, 특혜와 규제를 통해 초과 이익을 확보하는 행위가 경제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소수는 제도적 렌트를 집중적으로 얻고, 그 비용은 보조금·관세·세금의 형태로 국민에게 흩어진다.


**댄 뷰캐넌(James Buchanan)**과 고든 털럭이 공저한 《The Calculus of Consent》에서는 제도적 책임성이 약할수록 정치적 결정은 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설명했다. 책임 비용이 낮으면 권력자는 사익을 추구할 유인을 더 크게 느끼고, 그 대가는 분산된 비용으로 국민이 떠안는다.

이처럼 정치경제학의 다양한 흐름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권력이 집중될수록 이익은 특정 소수에게 모이고 비용은 국민 다수에게 흩어진다는 점이다.


3) 디지털이 만든 ‘흩어진 비용의 재결집’

하지만 최근의 장면은 이 균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슨이 지적한 집합행동의 어려움은 기술의 발전으로 완화되고 있다.

첫째, 조정비용의 급락이다. 과거에는 정당이나 노조 같은 중간 조직 없이는 시민의 집합 행동이 어려웠다. 그러나 오늘날 메신저, 해시태그, 밈과 짧은 영상은 시민들을 저비용으로 모이게 한다. 이는 분산된 개인의 불만을 집단적 분노로 바꾸는 장치가 된다.

둘째, 가시성의 폭발이다. 부패 정황, 예산 낭비, 특권 제도의 사례는 스마트폰 영상과 캡처로 즉시 확산된다. 과거에는 보고서와 신문 기사로만 확인되던 부패가, 이제는 몇 초짜리 영상으로 생생하게 공유된다. 사건은 곧 상징이 되고, 상징은 분산된 분노를 하나의 표적으로 묶는다.

셋째, 신뢰의 재구성이다.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공유자원의 거버넌스(Governing the Commons)》에서 중앙집중적 권력 없이도 협동 규칙을 통해 집합행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디지털 커뮤니티와 크라우드 펀딩, 데이터 공개 플랫폼은 시민이 스스로 신뢰를 구축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넷째, 문턱 낮은 리더십이다. 전통적 정치 엘리트가 아니더라도, 현장 스트리머, 데이터 분석가, 법률 자원봉사자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는 조직의 느슨함을 보완하며 빠른 결집을 가능하게 한다.

다섯째, 역동적 균형이다. 권력도 디지털을 배운다. 인터넷 차단과 여론 조작, 온라인 검열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대응은 오히려 시민의 불신을 강화하고, 오프라인의 침묵층을 온라인 급진화로 몰아넣는 역설적 효과를 낳는다.


4) 정치 지형의 변화

정치적으로는 단기적으로 상징 전쟁이 격화된다. “평생 연금 폐지”, “부패 프로젝트 중단”, “채용 공정화” 같은 명확한 구호가 의제의 최전선으로 등장한다. 정당은 청년 예산, 고용, 주거 문제를 앞세우며, 공약은 영상과 카드뉴스로 간결하게 전달된다.

중기적으로는 제도 설계의 행태화가 진행된다. 이해충돌 방지, 로비 투명성, 예산 추적 같은 규범이 데이터 기반으로 구체화된다. 조달 플랫폼은 공개·경쟁·실시간 피드백을 기본값으로 삼는다.

장기적으로는 재정·산업정책의 리밸런싱이 일어난다. 특혜·보조금 중심의 산업 정책은 성과 연동 방식으로 바뀌고, 청년세대가 선호하는 ‘작은 세금–큰 투명성’ 모델이 보편화될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권력은 디지털 권위주의의 유혹을 받을 것이며, 따라서 헌법적·사법적 안전장치가 핵심 변수가 된다.


5) 경제 지형의 변화

경제적으로도 변화가 나타난다. 정책 리스크 프리미엄이 재평가되고, 불투명한 특혜 중심 모델은 높은 할인율을 요구받는다. 반대로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은 투자 비용을 낮추고 외국인 자본을 끌어들인다.

공공투자의 포트폴리오는 대형 토목과 특권적 개발 사업에서 데이터 인프라, 교육, 청년 고용, 주거로 이동한다. 시장 내부에서도 기업 지배구조와 이해상충 방지 장치가 주가에 직접 반영되며, 주주 행동주의와 소비자 운동이 강화된다. 동시에 반부패와 투명성을 기반으로 한 공공 문제 해결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창업 생태계가 확장된다.


6) 종합과 제언 — 흩어진 비용의 결집이 만드는 미래

집중된 이익과 분산된 비용이라는 구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은 비용을 모이게 만들고, 시민은 그 결집된 비용을 권력의 가격표로 바꾼다. Z세대가 외치는 언어는 단순하다. “보여라, 기록하라, 바꿔라.”

정치는 이 요구를 제도 설계로 번역해야 하고, 경제는 그 설계 위에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경쟁력은 성장률보다 책임의 속도에서 나온다. 책임의 속도는 더 이상 권력자의 선택이 아니라, 시민의 결집으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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